|
아랫집 윗집 사이에 울타리는 있지만
기쁜 일 슬픈 일 모두 내 일처럼 여기고
서로 서로 도와가며 한 집처럼 지내자
우리는 한겨레다 단군의 자손이다
초등학교 3학년 음악교과서에 실려 있는 '서로 서로 도와가며'라는 노래로, 어릴 때 학교에서 배웠었다. 특히 여자 아이들이 고무줄 놀이를 하면서 많이 불렀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에 별 생각없이 불렀는데, 대학 다닐 때 통일을 주제로 한 노래라며 시위 현장에서 자주 부르곤 해서 지금도 그 음과 가사가 생생하다.
"아랫집 윗집 사이에 울타리는 있지만"
한반도에 휴전선이라는 이름으로 철책이 그어진 지 50년이 지났다. 남과 북으로 나뉘어 총칼만 겨누고 있을 뿐 서로를 알려고 하는 노력도 서로를 이해시키려는 노력도 하지 않아서, 남쪽 사람들은 북한 사람들이 만화영화 '똘이 장군'에서 보여주는 모습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고, 북한에서는 '미국의 착취에 헐벗은 거지들' 정도로 남쪽의 사람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땅 위에 철책이 그어지자 우리들 마음에도 철책이 그어졌던 것이다. 손 대면 그냥 아스러져 버릴 것 같은 그 녹슨 철책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렇게 서로를 외면해 왔던 것이다.
"기쁜 일 슬픈 일 모두 내 일처럼 여기고"
80년대의 일이다.
남쪽에서 수해를 입어 온 나라가 근심에 쌓여 있을 때 북쪽에서 쌀이 넘어 온 적이 있었다. 청소년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아무도 쉽게 믿으려 하지 않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그런데 그 때 우리 언론들은 하나같이 북에서 보내 준 쌀의 질이 나빠 떡이나 해먹던지 아니면 사료로 써야겠다는 기사를 써댔다. 기본적인 예의조차 안되어 있는 이 땅의 기자들과 그에 맞장구를 쳤던 이들에게 쌀을 보내준 북쪽 사람들이 갖는 분노는 짐작할 수 있으리라.
몇 년 전부터 극심한 흉년으로 북쪽에 굶어 죽는 이들이 넘쳐날 때 지원에 가장 소극적인 나라가 다름 아닌 우리나라였다. 다른 나라에서는 이념이나 체제를 떠나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규모의 대소를 떠나 지원을 했는데, 같은 민족이라는 우리는 상호주의를 들먹이고 군량미 전용 가능성이 있다는 말도 안 되는 꼬투리를 잡아 지원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기쁜 일 슬픈 일을 내 일처럼 여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대의 슬픔에 조소를 보내고 기쁜 일에 배 아파하는 그런 세월을 보냈다.
"서로 서로 도와가며 한 집처럼 지내자"
냉전 체제가 무너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이 세상에는 공산주의 국가가 한둘이 아니고 그 중 몇몇 나라는 우리와 경제적으로 외교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다. 그런 나라들과의 관계에서 북한의 협조는 필수적일 때가 있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세계 무대에서 남과 북은 서로를 헐뜯고 깍아 내리기에만 급급했을 뿐, 단 한번도 서로의 이익을 위해 도움을 주거나 양보해 본 적이 없었다. 이 얼마나 큰 손실이며 안타까운 모습인가.
"우리는 한겨레다 단군의 자손이다"
그래 우린 한겨레다.
반만년 역사를 이어오면서 남과 북으로 갈라진 것은 이제 겨우 50년 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 세월은 하나의 민족 하나의 조국으로 살아온 것이다.
남과 북의 정상이 이제 만난다.
그 동안 철천지 원수로만 여겨왔던 남과 북의 '수괴'가 서로 이웃집 어른으로 만나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남에게 보이면 허물이 되는 것도 가족에게는 어루만져줄 상처가 될 뿐이듯이 이젠 서로의 허물을 이해하고 다독거려주자.
상호주의라든지 자존심이라든지 하는 말은 잠시 접어 두자.
그런 말은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나라와의 사이에서나 찾는 것이다.
우리는 한겨레 아닌가.
내 아이에게 이 노래를 가르친다.
아랫집 윗집 사이에 울타리는 있지만.
아직 갈라진 조국의 상처를 모르는 우리 아이들이 그 아픔을 알기 전에 어서 어서 하나가 되자. 그래서 칠천만 온 겨레가 서로 서로 도와가며 한 집처럼 지내는 귀한 이웃이 되도록 하자.
|
|
|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