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 의사 여러분, 정말 죄송하다고 느끼신다면…

대한의사협회 신문 광고 '국민여러분, 정말 죄송합니다'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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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원(dreamsun)등록 2000.06.23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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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23일자 조선일보 35면에 실린 대한의사협회 광고를 보며, 느낀 점을 몇 자 적어봅니다. 그렇지 않아도 떠들썩한 일에, 굳이 엇비슷할 것이 뻔한 생각을 보태고 싶지는 않았으나, 22일 서울대 의대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라왔다는 '의사 지망생'들의 극단적인 주장을 접하고는 '슬픔'과 '분노'가 치밀어 올라, 마음을 달랜다는 구실로 이렇게 글로써 생각을 정리해 보게 되었습니다.

아래 < >로 묶은 세 묶음의 인용문은 대한의사협회 광고 중, 그들이 밝힌 세 가지 입장을 가감없이 떼어 왔음을 밝힙니다.

<헛점 투성이의 의약분업제도

저희들의 폐업사태로 인하여 본의 아니게 국민 여러분께 불편과 고통을 드리게 되었음을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정부가 7월 1일부터 시행하고자 하는 의약분업은 이대로 실시되어서는 안될 헛점투성이의 제도입니다.

약사가 찾아온 환자에게 어디가 아프냐고 물어보고, 자기 마음대로 진단하고, 약을 팔아 치료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의료후진국의 악습을 일소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제도로는 진단과 치료에 대하여 아무런 지식이 없는 약사들의 불법 진료행위를 막을 수 없습니다. 또한, 의약품의 오남용을 막을 수 없습니다.>


먼저, 지난 22일 병원의 진료 거부로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국립의료원에서 숨을 거둔 심부전증 환자 정동철씨나 유가족에게 '본의 아니게 국민 여러분께 불편과 고통을 드리게 되었음을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한다는 대한의사협회의 말이 어떻게 들릴지 상상해 보게 됩니다.

상식적으로 따져보았을 때 대한의사협회의 말대로 정부가 시행하고자 하는 의약분업이 '헛점투성이'의 제도라고 한다면, 굳이 사생결단식으로 원천봉쇄를 시도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정말 형편없는 제도라고 한다면, 비오는 날 날림공사를 한 집 지붕에서 물이 줄줄 새듯, 여기저기서 문제점들이 터져나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먼저 시행을 하고 3개월 후 나타난 문제점들을 보완하자는 정부안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전혀 손해 날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문제가 자연스럽게 도출되기를 기다리는 것이 미심쩍다면, 직접 현장에 나서서 제도시행의 부작용이나 문제점들을 조사하고 도출해 공론화시키면 될 일입니다. 지금 폐업에 쏟는 대한의사협회의 노력을 볼 때, 그 힘의 반만 쏟아도, 상당한 성과를 얻어 낼 것은 분명한 일이죠.

비용문제요? 제가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이 사회가 치르고 있는 사회적 비용보다는 그 편이 덜할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더욱이 시행하기 전에 내어 놓는, 어디까지나 가능성에 불과한 반대의 목소리 보다는, 시행하고 나서 실제 발생한 문제점들을 근거로 내세우는 반대의 목소리가 국민 정서에 더 설득력을 가질 것은 뻔한 이치 아니겠습니까?

또한 의약분업 시행은 결코 동강댐을 둘러싼 논쟁처럼 한번 가면 결코 돌이킬 수 없는 비가역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반대로, 폐업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생명의 손실은 결코 돌이킬 수 없는 것이죠.

그리고, 이런 의문이 생깁니다. 약사들이 '찾아온 환자에게 어디가 아프냐고 물어보고, 자기 마음대로 진단하고, 약을 팔아 치료하는' 일이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고, '의료후진국의 악습'이고, '진단과 치료에 대하여 아무런 지식이 없는 약사들의 불법 진료행위'라면, 왜 지금에 와서야, 이렇게 목청을 높이는 것일까요.

그것이 그렇게 국민 건강에 심각한 문제라면, 지금껏 의사들은 약사나 정부, 제약업자들과 함께 국민의 건강을 위험 속에 방치해 온 셈이 됩니다. 이번 일이 단순히 의사들이 약을 팔 수 없게 한 데서, 즉, 이권을 빼앗긴 데서 나온 것이 아니라면, 그 전에 진작부터 양심에 따라 문제를 제기했어야 했습니다. 의약품 오남용의 문제도 마찬가지겠죠.

<진료실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

우리는 이러한 정부의 의약분업안을 제대로 고쳐 완전한 의약분업을 성공시키고자 수년동안 정부에 보완을 요구하여 왔습니다. 그 동안 저희들은 전국의사대회를 통해 정부의 성의있는 답변을 촉구하여 왔고, 신문광고를 통해 국민 여러분의 이해를 구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저희 의사들의 충정어린 건의를 전혀 받아 들이지 않고 오로지 실적 달성만을 위한 억지 의약분업을 추진하여 왔고, 이제 그 시행이 눈앞에 와 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폐업이라는 극한적인 방법 뿐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엉터리 의료제도를 시행하는 나라에서 의사의 본분을 다할 수 없기에 스스로 정든 진찰실을 떠난 것입니다.

국민의 건강을 볼모로 잡아 자신의 뜻을 관철하고자 하는 것은 의사가 아니고 오히려 정부입니다. 우리 의료인의 진실된 건의를 외면하고 설마 의사들이 그 욕을 먹어가며 진료를 포기하기야 하겠는냐고 버티는 정부가 국민을 이 지경에 몰아 넣은 것입니다.>


의사의 본분이란 것이 뭘까요? 국민의 건강을 보살피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대한의사협회의 말대로 의약분업안이 '엉터리 의료제도'일는지는 몰라도,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지 못하도록 막는 제도는 아닙니다. 대한의사협회는 사태를 똑바로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의사들의 폐업을 야기한 것이 정부일는지는 몰라도, 의사의 본분을 저버린 것은 어디까지나 의사들의 선택 사항이었습니다. 모든 걸 정부의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무책임한 일입니다.

의사들에게 남은 것은 폐업이라는 극한적인 방법 뿐이었다고 했습니다. 그 정도의 비장한 각오라면, 환자들에게 전혀 해가 가지 않게 '불복종 운동'을 벌일 수도 있었을 텐데요. 하긴, 머릿 수로 밀어붙이는 일이 쉽고 안전하긴 하죠. 하지만, 그 점이 못내 아쉽습니다.

정부가 실적 달성을 위해 억지 의약분업을 추진해 왔다고 했습니다. '억지'라는 말이 맞을 지 틀릴 지는 모르겠으나, 실적 달성을 염두해 둔 것 만은 사실일 겁니다. 하지만, 대한의사협회는 정부가 의약분업에 들인 공만큼, 의약분업이 실패로 돌아갈 때 안게 될 책임에 대해서는 간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부도 나름대로 바람직한 의약분업을 위해 노력을 하고 있을 거라는 얘기입니다.

물론 노력이 '무능'까지 덮어주지는 못하겠지만 말입니다. 정부를 두둔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어찌 보면 정부와 대한의사협회는 한 배를 타고 있을 수도 있으니, 불신의 눈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그런 종류의 불신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질 않습니다.

<국민건강을 위해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할 의약분업

그 누가 잘못했든, 국민 여러분을 불편하게 해 드리고 환자를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없게 한 점에 대해서는 무어라 변명드릴 말이 없습니다만, 우리 의료인도 뼈를 깎는 고통을 느끼며 천직으로 알아온 의사로서의 길을 포기하는 것을 이해해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그래도 이 사회의 지성인으로 자부하는 의사들이 오죽했으면 98.9%라는 엄청난 수가 이러한 투쟁방법이 불가피하다고 결정하고 폐업에 동참하겠습니까? 오죽하면 의과대학 학생들이 학업을 중단하고 이의 시정을 요구하겠습니까? 오죽하면 대학 교수님들이 이대로는 안된다며 평생 몸담았던 학교를 사표를 던지고 투쟁에 참여하겠습니까?

저희는 돈이나 더 벌어보고자 이러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대로 의약분업이 실행된다면 국민들만 불편하게 하고 이 나라의 의료는 전 세계에서 그 유례가 없는 부끄러운 모습이 될 것이 너무나도 명약관화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보기엔 사표를 내는 것이 그 세계와 영원히 갈라서는 일이라고 생각했다면, 의사들은, '대학 교수님들'은 결코 사표를 내는 일은 없었을 거라고 생각되는군요. 그들을 '지성인'이고 체면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노동가'를 부르며 폐업에 나설 수 있게 할 정도로 큰 위력을 가진 것이 바로 '생존'의 문제일테니까요.

새삼스럽게 독점권을 가진 소수의 힘이라는 것이 막강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저 법치주의와 '숭고한' 명분으로 전교조를 꾸짖고, 노동단체의 파업을 집단 이기주의로 몰아붙이던 조선일보마저, 그 '전가의 보도'를 접고 정부의 '무능'을 탓할 뿐, 몸을 사리고 있는 듯이 보이니까요.

갑자기 어디선가 사진으로 본, 힘 없는 매향리 주민들의, 통한의 눈물이 생각나는군요. 또 점점 열악해 가는 근로 조건에도, 당장 오늘 일할 자리가 있다는 이유 하나로도 행복을 느낀다는 한 임시직 파견근로자의 인터뷰 기사도 생각이 나구요. 괜한 어리석은 연상일까요?

사실상 환자를 내팽개친 지금의 상태로는 누가 보더라도 모순이라고 느낄, 국민의 건강이니, 완전한 의료분업이니 하는 말을 앞세우지 않았으면 합니다. 차라리 떳떳하게 '돈이나 더 벌어보고자 하는' 일이라고, 아니 솔직하게 이러지 않으면 먹고 살기 힘들어진다고 말하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생존의 문제를 내세우는 편이, 엄연히 또 다른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현재의 명분 약한 폐업을 조금이라도 더 정당화시켜 줄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어쩌면 국민들은 의약분업안이 과연 얼마나 형편 없는 것인지 몸소 느껴보는 편이 낫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편이 진료거부를 당하고, 혹시 있을 수 있는 자신의 불행을 염려하며 밤잠 설치는 것 보다는 나을 테니까요.

지금의 폐업이 진정 국민 건강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이라면, 약간의 손해가 있더라도, 불완전한 제도 일지언정 먼저 의약분업을 시행하는 편이 안 하는 것 보다 더 나은 일이라는 대의를 우선 따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의지가 있다면야, '선시행 후보완'이든 '선보완 후시행'이든 문제가 될 리 없습니다.

글을 닫으며

물론 전부는 아니겠지만 수재들이 모인다는 서울대 일부 '의사 지망생'들의 의식수준을 볼 때, 과연 그 많은 국민의 세금이 국립대 서울대에 압도적으로 쏟아부어져야 할 이유가 있을 지, 자문해 보게 되며, 과연 우리나라의 '의사 지망생'들이 배우고 있는 것은 무엇이고, 의사 지망생이 되기 위한 전제조건을 '성적'으로만 따져보아도 좋은 것인지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다음은 6월23일자 한겨레 신문 17면에 실린 "생명 죽어야 우리목표 관철"이라는 기사에서 뽑은 인용문입니다. 앞의 두 개는 서울대 의대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조회된 주장이라고 하며, 마지막 것은 천리안 게시판에 올라 온 현직 의사의 주장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 기사가 틀림이 없다는 가정하에서, 이들의 반성이 없는 한, 신분을 추적해 학교는 두 학생을 제적시키고, 대한의사협회는 그 '현직 의사'를 제명시키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에선 응급실까지 문을 닫아, 살 수 있는 환자가 수없이 죽어나갔고, 덕분에 3일 만에 정부가 항복했다. ~ 말이 통하는 상대와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염두에 두자"(급진파)

"파업기간에 진료를 못 받아 죽는 사람이 어쩌면 내 가까운 사람일 수도 있지요. 그러나 그렇게 소중한 일을 하는 사람이 의사라면 그들에 대한 대우도 그에 맞게 해줘야지요."(작성자 본4)

"의사가 없으면 이 사회가 어떻게 되는지 모두들 잘 보기 바란다. 되도록 많이 죽고 많이 고생해야 한다."(말향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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