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림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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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렬(solneum)등록 2000.06.29 09:15
지리한 장마비가 그친 여름날 오후
아이들은
제 머리위로 내려 앉는
햇살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바다로 나갑니다

세상의 눈을 피해
도망치듯 쫓겨왔던
서해의 외딴 섬이라
한 여름 바닷가에
사람의 흔적이 없습니다

모래 위에 새겨지는
아이들의 발자국이
그들의 뒤틀려진 손, 발만큼이나
삐뚤삐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 삐뚤어진 발자국을,
뒤틀려진 손과 발을
있는 그대로
받아 줄 수는 없었던가요

저 아이들이
인적 끊긴 바닷가가 아니라
동네 놀이터에서
다른 아이들과 함께 뛰어 놀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었던가요

황폐해진 내 마음밭에
아이들의 발자국을
조심스레 새겨 넣는 동안
아이들은
한 뼘이나 더 자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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