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악한 언론권력의 자기복제

한겨레 김근 논설주간의 연합뉴스 사장 임명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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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선(youngtjs)등록 2000.09.29 11:07
연합뉴스 사장에 김근 씨가? KBS가 대주주로 있는 연합뉴스의 사장에 박권상 사장의 고등학교 14년 후배인 김근 씨가 임명되었다. 대부분 사원들은 KBS가 연합뉴스 사장 자리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이번 일이 있기 전까지 금시초문이었을 것이다.

법상으로 KBS는 연합뉴스의 1대주주이며 그에 따라 박권상 사장은 연합뉴스 구성원들의 절대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랑스럽게 고교 후배인 김근 씨를 추천했다고 한다.

8월 30일 사장선임을 위한 1차 주총이 무산되자 KBS 노사협의회가 무산된 바로 그날 9월 22일, 오전 11시반에 예정된 주총을 갑자기 10시로 앞당겨 일부 주주들이 참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김근 씨를 신임이사로 선임하였다. 곧 이어 이사회는 낮12시 코리아나 호텔에서 김근 씨를 대표이사로 임명했다. 연합뉴스 노동조합은 즉각 이번 주총을 날치기로 규정하고 파업을 결의하였다.

작심하고 나선 박사장

사실 예전같으면 법상으론 최대주주라지만 KBS사장이 연합뉴스 사장을 운운한다는 것 자체가 불손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주총관리를 실질적으로 책임졌던 공사의 장영수 정책기획실장(참, 이분도 동문이시네!)은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박권상 사장이 김근 주간을 올곧고 소신있는 언론인으로 평가해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자랑스럽게 밝히고 있다.

또 박사장은 1차주총이 무산된 후 비상임이사로선 이례적으로 코리아나 호텔의 연합이사회에 참석하여 다음 주총 장소와 일정을 직접 정하였다고 한다.

한편 김근 주간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사장과 고등학교 동문이어서 추천된 것이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렇게 말하면 유감이다, 나는 박사장과 동아일보 해직기자 동기다"라고 불쾌한 심사를 드러냈다.

그러나 청와대 관계자 역시 "대주주의 입장을 존중하고 지켜볼 수밖에 없다…. 대주주가 추천한 인사로 계속 가지 않겠느냐"라고 발언한 것으로 보도돼 김근 씨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그의 사장 선임 과정에서 박권상 사장의 의중이 절대적이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김근은 누구?

그는 67년 현대경제일보를 시작으로 언론계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80년 동아방송 재직 당시 해직된 기자 출신이다. 이후 그는 한겨레신문의 출범과 함께 경제부 편집위원을 거쳐 편집부위원장, 그리고 최근에는 논설주간을 역임했다. 90년대 들어 그가 쓴 칼럼은 네 번에 걸쳐 구설에 오르게 된다.

첫 번째는 지난 96년 당시 DJ가 영국에서 돌아와 정계복귀를 선언했을 때이다. 당시 한겨레신문 내부는 조상기 정치부장과 정운영 논설위원, 박재동 화백을 중심으로 한 비판그룹과 바로 얼마전까지 연합뉴스 사장을 역임한 김종철 위원과 김근 씨 등 정계복귀 지지그룹으로 엇갈려 한 지면에서 정반대의 논조가 엇갈리는 상황이었다.

당시 김근 위원은 '도덕과 정치'라는 칼럼을 통해 "기득권층의 김대중 죽이기 음모"라고 반격했으며 김종철 위원은 "무덤에서 되살아난 데 대한 무차별적인 확인사살 시도"라는 극언을 사용하며 적극 방어했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고 했던가? 그때의 공로를 인정받아서인지 어쨋든 두 김씨는 차례로 한국 유일의 통신사의 사장에 임명되는 보답을 받고 있다.

김근 주간은 KBS 조합원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사람이다. 왜냐하면, 작년 방송법 파업 와중에 방송노조가 거금을 들여 한겨레에 의견광고를 게재한 바로 그날 그는 사설을 통해 "방송파업이 이제 막 경제위기를 벗어나고 있는 나라 형편을 어렵게 하는 악재가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방송 내부의 민주화를 위해 노조들은 그동안 얼마나 노력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 자세가 필요하다" "해바라기 방송인들이 버젓히 행세하는데 노조들의 묵시적 동의가 한몫을 한 것은 아닌가"라는 억지 주장을 펼친 적이 있다.

김근의 권력에 대한 조바심은 지난 4월 총선에서 극에 달한다. 총선에서 민주당이 과반수 확보에 실패하자 그는 '유권자가 반성할 점'이라는 적반하장의 제목으로 "유권자들의 수준과 책임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느니, "여당이 소수파로 몰린 정국은 한국의 정치를 구태의연한 모습으로 보이게 하는 점"이라느니, 거의 폭언에 가까운 언사로 유권자들을 비난했다.

결국 제동장치를 상실한 김근은 '이한동 총리지명'사설을 통해 한겨레 '지면개선위원회'로부터 공개질의서를 받는 망신을 당하게 된다.

김근은 90년 KBS의 서기원!

이쯤 되면 김종철 사장에 이어 김근이라는 낙하산을 또 다시 사장으로 뒤집어쓴 연합뉴스 사원들의 심정을 이해할 만하다. 현재 연합뉴스 노동조합은 파업찬반투표를 가결시키고 낙하산 사장의 출근저지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상황같은데 하고 생각하실 분이 있을 것이다. 사실 KBS 역시 독재정권 시기에 서기원이라는 인물을 사장으로 뒤집어쓴 적이 있으며 그로 인하여 우리 선배들이 겪은 고난은 10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아 있다.

문제는 세기가 바뀌고 국민의 정부를 자처하는 지금에 와서도 10년전의 작태가 이번에는 우리의 박권상 사장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데 있다.

어찌보면 이번 계기를 통해서 공사는 진정한 언론개혁의 산파역을 해내는 명예를 얻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박사장의 행보는 어떠한가? 연합뉴스 내부구성원들의 우려와 의견은 철저히 묵살한 채 밀어부치기식으로 날치기 주총을 통해 고등학교 후배를 그 자리에 앉혀 과연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자신의 출신고등학교가 또 다시 구설수에 오르는 것을 그토록 태연하게 무시하는 박사장의 대범함에 혀가 내둘려질 지경이다.

김근 주간이 존경받는 언론계 인사라 하더라도 박사장은 이 부분에서 한번 더 심사숙고해야 했다. 하물며 김근 주간이 연합뉴스구성원들이 찬반투표를 강행하면서까지 반대의사를 명확히 했던 인물이며, 전 소속사인 한겨레에서마저 권력에 대한 일방적 구애로 물의를 일으킨 인물이라는 것까지 고려하면 그의 사장 추천을 어느 누가 납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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