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관념, 그 파격의 짜릿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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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수진(simamoto)등록 2000.12.10 16:48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7, 8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우리나라의 젊은이라면 한번쯤은 이승복 어린이의 이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 유명한 일화는 당시 빈번하게 발생했던 무장 공비 침투 사건이라는 사회적 상황과도 교묘하게 어울려 온 국민의 공산당에 대한 적개심을 심어 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여 생각해 보면 이승복 이야기에는 많은 오류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야기에 등장하는 그런 시골(엄청 떨어진 시골이라고 했었다)에 사는 어린이가 어떻게 무장 공비의 실체를 알 것이며, 또한 시골에서의 이야기가 어떤 경유로 온 나라에 널리 퍼지게 되었느냐는 점이다.

이는 바로 당시 독재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비난을 반공 정신을 고양시킴으로써 무마하려 했던 이른바 계획된 정책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 나라 국민들은 결국 '공산주의'를 하나의 사회이념이 아닌, 타도해야할 대상으로 간주하게 되었고 '공산주의자'들을 빨갱이로 몰아붙여 그들을 억압하게 되었다.

한 현상에 대해 일단 어떤 관념이 수용되기만 하면, 그건 곧 '고정 관념'이 되어 버린다. 고정 관념은, 어떤 현상에 대해 얼마든지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함에도 그 길을 원천봉쇄하게 된다. '뫼비우스의 띠'가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한 번 꼬아 양끝을 붙이면 안과 겉을 구별할 수 없게 되는 뫼비우스의 띠는, 안과 겉이라는 사물의 양면을 보지 못하고 어느 한쪽 만을 보게 되는 태도를 상징한다.

언어라는 고정관념에 막혀서 무지개의 색을 올바르게 볼 수 없게 된 것처럼, 이런 태도는 결국 현상의 본질에 이를 수 없게 한다.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어느 가정에 식수 공급이 중단되었는데, 단 한 곳 그것도 화장실에서만 물이 나올 수 있었다. 일단 아내는 화장실에서 나오는 물로 밥을 짓고 국을 끓여 식탁에 올려 놓았다. 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던 남편과 아이들은 이를 이상히 여겼다. 아내의 설명을 듣자마자 그들은 수저를 내려 놓고 식탁에서 일어서 버렸다고 한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사실 화장실의 물도 같은 수도관에서 흘러 들어오는 물이다. 다른 물과 비교했을 때 조금도 수질이 떨어진 것이 아니다. 그러나 화장실은 더럽다는 고정 관념에 의해 남편과 아이들은 그 물마저 더러울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사소한 고정 관념으로도 사물의 본직을 잊게 되는 경우는 허다하다.

지난 조선 시대 유교의 영향으로 '남존여비(男尊女卑)'라는 관념이 유입된 이래 한국 여성의 권리는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여자는 집에 있어야 한다'는 식의 고정 관념은 우리 사회의 창조성을 얼마나 많이 말살시켜 왔을 것인가.

개인으로서나 사회적으로나, 어떤 관념을 수용하기에 앞서 그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한 것인지에 대해 충분히 비판, 검증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한번 받아들인 관념이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그것이 옳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는 개방적인 자세와 관용 또한 중요하다.

너무 높아서 넘을 수 없다는 알프스에 대한 고정 관념을 극복, 그 등정을 강행함으로써 이탈리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나폴레옹의 경우처럼, 많은 역사적 사례가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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