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는 공화당, <한겨레>는 민주당 대변?

클린턴 방북을 보는 한국 언론, '미국중심주의'에서 못 벗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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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cnpk)등록 2000.12.22 15:09
클린턴이 대통령으로서는 마지막 해외 방문이 될 북한 방문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한국의 주요 신문들은 사설을 통해 클린턴 방북에 대한 그들의 기대(?)를 피력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클린턴 방북문제를 놓고 한국 언론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가면 안 된다'는 입장이고 <한겨레>는 '방북이 성사되기'를 희망하고 있으며, <중앙일보>는 '가려면 전제조건을 확실히 풀고 가라'는 주장이다.

<조선일보>는 22자 사설에서 "클린턴의 "퇴임 기념여행"?"이라는 표제에서 알 수 있듯이 '클린턴 방북은 절대 안 된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미국의) 정권인수 작업이 한창인데 퇴임을 불과 한 달 남짓 남겨놓은 미국 대통령의 북한 방문은 미국은 물론 한국·북한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클린턴이 북한에게 이용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면서 "(북한이 미사일을 포기한다는) 확실한 보장이 없는 상태에서 클린턴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면 북한의 배포만 키워줄 가능성이 있다"며 북한에 대한 불신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주목할 점은 <조선일보>가 부시에 대한 기대(!)를 은근히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화당 중진들이 클린턴 대통령에게 보낸 청원서에서 '분명한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북한을 방문하거나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북한을 제외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거나, "차기정부는 민주당이 아닌 공화당정부가 들어서게 되어 있으며...... 공화당은 그간 대선 과정에서 대북정책을 포함한 대외정책은 「힘을 바탕으로」 추진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는 설명은 이러한 점을 잘 보여준다. <조선일보>는 그 동안 주요 사안에 대한 공화당의 입장을 대변해왔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반면 <한겨레>는 같은 날 사설 "클린턴 방북 성사되기를"에서 "그의 북한 방문이 성사된다면 비록 임기말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북미관계 뿐 아니라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 안정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믿기에 우리는 그의 북한 방문이 이뤄지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고 씀으로써 <조선일보>와 분명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한겨레>는 클린턴의 방북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북한 미사일 문제 해결이 대단히 중요하다면서 "북한은 민주당 행정부 임기안에 북-미관계 정상화의 기본틀을 결정지을 수 있는 클린턴 대통령의 북한 방문이 성사될 수 있도록 미사일 문제해결에 성의를 다해줄 것을 당부한다"고 끝맺고 있다.

<한겨레>의 이러한 논조는 보수언론과는 분명한 차별성을 보이고 있으나, <한겨레> 역시 '미국 중심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 날 사설에서도 미국의 관심과 우려만 나열되었을 뿐, 문제해결의 또 다른 당사자인 북한의 입장이나 관심사는 빠진 채, '당부'만 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입장에서 중장거리 미사일은 미국이 말하는 것처럼 단순히 국제사회를 협박하고 파키스탄이나 이란, 시리아 등에 수출하여 돈벌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체제의 생존문제와 직결된 것이다. 미국이 북한이 요구하는 체제안전보장이나 미사일 개발 및 수출 포기에 따른 보상 및 민간위성 발사를 지원하지 않으면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체제 '보증수표'인 것이다.

핵개발 포기에 이어 중장거리 미사일 포기는 북한의 입장에서는 미국의 폭격을 억지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이 북한에 대한 체제안전보장을 주저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어떻게 미사일을 포기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겠는가?

클린턴 방북 문제를 바라보는 주요신문의 시각은 이렇듯 <조선>과 <중앙>은 공화당의 시각을, <한겨레>는 민주당의 시각을 대변하는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들 모두 한반도 평화문제에 대한 자주적인 시각이 결여된 채, 미국 중심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마치 번역된 미국의 신문 사설을 읽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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