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마을엔 도둑이 없습니다

검토 완료

장성희(report)등록 2001.01.13 10:43
내가 사는 마을엔 도둑이 없습니다
뾰족한 철망으로 방어의 벽을 높이 쳐 두어서가 아니라
사실 담장이 너무 허술해 아까운 것들을 쉽게 하나씩 집어 가 버려도
내게는 바로 그 자리에 더 좋은 선물을 놓아두시는 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 번엔 인내의 벽을 더 두껍게 쌓아야 하겠다던가
그쪽에 쌓아 둔 편견의 벽은 아예 헐어 버리는 것이 좋겠다라든지
얘, 재물 관리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지, 내가 한 수 가르쳐 줄께...
뭐, 그런 식으로 일일이 구멍난 곳을 땜질하시는 손 하나가 바빠질 뿐이지요.
내가 해야 할 일이란 도둑이 다녀간 자리에서 으르렁거리는
이리 한 마리를 사냥해야 하는 일입니다.
멍청한 것 같으니라고 너는 아직도 그 모양이냐라든지
손해가 너무 막심한데 앞으로도 이렇게 살 작정이니라든지
얘, 이번 도둑은 너무 심했다. 정말 용서 못하겠지?
뭐, 그런 식으로 날뛰는 이리 한 마리와 씨름하며 땀을 좀 흘리는 것뿐입니다.
처음엔 초대하지 않았던 도둑이 다녀간 자리마다 구멍이 휑하게 뚫려서
썰렁하게 부는 바람 속에 서 있지도 못할 것 같고
억울한 상처가 아물려면 시간도 족히 걸리더니
이제는 자상하기만한 손을 쉽게 찾아 잡을 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손을 잡고는 슬그머니 정금까지는 못 가더라도
은빛은 낼 줄 아는 그릇이 되어 가지 않는가
오만한 생각도 더러 하며 웃는 여유도 부려 봅니다.
이러다 내일 또 큰 도둑이 들면 다시 심장이 뛰고
얼굴이 붉어지고 눈물이 나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불량한 도둑보다 내 착한 양심이
길을 잃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내가 사는 마을은 아예 도둑 없는 마을로 만들기로 작정한 만큼
도둑 따위는 마음에 두지 않으리라 다짐합니다.
만일 무례하게도 또 다시 나타난다면 그 자리에 미리 꽃이라도 꽃아 놓고
이번에도 마다 않고 선물을 들고 오실 아름다운 손 하나를
마중할까 합니다.
ⓒ 2007 OhmyNews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