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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통신 기자에서 출발, 한겨레신문 문화부 기자를 거쳐 씨네21 창간 팀장으로 이 잡지를 최고의 가판 실적을 자랑하는 잡지로 키워낸 장본인. 그러나 19년여의 사회 생활을 정리하고 '소설을 쓰겠다'며 직장을 그만둔 전직 여기자, 전직 씨네21 편집장 조선희 씨가 쓴 책, <정글에선 가끔 하이에나가 된다>를 읽으며, 똥이엄마는 자꾸 통곡하고 싶은 감정에 빠집니다.
생리하는 것만 빼고 남자와 같아야 한다며 곤죽이 되도록 자신을 밀어붙이며 힘쓴 대가. '남자 동료들과 똑같이 경찰서 출입하고, 술도 많이 마시고 열심히 일하면 공평한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던 믿음이 3년 외신부 수습이 끝나고 정식 부서 배치 과정에서 깨어져 나가던 일.
업무량이나 업무 능력이 남자 동료들과 공평하더라도 인사 선상에선 동기 남자들과 같이 거론되는 것이 아니라 '빽'으로 들어온 여기자와 한 묶음으로 처리되던 현실.
운동권 출신으로 통신사에 들어온 3년 후배에게 코찔찔이 아이 돌보듯 선배 노릇하던 입장에서 십수년이 흘러 한겨레21 편집장과 씨네21 편집장으로 만났을 때...
문화부 기자를 오래 해 문학이나 영화에 조예가 깊고, 입을 열 때마다 교양미도 뚝뚝 떨어지는 자신이 사회부에서 경찰반장과 검찰반장, 정치부에서 정당과 청와대 출입을 하며 뉴스 부서의 엘리트 코스를 돌아 한국 사회를 밑바닥에서 꼭대기까지 '내가 만난 사람들'로 격파하면서 통찰력을 과시하는 후배의 입을 쳐다보며, 속으로 '녀석, 많이 컸군' 할 수밖에 없었다던 '자신의 은퇴는 은퇴가 아닌 조퇴'라고 자각하게 되는...
고급 정보를 만지면서 중요 부서를 두루 거쳐 근사한 경력을 쌓으며 중후한 중년이 되는 남자들과 외곽으로 외곽으로, 능력 없는 남자들까지 거쳐가 이후에나 돌아오는 자리를 돌며 보잘 것 없는 조직 내 경력과 집안 일에 허둥지둥하면서 구조 바깥으로 밀려나 중년을 맞는 여자들과의 극렬한 대비.
남자들이 엘리트 코스를 독점하고, 여자들은 설거지 코스를 차지하다보면 입사 성적이야 어떻든, IQ 지수야 어떻든 도전의 기회와 두뇌 회전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십 여 년이 흐른 뒤에 벌어지는 실력의 차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현실.
똥이엄마는 똥이가 남자라서 그런 여자의 설움을 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으로 자위되어지지 않습니다.
똥이가 만나야 할 상대가 정당한 사회에서 건강하게 자란 여성이길 원합니다. 그것이 똥이를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판판이 깨어지며 부딪쳐 온 13년여의 똥이엄마 직장 이력으로 지긋지긋하게 경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만은 그런 대상으로 전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오만을 떨던 신입 사원 시절을 거쳐, 때론 격렬하게 반발하고, 분기 탱천해서 투쟁하다가, 어느 순간 노회한 정치력으로 드러내지 않는 빈정거림을 배워버린
서글픈 자신을 되짚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똥이가 편견없이 자라서 약한 자를 업신여기지 않고, 힘있는 자에 아부하지 않으며, 구조가 만들어낸 부당함과 부적절함을 구분할 줄 알고, 스스로의 실력을 다져 건강하고, 창조적으로 자신의 원하는 바를 실천해 나가며, 아름다운 사랑을 엮어나가 행복한 삶을 살아가길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밤마다 공장에서 내뿜는 유독성 냄새에 진저리치며 똥이가 맑은 공기라도 마시며 자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분노하던 똥이의 신생아 시절이 오늘 문득 생각납니다.
그 때 똥이엄마는 비로소 똥이엄마가 살아갈 몇 십 년의 세월에 더하여 똥이가 살아갈 몇 십 년의 세월, 똥이의 아들이 살아갈 몇 십년의 세월. 똥이의 아들의 아들이 살아갈 몇 십 년의 세월, 똥이의 아들의 아들의 아들이 살아갈 몇 십 년의 세월들에 대해 생각했었습니다.
그렇게 똥이를 키워가는 똥이엄마의 호흡은 이제 장고한 세월 너머를 넘겨가는 길고, 긴, 아주 긴 호흡으로 이어집니다.
똥이와 함께 바른 세상 소망 28개월 10일째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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