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올려달라는 게 아니잖아요"

국민일보 어느 여성 조합원의 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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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일(youngiri)등록 2001.02.01 20:53
전국언론노조(위원장 최문순) 국민일보 지부(지부장 박정태)의 파업이 17일째로 이어지면서 이번 기회에 기필코 좋은 신문을 만들겠다는 조합원들의 파업 열기가 더욱 강고해지고 있다.

노조는 1일에도 조희준 넥스트미디어 그룹 회장 등 외부 인사의 경영, 인사, 편집권 개입 금지 등 투명 경영과 구로동 공무국 조합원에 대한 정리해고 철회 등 4대 요구사항에 대한 대국민 홍보활동을 계속했다.

다음은 국민일보 노조 홈페이지(www.kukminilbonojo.or.kr) '국민노보'에 실린 김수정 조합원의 파업일기 전문이다.

"...파업 12일째. 나는 구조조정이나 정리해고란 말이 가장 두려운 '아줌마' 조합원이다. 복도에 쭈그리고 앉았다가도 부장이 지나가면 화장실에 가는 체 일어나기도 하고, 몸을 슬쩍 뒤로 빼기도 한다.

며칠이면 끝날 것 같던 파업이 길어질수록 괜히 시작했나 하는 불안감도 생긴다. 몸도 마음도 조금씩 지쳐간다. 농성장인 복도에서 듣는 이야기로는 파업하느라 수고한다며 일 덜 시키는 시어머니도 있고, 귀한 아들 고생시킨다고 회사로 항의전화하는 어머니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그리 좋은 사정이 못된다. 세살배기 아들을 데리러 친정으로 퇴근할 때마다 친정아버지의 야단을 들어야만 한다.

'신문 만들러 들어갔지, 파업하러 들어갔냐! 내 딸이 빨간띠 두르고 고함지르는 꼴은 못 본다' 이런 아버지를 말리면서도 혹시 1순위로 잘리는 거 아니냐며 걱정하는 친정어머니의 눈빛도 외면하기 어렵다. 설에 시댁에 내려갔을 때는 시어머니와 동서들로부터 '회사일도 안 하면서 왜 늦게 내려왔느냐'는 추궁까지 들어야 했다.

불과 1년 전 국민일보를 등지고 떠난 남편만이 그나마 유일한 격려자이다. '지금은 좀 힘들더라도 당신이 앞으로 다녀야 할 회사를 생각해 봐. 그럼 견뎌낼 수 있을 거야' 자신도 국민일보 경영진의 무책임한 회사운영에 회의를 느껴 회사를 떠났지만 남편은 아직도 국민일보에 대한 정을 버리지 못한 듯하다.

농성장에서 한참동안 구호를 외치다 잠시 피곤을 식힐 겸 벽에 등을 기대면 지난 시절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97년 9월 입사한 뒤 두 달만에 조희준 씨가 회장이 됐고 그 후 하루도 회사는 편할 날이 없었다. 피땀 흘려 만든 작품이 회장의 빨간줄 하나에 그대로 날아갔고 회장이 외국서 들여 온 수십억원짜리 디자인들을 기껏 지면에 적용시켜 놓아도 금세 전화 한 통에 사라져 버리곤 했다.

신문사의 핵심부서인 판매국, 조사부, 총무국, 컴퓨터 운영부, 심지어 신문을 찍어내는 공무국마저도 국민일보에서 떨어져 나가 조희준 씨의 개인 회사 밑으로 들어가거나 그대로 공중분해되고 말았다.

왜 신문이 배달되지 않느냐는 독자전화에도 마땅히 할 말이 없다. 신문제작에서 배달, 판매까지 모든 것을 신문사가 책임질 것이라고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을 하는 독자에게 시원한 대답 한마디 해 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늘처럼 무서웠던 편집국장은 3년 사이 몇 번이나 바뀌었고, 믿고 의지하던 선, 후배 사이마저 조금씩 불신이 생기기 시작했다.

열 이틀째 차디찬 복도벽에 기대앉은 다른 사람들을 바라본다. 연신 허리를 두들기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조합원, 토끼같은 네 명의 딸자식을 떠올리며 눈물 글썽이는 조합원, 아직 마누라한테 얘기도 못 꺼냈다며 한숨쉬는 조합원.

나는 도저히 그들을 그냥 묵과할 수가 없어 사무실을 박차고 나왔다. 월급을 올려달라는 것도 아니요, 처우를 개선해 달라는 것도 아니다. 신문쟁이로서라기보다는 장사꾼으로서 아침신문을 저녁신문으로 바꾸는 사람들, 성도들과 독자들, 수많은 직원들의 피땀이 배어 있는 국민일보를 발톱의 때만큼도 여기지 않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나의 사랑하는 직장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할 수만 있다면 12일이 아니라 120일이라도 파업에 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

하루종일 복도에 앉아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지르고, 그 대가로 월급 한 푼 못 받는다 해도 불평 한마디 없이 견딜 수 있을 것이다.

밖엔 눈이 내린다. 차가운 회사 복도에선 오늘도 조합원들의 처절한 회사 살리기 몸부림이 계속된다..."


한편 지난 1월 18일 개설된 국민일보 노조의 '인터넷 다음 카페(cafe.daum.net/kmib/)에는 1일 현재 24명의 회원이 가입, 노조원들에게 힘과 격려의 의견을 쏟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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