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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파렴치한 부정선거와 권위주의로 독재정치를 거듭하다가 4.19로 비참한 종말을 맞이하기 전에 있었던 일이다.
진해 해군사관학교에 있는 별장을 찾았을 때 낚싯대를 드리우면 잠수병이 물 속에 들어가 미리 잡아두었던 고기를 낚시 바늘에 끼워서 노(老) 대통령에게 '연출된 손 맛(?)'을 안겨 드렸다는 갸륵한 일화가 조소거리로 유행한 적이 있다.
반세기가 지난 오늘, 우리는 이와 유사한 한 정치인의 기막힌 쇼를 보면서 "역사란 결코 발전하지 않는다"는 가설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실소를 금치 못한다.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우스꽝스럽게도 사전에 연출된 지하철 '민심탐방'을 해서 조소거리가 되고 있다.
지하철 승객들을 상대로 치밀하게 연출된 '민심탐방' 사실이 알려지자 민주당 부대변인은 "지하철 민심탐방 때 이회창 총재 옆 자리에 어떻게 한 달을 사이에 두고 같은 시각에 같은 여대생이 앉아서 환하게 웃고 있느냐"고 질문하고, "한 달에 딱 한 번, 한 코스를 다섯 정거장 정도 이용한다는 이회창 총재가 통학을 위해 매일 전철을 타는 사람과 나란히 앉을 수 있는 확률은 10억분의 1도 안 된다"고 꼬집고 있다.
이날 행사로 '안기부 돈' 논란을 잠재울 수 있다고 보았을까? 민심을 그런 치졸한 방식으로 잡을 수 있다고 봤다면 유권자가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
더구나 지금 대학들이 방학 기간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회창 총재 측에서 "우연히 다시 마주친 것일 뿐"이라는 말은 입에 올리기조차 낯뜨겁다는 느낌이 든다. 여기에 한술 더 떠서 그 여대생 옆에는 이 총재를 수행하고 함께 민심탐방에 나선 한나라당 전재희 의원의 고교 동창생까지 '명예 퇴직한 교사 출신 중년여성 자격'으로 구색을 맞춰 버젓이 앉아 있었다니, 연합통신 기자마저도 '공교롭다'는 말을 쓰지 않을 수 없는 고충을 이해할 만하다.
누가 선량한 국민을 속이려 드는가. 이총재의 측근이었던 서상목 의원과 국세청 차장 등이 동원된 '세금 도둑질'도 모자라, 안기부(현 국정원) 예산까지 선거자금으로 쓰고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이회창 총재의 '아름다운 원칙'이 안타까울 뿐이다. 돈은 이 총재 책임 하에 강삼재 부총재가 뿌렸다고 하면서 그 돈의 출처는 모른다? 땅에서 솟았나, 하늘에서 떨어졌나?
출처를 조사해 보자는 검찰을 정권의 앞잡이로 매도하고만 있으면 적당한 시기에 정치적으로 해결될 일인가?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재임 중 시간 부족으로 다 쓰지 못한 채 남겨두었던 '통치자금'이라고, 돼먹지 않은 궤변을 늘어놓는다고 해서 국민들이 너그럽게 이해할 수 있을까?
1100억원이라는 거액의 정부 예산이 대부분 국고(國庫) 수표 상태로 전 안기부에서 김기섭 운영차장에 의해 지출되어 K종금이라는 이상한 세탁소를 거쳐 강삼재 의원이 인출했다는 검찰조사와 이해찬 의원의 '국고수표 주장'은 태양이 동쪽에서 뜬다는 진리 만큼이나 확실한데 이 사실을 이 총재는 언제까지 덮어둘 셈인가.
차기 대선에서 승리하면 '없었던 일로 덮겠다'는 장기전략의 일환인가. 최근 언론사 정기 세무조사마저도 '정부의 언론탄압, 언론 길들이기'라며 취소를 주장하는 그의 독선에서 추종자들은 무엇을 기대할까. 이 총재를 원색적으로 비난한 조계종 총무원장을 정권의 앞잡이라고 왜 속 시원하게 말하지 않고 쉬쉬 하면서 인내하는지도 몹시도 궁금하다.
지하철 민심 잡기에 동분서주했을 전재희(全在姬) 의원과 이회창 총재 주변 책사들의 갸륵하고도 거듭되는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대통령 재임중 "돈 한 푼도 안 받았다"는 김영삼 씨가 의리 없다고 말한 후계자 이회창 총재 또한 이승만의 '연출된 낚시질'처럼 '사전에 연출된 민심탐방'이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할 테니까 한나라당 이 총재 측근들이 사서 하는 고생은 좀더 계속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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