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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은 청명, 한식, 식목일의 모둠달. 많은 사람들이 들로 나서 지천에 널린 나물을 캐고, 산으로 나서 흐드러진 진달래를 보며 봄의 한창을 느낀다.
동트기에 도서관을 찾았다. 처음엔 밝게 여겨졌던 형광등 불빛이 시나브로 있으나마나한 무렵이 되자, 흰 종이와 까만 글씨의 흑백에 물린 눈동자는 끽연가가 니코틴을 찾듯 칼라를 찾아 창밖을 힐끔거렸다.
책상 위에 쏠린 눈길을 거두며 의자에서 엉덩이를 뗐다. 도서관 뒷문을 나서니 살랑거리는 봄바람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기슭을 휘돌며 달아나고, 숲에서 날아온 뻐꾸기는 오동나무 끄트머리에 잠시 머물더니 이내 골프장 너머로 푸르르 사라졌다.
잣나무의 쪽빛 잎사귀와 자작나무의 은빛 줄기와 단풍나무의 연지빛 꽃눈을 보며 계단을 디뎠다. 계단을 내려오니 죽순처럼 땅을 비집고 나온 쇠뜨기의 생식경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부처머리 꼴인 쇠뜨기의 생식경을 집게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리자 머리에 달린 포자는 동굴 안의 박쥐들이 달아나듯 바람에 몸을 싣고 흩어졌다.
바닥에 잎이 뭉쳐난 민들레는 선명한 빛깔로 길손의 시선을 잡아끌고, 바늘처럼 가냘픈 제비꽃은 왠지 안쓰러움을 자아내고, 비탈에는 여러 들풀들이 제비새끼처럼 모여 있고, 보도블럭 틈바구니에는 애기땅빈대가 반쪽 콩알 같은 잎사귀를 펼쳤고, 아직은 누런 잔디밭엔 재빠른 토끼풀이 옷감의 얼룩처럼 듬성듬성 자라고 있다.
도장을 만드는 회양목은 꽃같잖은 꽃을 피웠다. 꽃이라면 때깔 좋은 꽃잎을 떠올릴텐데 꽃잎은 없고 암술과 수술만 달랑 달려 있다. 꼼꼼히 살펴보지 않으면 지나칠 수밖에 없는데, 화려한 꽃눈에 반하는 곤충은 끌지 못할지라도 향기를 좇는 곤충은 불러들일 것이다.
강의동 앞의 할미꽃을 보러 갔다. 그러께 향나무 다듬기를 하다가 할미꽃을 발견하고는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사진으로만 보았을 뿐 직접 대하기는 처음인데 그 자태가 참 곱살했다. 꽃모양은 튤립처럼 통꽃모양이지만 꽃이 땅을 향해 피어있었다. 처음엔 시들어서 그런가 했는데 원래 그렇게 자라는가 보다. 할미꽃을 자세히 보기 위해서는 튤립을 보듯이 서서 내려보는 것이 아니라 무릎을 끓고 굽어봐야 한다.
상징탑에서 본관으로 이어지는 길가의 명자나무 군락에는 쌀밥에 콩이 박히듯 점점이 꽃피었다. 열매는 사과처럼 생겼지만 시큼떨떠름하여 사람의 손이 미치지 않자 열매는 나무에 달린 채 겨울을 나는데, 벌레 먹은 그 모양이 해골처럼 흉측하다.
대운동장을 에두른 쥐똥나무의 새잎이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것을 보니, 이 봄이 뒤 마려운 개처럼 부산스럽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까만 열매가 쥐똥을 닮아 이름 붙여진 쥐똥나무는 그 향이 얼마나 진한지 모른다. 오뉴월 코딱지만한 꽃이 핀 쥐똥나무 생울타리를 따라 걷노라면 절로 코가 벌렁거려지고, 벌이 되어 머리통을 꽃에 처박고 싶은 느꺼움이 일곤 한다.
약수터의 돌에 낀 이끼와 약수터 뒤의 오솔길의 버들강아지가 기껍고, 비룡지에 좁쌀처럼 노란 산수유도 깨끔하다. 저 산수유는 서리 내리는 가을에는 붉은 열매을 맺어 보는 이로 하여금 입안에 군침을 감돌게 할 것이다.
오늘, 내 터전을 벗어나진 않았지만 나만의 봄나들이를 했다. 물론 봄을 느끼기엔 들과 산이 제격이겠지만 좀더 굽어보고 살펴보면 봄은 바탕에 널브러져 있다. 봄의 정령은 꿀벌처럼 이산 저산을 오가며 봄가루를 모으는데, 움직이면서 봄가루를 흘리고 다닌다. 아파트 베란다, 아이들의 놀이터, 도로의 울타리에 봄의 정령이 흘린 봄을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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