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불량레미콘 유통 등 업계 비리 폭로하기까지

"강요당한 불법 행위, 이젠 더 이상..." 노동조합, 그 이름에 희망을 건다

검토 완료

워킹보이스(워킹보이스)등록 2099.12.30 00:00
지난 15일 건설산업연맹이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불량레미콘 시중 유통 문제나 폐기물 불법 매립 사실 등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지난 94년5월 청주 우암 상가아파트 붕괴이후에 레미콘 운송기사들이 불량 레미콘 납품에 대한 양심선언을 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오래 전부터 건설업계가 고질적으로 앓아왔던 문제였다. 그런데, 오늘에서야 이 사실이 밝혀진 것은 무슨 까닭에서일까?

불법 사실 알면서도 해고될까봐 '쉬쉬'

레미콘 운송기사들 내에서는 스스로가 부실시공을 초래하는 줄 알면서도 불량레미콘을 운반하고 있다는 데 대한 자괴감이 적지 않았다. 불법 사실이 폭로된 기자회견 직후 노조 사무실에서 만난 한 조합원은 "그동안 알면서 말도 못했는데... 이제사 후련합니다"라고 털어놓기도 한다.
그동안 자정노력이 내부에서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몇몇 운송기사들은 불법을 강요하는 회사에 항의도 했고, 환경단체 회원인 일부 기사들은 폐수 무단방류 사실을 알고 사진을 찍어 행정관청에 고발도 하는 등 개별적인 개선노력을 해 왔다. 하지만 이들에게 돌아온 것은 '계약해지'라는 불이익뿐이었다.
실제 레미콘 운송기사들이 '노비문서'라고 부르는 '레미콘 운반 불하계약서'에서는 "운송기사는 원거리 소량 운반 또는 조기출근, 근무시간 연장 등을 이유로 회사의 배차 지시에 불응해서는 안되며, 불응시 회사의 제재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고 못박고 있고, 나아가 "회사의 운행지시를 어겼을 때"를 계약해지 사유에 명시하고 있다.
유진레미콘 부천공장 소속 노조원 김아무개씨는 "레미콘은 1시간30분이 지나면 굳기 때문에 제 시간에 타설을 해야 하는데 어떤 날은 몇 시간씩 기다렸다가 강도가 떨어진 콘크리트를 타설한 적도 있었고, 심지어 반품을 싣고 올 때는 당연 폐기 처분해야 하는데 새로운 송장을 끊어서 다른 현장에 가라고 하면 두말 않고 갈 때도 있었다"고 말한다. 김씨는 "문제가 있다고 항의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다음날부터 배차를 해주지 않거나 회사 지시를 어겼다는 이유로 해고하는 경우를 봐왔기 때문에 먹고살기 위해서라도 선뜻 개선을 요구하지 못했다"고 덧붙인다.
이처럼 불법행위를 알면서도 속으로만 삼켰던 것은 비단 김씨뿐이 아니다.
노조원 고아무개씨는 지난 99년에 있었던 불법행위를 2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고백한다. "오전 6시30분에 OO현장으로 출발했는데 대기시간이 넘어 회차명령을 받았으나 다시 송장(납품확인서)을 새로 받아 기준시간이 2시간30분 지난 10시30분에 △△현장에 타설한 사실이 있다".
다른 노조원 손아무개씨는 "반품된 폐레미콘을 다른 현장에 다시 보내는가 하면 남은 물량에 추가로 실려보내기, 현장에 많은 차량을 한꺼번에 보내 심지어 5~6시간만에 타설하는 경우... 제가 겪은 것이 너무 많아 일일이 기억할 수가 없을 정도"라고 얘기한다.

노조 만들면서 '부실공사 추방 선언'... 발로 뛴 증거자료, 비리폭로 무게 더해

이처럼 회사의 지시에 따라 레미콘 운송기사들도 불법행위에 가담(?)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에서 이같은 비리가 한꺼번에 폭로된 것은 노동조합이 아니었더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레미콘 운송기사들로 조직된 전국건설운송노조가 결성된 지난해 9월. 노조(위원장 장문기)는 결성 당시 '부실공사 추방 운동본부'를 자체적으로 꾸려 레미콘 물타기, 불량레미콘 재사용 등 각종 비리에 대해 개별 회사에 항의공문도 보내면서 자정노력을 조직적으로 시작했다.
캠코더를 다룰 줄 알던 일부 조합원들은 일하는 도중 적발되는 불법 행위들을 그때그때 영상으로 담아왔고, 업무 틈틈이 숨겨간 사진기를 꺼내 포착되는 비리들을 찍어왔다. 영상자료만도 VHS테잎으로 수십여개에 이를 정도다.
실제 이날 기자회견에서 핵심 내용을 편집한 뒤 상영한 영상물에 대해 방송국 기자들마저도 "거의 카메라 출동 수준이네"라고 칭찬할 정도로 비리장면들이 잘 잡혀있다.
이와 함께 조합원들이 그동안 자신이 강요당해 왔던 불법행위들을 진술한 '확인서'를 제시한 것은 물론 회사가 관리하는 콘크리트납품서인수증과 장비운행일보, 출하일보 등을 그 증거자료로 함께 제출한 것은 조직적 힘이 아니었다면 가능치 않았을 일이다. 더군다나 노조는 레미콘업체와 건설회사간 커넥션이 있다는 의혹을 증명하기 위해 J레미콘에서 S업체에게 매월 200~250만원씩 상납했던 은행거래내역서까지 공개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노조가 바로 사회개혁의 주체

노조 오희택 사무차장은 "어떻게 보면 자신도 불법의 당사일수밖에 없었지만 문제를 느끼고 있는 사람들은 많았다"며 "이번 비리 폭로는 해고될 게 두려워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해 왔던 조합원들이 교육을 통해 노조가 개인적 이익은 물론 사회개혁에 함께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식이 확산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유진레미콘 부천공장에서 해고된 김장권씨는 "조합원 하나하나가 비일비재한 불법사례를 입증할 수 있는 증인들이었는데 알고도 차마 제기를 하지 못하면서 많은 감정이 쌓였다"며 "노조가 폭로한 사실들이 사회문제화가 되고, 건설현장의 비리구조를 바꿀 수 있는 조그만 힘이라도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김씨는 "다만 이같은 사실은 조금 잠잠해지면 잊혀질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스스로 자정운동에 더욱 힘을 기울여야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고질적인 비리구조에 익숙해져 있는 레미콘 업체들은 부실공사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불량레미콘 시중 유통 문제에 너무도 무감각하게 대응하고 있다. 노조가 비리를 폭로한 15일 한 업체 관계자는 "그런 불법을 저지른 적이 없다. 시간이 지난 레미콘에 물을 타서 다시 사용한 적이 있다면 그건 전적으로 운송기사 책임이다"며 발뺌하기 급급했다.

그러나 최근 노조가 이같은 비리사실과 레미콘 업체-건설업체간 커넥션을 근절해야 한다는 내용의 신문광고를 냈을 때에도, 업체 이름이 거론된 삼성, 동부, LG그룹들에서는 한 건의 항의전화도 없었다고 노조 관계자는 전한다. 이는 이들 업체들이 노조가 폭로한 비리 사실들을 대부분 알면서도 암묵적으로 묵인, 방조해왔다는 또다른 혐의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나 사용자 협회라고 여기에서 비켜가진 않았다. 주무부처인 건설교통부는 "아직도 레미콘에 대한 품질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노조 주장이 사실임을 시인했고, 대한건설협회도 "불량레미콘 납품 보도와 관련 부실공사의 우려를 금할 길이 없으며...(중략)... 향후 불량레미콘이 현장에 절대 반입되는 일이 없도록 검사를 철저히 할 것을 회원사에게 계도하였습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다. 노조에 의해 불법사례가 가장 많이 적발된 유진종합개발(대표 유재필)은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400여명을 해고하고 합법적인 파업기간동안 불법대체근로를 투입하는가 하면 이에 항의하는 조합원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더군다나 대부분의 레미콘 업체들은 이들이 '지입차주'로서 개인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가 아니라며 '노동조합'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파업 3달째에 접어든 노조가 자신들의 근로조건 개선 뿐 아니라 부실공사 척결을 통해 모든 국민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삶터를 만들겠다고 의지를 밝힌 것은 노동조합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대목이다. 거기에, 노조운동의 희망이 있다.

ⓒ 2007 OhmyNews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