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와 국수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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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정(quickman)등록 2001.05.25 18:16
강화도에 가면 1871년에 세워진 척화비가 있다. 비석의 내용을 보면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 서양 오랑캐가 침입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자는 것이니, 화친을 주장함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라는 주문(主文)을 큰 글자로 새기고, "戒吾萬年子孫 우리들의 만대자손에게 경계하노라"라는 글귀도 덧붙여 놓았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비석은 많이 닳았지만, 그 정신만은(?) 여전히 한국인들 가슴에 많이 남아 있는 듯하다.

사실 중 고교시절 한국 근현대사를 배우노라면, 절로 탄식과 분개가 쏟아져 나왔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많으리라. 고려 때 몽고침입 이후 조선말 일제강점기까지의 조선의 정치사는 외침에 의한 부침의 역사였다. 게다가 우리는 한국전쟁 이후로도 주변 강대국들의 영향을 받고 있다.

이런 역사의 어두운 기억들은 비단 한국인들뿐만 아니라, 제국주의에 의해 밟혀진 경험이 있는 동양국가에 보편적으로 깔려 있는 정서인 국수주의를 형성하게 만들었다. 민족-민족주의라고 표현해야 옳은 걸까-단일 민족 국가인 한국에서는 특히나 강한...

칼 슈미트는 '냉전시대가 친구와 적의 세계였다면 세계화 시대는 친구건 적이건 모두 경쟁자로 바뀌는 세상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어쩌면 삭막한 말로 들릴지 모르지만 현대사회를 정확히 꿰뚫어 본 예리한 지적이었다.

하지만 한국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들을 보노라면 한국에서는 이런 말이 통하지 않는 것 같다. 필요에 의해 외국인 투자를 받아들이긴 했지만 한국에선 여전히 외국기업, 외국제품, 외국인에 대한 감정은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일부 고소득층의 외제 선호도는 논외지만...

수입차의 시장 점유율이 조금만 올라도 사치품 구매가 증가했다고 언론에 매도 당하기 일쑤이고, 외제 담배라도 필라치면 주위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을 때도 있다.

그리고 한국에 진출한 다국적기업과 한국기업의 경쟁 시 다국적기업이 잘 하면 별로 칭찬하지 않고 못하면 크게 얘기하고, 국내기업이 못하면 언급하지 않고 잘하면 토종기업이 역시 최고라고 크게 칭찬한다.

'잘하고 있는데 뭔 소리냐'고 한다면 할말이 없어지지만, 정부의 간섭이나 언론플레이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주변 교역국들의 반발로 수출입에 규제를 당하는 것은 둘째치고라도 결국 한국의 경쟁력에도 부담을 주는 꼴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문제는 현재 구조조정을 기다리는 부실 기업들의 처리 문제이다. 공적자금을 쏟아붓는다고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고, 결국 해외매각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길이 유일무이한 해결 방안이다.

그런데, 먼저 한국에 진출한 다른 다국적 기업들이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면, 매각 협상들이 순항을 할 수 있을까?

연세 지긋하신 분들은 국내 기업들이 해외로 매각 당하는 꼴을 보면서 국익이 유출된다고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시다. 아니 젊은 층에서도 이런 걱정들을 많이 하고 있다. 하지만 '우물 안 개구리의 시각'이라고 잘라 말하고 싶다.

예를 들어 집의 유일한 생계수단으로 트럭이 있는데, 트럭을 몰던 아버지가 사고로 다리를 크게 다쳐 몇 년간 트럭을 몰 수 없게 되었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 집은 아버지가 다 나아서 트럭을 다시 몰 수 있을 때까지 트럭을 갖고 있으면서 손가락만 빨고 있는 것이 옳을까? 아니면 일단 트럭을 팔고 다른 생계수단을 구입하여 당장 눈 앞의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옳을까?

식구들의 노력 여하에 따라 후일 트럭은 다시 살 수도 있는 문제이다. 당장에 무용지물인 트럭을 시간이 경과할수록 값어치가 떨어지게 둔다는 것은 경제적 낭비일 뿐이며 다 같이 굶어죽자고 작정하는 것과 진배없다.

현재 경제대국으로 군림하는 미국 역시 70년대 말부터 90년 초까지 구조조정 과정을 거쳤다. 미국의 자존심이라 불리던 록펠러의 건물들과 콜림비아 영화사까지 일본인의 손에 넘겨졌을 때 미국 국민 역시 지금의 한국 국민처럼 분노(?)했었다. 하지만, 미국은 10여 년간의 긴 구조조정 과정을 성공리에 마침으로써 90년대 중순 이후 '신경제'라고 불리는 현재의 미국으로 우뚝 설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병법에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잘 구별해야 한다'라고 했다. 죽는 걸 알면서도 무조건 돌진한다고 해서 우리는 그걸 '용기'라고 불러야 하는 걸까?

무조건 자기 것만을 보호하고 아낀다고 해서 국수주의를 진정한 애국심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적(?)을 쓰러뜨리기 위해선 때론 팔을 내어줄 수 있는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용기가 필요한 때가 있다. 지금이 바로 그러한 때인 것이다. 잃으면 얻는 것이 있는 법, 당장 눈앞의 괴로움을 피하려고 뻔히 보이는 망국의 길로 들어설 수는 없는 것이다.

한국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들이 한국에 와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외국인 투자가 늘 수 있는 방법이며, 진정한 애국이라는 것을 주장한다면 나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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