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아빠, 인터뷰 당하다

엄마, 아빠 마음 다 그럴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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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옥(hopes80)등록 2001.08.10 19:02
인터뷰는 재미있는 일이다. 그 사람의 색다른 면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만난 인터뷰 대상자는 다름 아닌 엄마와 아빠. 관심을 받는 대상자에서 벗어나 어느새 의무만 남은 이들.
인터뷰를 통해 아버지·어머니로서가 아닌 새로운 그들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술에 취한 상태가 아니면 말을 별로 하지 않는 이용우씨(우리 아빠)는 50대의 전형적인 한국인 남자다. 그러나 식구들에게 간간이 보여주는 행동은 감동 그자체. 박옥남씨(우리 엄마)는 그 나이의 여성들에 비해 철없어 보이는 행동을 가끔 저지르는 개구쟁이이지만, 순수하고 재미있는 사람이다. 이제부터 그들의 감정의 선을 따라가 보도록 하겠다.

인터뷰는 어느 패스트 푸드점에서 진행됐다. 부모님의 돈을 쓰게 해서는 안된다는 이상옥씨(첫째언니)의 엄포로 인해, 싸면서도 쉽게 먹고 즐길 수 있는 모 패스트 푸드점으로 향했다. 그곳의 팥빙수 가격이 엄청 싸다는 소문을 이미 들었기 때문이다.

이용우씨는 팥빙수라는 것을 진정 모르고 있었다. 시골에서 나서 그곳에서 농사를 짓고 산 농촌 아저씨가 팥빙수를 알고 있기란 어려운 일. 옆에서 박옥남씨가, 그것도 모르냐며 핀잔을 건넨다. 딸 앞에서 망신살을 산 이용우씨의 표정이 울그락 불그락~~.
난 능청을 떨며 존댓말로 인터뷰를 하기 시작했다.

서울에 올라온 이유는?

이용우 : 그냥 올라왔지. 니 엄마가 하도 가고 싶어하는 것 같아서, 니 언니가 건강 검진 예약했다고 오라고 하대.
박옥남 : 김치 담가 줘야지. 반찬 다 떨어졌다며? 글구, 언니(우리 큰이모)얼굴도 본지 오래됐고. 그렇지 뭐.

꿈은 무엇이었는지요?

이 : 꿈이 어딨어. 꿈이 있으면 뭐해? 되지도 않는 거
박 : (망설이다가...)나는 신사하고 결혼하는 거였어. 양복입고, 직장 반듯한 사람하고 결혼하는 거였는데...(옆을 슬쩍 보면서)

이용우씨는 물어서 뭐하냐는 듯한 대답이었다. 그런 회의적인 발언은 처음이었다. 가난한 집안이라, 어렸을 적부터 워낙 고생을 많이 한 탓에 꿈을 키울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리라. 또한 우르과이라운드, 소파동 등으로 농촌에서의 희망을 잃은 그가 꿈을 갖고 있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박옥남씨에게 물었다. 꿈이 이뤄진 것 같냐고.
그는 “씩” 웃으면서 “그렇지 뭐”한다. 농부와 중매로 만나 살게 되었으니, 양복입는 신사를 어찌 만나겠는가. 그래도 만족스런 표정이다.

그럼 두분이 가지고 있는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남보다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요?

이 : (쑥쓰러워하며)그런 것도 답해야돼? 아빠는 그런 거 없어. 그냥 열심히 살면 되지 뭐. 글구, 남한테 폐끼치는 거 안하면 되지.
박 : 엄마는 사랑을 많이 베풀어. 공장 아줌마들이 나보고 좋대. 말도 잘하고 사랑도 잘 베푼다고...

결국 이용우씨는 자기 자랑을 하지 못하고, 빙 둘러서 말하고 만다. 박옥남씨는 신이 났는지 공장 아줌마들이 자기가 말도 잘하고 잘 챙겨 주니까 자기를 좋아한다고 자랑이다. 게다가 공장에서 남편보다 인기가 더 많다나 뭐라나(두 분은 같은 직장에 다니신다).

8월 5일 서울에 도착한 이들은 나름으로 바쁜 일정을 보냈다.
첫날은 박옥남씨의 언니(이모)를 만나러 의정부에 갔고, 둘쨋날은 63빌딩을 보러 갔으며, 마지막 날엔 건강을 체크하기 위해 건강검진센타에 갔다. 3일동안의 서울 생활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지 물었다.

두분 모두 : 그거지 뭐. 거 뭐여. 수족관에서 그거(바다표범쇼) 본게 제일 좋더라. 전망대 가서 망원경으로 보니까, 한눈에 대번 다 보이데.

이렇게 말하면서도 다 좋았다고 한다. 시골에서는 보지 못하는 빌딩을, 그것도 63층이나 되는 빌딩이니, 얼마나 놀랐겠는가. 처음 63빌딩이 지어졌을 때는 전국적으로 선풍적인 인기여서 많은 사람들이 보러왔지만, 이제는 흔한 게 빌딩이라서 별 인기가 없는데도, 그렇게 재미있었나보다.

시골 가면 뭐할꺼예요?

이 : 집에 가면 뭐햐. 내일 하루 밖에 더 놀아. 들에 가서 풀이라도 뽑고, 서울 있느라고 못 본 전답 둘러봐야지. 근무도 하고. 뭐. 그렇지. 그러다 보면 세월 가는거여. 뭐
박 : 장봐야지. 열무 뽑아다가 팔아서 돈 벌어야지. 우리 상복이(하나뿐인 남동생) 돈줘야지.

서울에서 여기 저기 쫓아다니느라, 이들의 눈에는 핏발이 섰지만, 그래도 농사일이 최고인가 보다. 땅만 바라보다, 농촌 경제가 피폐해지자 공장으로 터전을 옮긴 이들이지만, 그래도 땅은 끝까지 놓지 않을 심상이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으세요?

이 : 니들만 건강하면 돼. 공부 잘하고 건강하면 되지, 딴 거 있어?

두 분이 어떻게 사실 거냐고요?

박 : 뭐, 우리는 이제 뭐 다 살았는데, 우리 걱정은 하지 말고,
니네 건강한게, 제일 좋더라.

오죽 밥 먹는 게 걱정이 됐으면, 휴가인데도, 김치 담가주러 서울에 올라오겠는가.
짦은 인터뷰였지만 그들의 진솔하면서도 푸근한 마음을 접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어느새, 팥빙수는 하얗게 녹아있었다. 녹아버린 팥빙수를 이용우씨는 서둘러 입에 떠 넣는다.

자신을 지탱하게 해 주었던 꿈, 그런 꿈을 잃을 수 밖에 없었던 처지, 못 배운 섦움이 아끼는 말 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딸 앞에서 자신들의 못난 인생을 말한다는 것이 얼마나 쑥스럽고 부끄러운 일인지 그들은 안다. 사회 탓보다는 그들 스스로가 부족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딸 넷, 아들 하나를 바라보며 50의 문턱을 넘은 그들. 그들은 독립 생활을 꾸려가는 자식들로부터 독립할 때가 멀지 않은 듯하다. 이제 자식보다는 서로에게 정성을 쏟을 때가 되지 않았을까?

후기 : 엄마, 아빠 제가 인터뷰 한다고 해서 당황하셨죠? 쑥스러워하면서도 대답 잘 해주서 고마워요. 그리고, 서울에서 저희 밥해주랴, 김치 담가주랴 고생 많으셨죠? 언제 엄마, 아빠를 편히 해드릴지... 못난 저희네요.
말 할 게 있어요.


엄마, 아빠, 정말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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