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동아 창간에 얽힌 일제의 통치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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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진(jean)등록 2001.08.18 16:08
조선, 동아 창간은 3.1운동 이후 강압적인 '헌병무단통치'가 더 이상의 효력을 발휘하기 어렵자 소위 `문화통치`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일제의 회유책 중 하나였다. 조선독립을 주장하는 '급진적'인 기사만 아니라면 적당히 반일감정을 선동하는 기사는 총독부가 그냥 묵인해 주었다는 것이 사료에 잘 나와있다.

무슨 뜻인가? 만주에서 총맞아 죽고 얼어죽으며 무장투쟁하는 것만이 길은 아니라는 편리한 변명거리를 지식인들에게 제시한 것이다. 이렇게라도 숨통을 틔워주지 않으면 또 다시 제 2의 3.1운동이 일어나 식민통치가 막다른 골목으로 치달을 것이라는 사실을 총독부는 잘 알고 있었다. 이것은 구미의 제국주의자들 역시 단골로 활용한 식민지 통치 전술이기도 하다.

친일부역자들이 급증한 것이 이 무렵부터라는 사실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조선, 동아가 일부 반일성 기사를 무슨 대단한 독립운동의 증거라도 되는 것처럼 내세우는 것은 1930년대 이후의 노골적인 친일선동 기사와도 대비가 되지만 그에 앞서 얼어죽고 굶어죽으며 나라의 독립을 위해 피눈물을 흘린 항일투사들에 대한 커다란 모욕인 셈이다.

거꾸로 보면 조선, 동아의 일부 반일성 기사는 민중과 지식인들에게 이 정도 자유까지 보장해 준다면 일제 통치도 견딜만 하다는 나태함을 심어주었고 급기야는 적극적인 친일행위로 체제에 편입하도록 부추기는 효과를 거두었다.

이들 일제 부역자들로 인해 총독부의 조선통치가 얼마나 수월해졌는지는 두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당시의 증언을 채록해 보면 정작 일본인 관료들보다 오히려 일제의 주구노릇을 맡고 나선 조선인 부역자들의 악랄함이 더욱 심했음을 알 수 있다. 이회창 총재 부친의 일제 검사 서기 노릇 역시 이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일제 시대에는 잘 나가봐야 서기 노릇이나 할 수 있었던 이 친일부역자들이 해방이 되자 미국을 등에 업고 친일파 처단을 주장하는 눈엣가시 같은 30만 양민을 빨갱이 소탕을 명분으로 학살하며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지배자로 등극한다. 이들이 이후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자유민주주의`를 지켰다는 명분까지 획득해 오늘의 기득권을 형성하게 된것이다.

항일투쟁을 주도한 좌익출신의 지휘관들이 상당수 포함된 인민군이 남한으로 쳐들어 오는데 이들과 맞서는 남한군부의 실력자들이 하나같이 일제시대에 독립군들 때려잡는데 앞장섰던 김창룡같은 자들이더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들 입장에서는 남한은 일제시대와 하나도 다를 것이 없는 한심한 친일파의 소굴로 보였을 터이다.

한국전쟁의 양상이 현대 전사(戰史)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처참한 민족내부의 학살극으로 치달았던 것은 바로 이런 항일 세력과 친일 세력간의 해묵은 증오심과 목숨을 건 대결이 배경에 깔려 있었던 것이다.

결국 조선, 동아는 창간 자체가 소극적 친일행위였던 셈이며 해방 이후엔 반공일변도 논조와 매카시 사냥으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들 친일기득권 세력의 성채 노릇을 해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j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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