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노무현이 우리의 희망일 수 있는가

김근태를 희망의 대안으로 본 386동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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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용(in85)등록 2001.09.29 16:57
며칠 전에 동지가 퍼올려주신 신동아 10월호 정혜신의 남성탐구, 김근태의 이상주의(shindonga.donga.com)를 보고 한마디 덧붙입니다. 저는 동지를 한 번도 보지는 못했지만, 소위 386이라고 하는 비슷한 연배로서 반갑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아마도 동지가 그 글에 공감하고 있고 김근태 씨에게 희망을 갖고 존경하기 때문에 올려주신 거로 생각됩니다만, 제 솔직한 느낌은 사실 김근태 선배를 존경함에도 불구하고 허탈감과 식상입니다. 왜 그런지 제 얘기를 들어주시기 바라며, 그냥 이런 생각도 있구나 하고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글을 쓴 정혜신이라는 이는 남성상담 전문의사이고 여성잡지 등에 재혼설로 가십기사 정도가 나온 적이 있는 거 같습니다. 동아일보류의 수구언론이 김근태 씨를 기사거리로 삼고, 정신과의사가 정치인 김근태 씨를 탐구해서 정치와 무관한 인간의 희망을 이야기한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 사회의 희망을 희화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정혜신 씨의 원문을 보시지요. "필자는 김근태의 정치적 희망에는 큰 관심이 없다. 그런 일은 정치평론가의 몫이다. 이 글은 인간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은 무엇인지, 우리에게 희망이 왜 필요한지를 인간 김근태의 삶의 역정을 통해 살펴보기 위한 것이다... 나이 50이 넘어서야 김근태는 '아이들 앞에서 체포당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이기 싫은 인간적 고민'에서 해방된 삶을 누리고 있다... 평생을 민주화운동을 위해 헌신하고 말년에 경제적인 사정으로 치료비를 걱정하다 타계한 계훈제 선생처럼 그렇게 살아야만 한다면 그건 너무 부당하다. 김근태처럼 미련하게 수많은 사람의 희망을 위해 개인적 삶을 희생한 사람들도 시샘이 날 만큼 성공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야 또 다시 우리 앞에 불행이 닥쳤을 때 용감하게 나서는 사람들이 많아지지 않겠는가. "

여기에서 정혜신이라는 의사가 얘기하는 인간다움과 희망이란 우리가 느끼는 희망과는 거리가 멀다고 느껴집니다. 사람의 삶에 기초하지 않은, 즉 유물론적이고 정치적이지 않은 희망이란 게 있을 수 있는지... 역사는 그런 이름의 희망을 아편이라고 불러왔다고 봅니다. 그리고 김근태의 해방과 성공이란 무엇인지 분명해지는데, 그건 바로 기회주의를 은폐하고 있는 '성공한 사람들의 이데올로기'와 다르지 않다고 파악됩니다.

제가 말하려는 것은 김근태 씨 같은 분에 대한 인간적 호감(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희망을 버리지 않은 초월적인 사람) 자체에다가 우리네 부모님들과 이웃들의 운명을 맡길 수는 없다는 겁니다. 그건 정혜신(제가 보기엔 여유있게 사는 개념없는 자유주의자)같은 사람이 좋아하는 인간형일 뿐이겠지요. 김근태든 예수든 누구든 그와 같은 성공 이데올로기가 우리네 민중의 자주성을 기만하고 노동의 결과들을 도둑질해왔다고 단호하게 얘기할 수 밖에 없군요.

요즈음 한국사회에서 또 다시 이런 거짓희망 만들기가 준비되고 있는데, 김근태 선생과도 관계가 있어서 말씀드립니다. 바로 김근태 씨가 연대하고 있는 소위 여권내 개혁그룹(사실은 보수 개량주의자들)의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가 그것입니다. 노무현은 서민이미지에 고졸출신으로 성공한 변호사, 대중의 한풀이에 더 없이 좋은 아편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 역시 우리의 희망이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봅니다. 제 얘기는 출세지향적인 가짜 386들의 거짓 희망과 대안을 경계하자는 것이고, 그 뒤엔 김근태, 노무현 씨와 같은 과거 재야 정치인들이 서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들의 희망은 우리네 노동하는 사람들의 인간적인 삶을 향한 투쟁 속에서만 구체화될 수 있겠지요

95년 김근태 선생이 의회에 진출하기 전에 4호선 지하철에서 그분께 인사하고 대화한 적이 있었는데, 그 후 그의 홍보물을 몇 차례 받았었습니다. 당시 선거국면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선생님은 진출할 수 있겠지만 보수야당( 당시 국민회의)이 기층의 희망이 되지는 못할 것"이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의 자서전 '희망의 근거'에 제시되었던 민주대연합론은 빛을 잃은 지 오래되었고, 그때 이미 엘리트주의의 색채를 읽을 수 있었지요. 오늘 그에게서 타협, 아니 기회주의를 얘기하는 것은 바로 현 정권에 참여하고 있는 책임때문입니다. 군사독재시기가 아니라 오늘 감옥에 갇힌 제 동료와 노동형제들을 생각하면서 저는 우리에게 있는 희망은 정말 우리들 자신뿐이라는 현실의 엄연함에 매일매일 눈물을 흘린답니다.

동지, 묵은 술이 더 좋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 새술을 애써 빚어 놓고도 낡은 부대에 담으려다 새 술을 버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들은 새술을 담아낼 새 부대를 새로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저는 진짜 386을 자임하는 동지의 생각이 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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