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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한 사람이라면 첫 아이를 받아들던 순간의 생경함과 가슴 뻐근하게 하는 책임감들을 경험하였거나 혹은 하게 될 것이다. 아이가 생기기 전의 가정이란 그저 연애의 연장으로 마침내 사랑하는 이와 한 공간을 쓰게 되었다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다 아이가 생겨나고 24시간 끊임없이 무언가를 요구하는 작은 생명체와의 전쟁이 시작되고 나면 사랑하는 그와 나의 아지트에 비상이 걸린다. 순전히 모유만으로 백일 무렵, 몸무게가 두 배를 넘었을 때의 그 감동... 보람이라는 말을 내 생애 처음 떠올렸었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육아일기가 어느 새 15년째로 접어들고 있다. 아이가 처음 학교를 가서 적응하고 친구들과의 문제를 해결해 가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결국 아이가 크는 만큼 내가 자라는 일임을 깨달으면서 말이다. 내가 자란다 함은 나의 모난 부분을 갈아야 하고 내가 해결할 수 없었던 문제도 아이와 함께 직면하면 나의 온 힘과 지혜를 모아 풀어야 한다. 결국 풀지 못할 경우도 있었다. 그때는 아이와 내가 함께 기다리는 법을 배웠다. 처음에 몹시 나를 힘겹게만 하던 아이가 이제는 내게 아주 소중한 부분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마도 우리가 그렇게 함께 지난 시간을 살아냈기 때문이리라.
이혼률 급증, 가정파괴...등의 기사가 도처에 흔한 요즘 가족제도, 혹은 결혼제도가 어느 만큼이나 안정적인 제도인가 하는 문제를 한번쯤은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일단 그 관문을 통과한 후라면 그 제도가 주는 여러 가지 책임을 이행해야하며 또한 그 제도가 주는 혜택도 누릴 수 있다. 결혼이란 제도가 주는 많은 사회적 책임 중에 가장 큰 것은 아마도 '육아'이며 '부모 되기'일 것이다. '부모 자격 시험을 치러야한다'는 이야기를 어느 글에서 본 기억이 난다. 나 자신도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면 내 아이들이 나보다 어떤 부분에서 더 뛰어나고 지혜로운 이를 만났더라면 훨씬 더 멋진 아이들로 성장할 수 있을 건데 하는 자격지심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얼마 전, 우리 이웃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중학생 아이들의 중간고사를 며칠 앞에 두고 일어난 일로, 늦은 저녁 중학생 딸과 엄마가 몹시 다투었다고 한다. 그리고 엄마와 딸은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고 그로부터 30여분 후, 엄마에게 사과를 하러 들어간 딸아이는 엄마의 목을 심하게 조르고 있는 아빠의 넥타이를 제 손으로 풀어야만 했다고 한다.
들리는 이야기로 그 엄마는 자기 사업을 하던 중에 상당한 개인 부채를 갖고 있었으며 채권자들로부터 더러 시달림을 받아왔었다고 한다. 그 와중에 한창 예민한 시기의 딸과의 격전, 그 시절을 거친 이라면 누구든 쉽게 상상할 수 있을 날카로운 신경전과 말들을 예상해 볼 수 있다. 그래도 뭔가 부족하다. 아주 많이 부족하다. 그렇게 심하게 딸과 싸우고 들어간 뒤 엄마가 한 행위를 설명하기에는 말이다. 엄마가 다시 살아 나와 "아가야, 이건 절대 네가 잘 못한 것이 아니란다..."하고 설명해준다 해도 그래도 많이 모자란다. 이웃의 그 엄마에 대한 모든 이야기는 그렇게 전해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그 엄마는 자신의 부채를 딸아이에게 모두 떠넘긴 꼴이 되고 말았다. 아이는 그 부채의 양이 얼마인지 아직은 가늠할 수도 없을 것이다. 제 손으로 풀어낸 타이만으로도 충분히 아이를 가위눌리게 할 수 있다. 그렇게 죽어간 엄마의 삶은 또 얼마나 어이 없는가. 이웃으로부터 쏟아지는 눈초리와 수군거림들은 밀쳐놓아도 이미 부서진 그 가정을 어떻게 다시 치유해나갈 것인가는 그 가족원 모두의 무거운 과제로 남게되었다.
한 가정을 이루고, 그 안에서 '부모 되기'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님은 나만의 엄살일까? 어른이 없는 시대라는 말을 늘 마음에 새기며 이런 시대를 살며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쉬이 얻어지지 않는 답을 오늘도 곰곰이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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