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금 3000만원에 이자 2000만원

일산청구오디세이 분양자들의 하나은행 본점 시위사건의 풍경

검토 완료

최훈(hq1911)등록 2001.10.24 20:33
2001년 10월 23일 완연한 가을 향기를 느끼고 있던 기자는 을지로 1가를 거닐고 있었다. 왠지 파란 가을하늘과는 어울리지 않을 듯한 하얀 바탕에 빨간 글씨가 갑자기 시선을 고정시켰다. 시끌벅적한 마이크소리에 주위가 그쪽으로 집중되었다. 시위를 한참하고 있던 중이였던 것이다. 시위를 하던 분들이 나누어주는 쪽지를 받기 전에 우선 건물근처에 죽 둘러져 있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원금3000만원에 이자 2000만원이 웬 말이냐?'

그 글귀에 사채업자에 관련된 시위인가 생각하였다. 하지만 시위대가 쭉 둘러서 있는 곳은 30년 흑자 경영을 자랑하던 하나은행 본점 이였다. 그 전까지 참신하고 긍정적인 이미지로 다가왔던 은행이었기
에 더욱 하얀 소복을 입은 시위대의 연사에 귀가 쏠리기 시작했다.

그 연사의 주요 내용은 이러했다. "저희는 1997년 10월 초 (주)청구가 시공하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백석동 1330번지 청구오디세이를 분양 받은 950여 가구 계약자 및 중도금 대출 신청자입니다. 분양
당시 (주)청구는 하나은행 등과 합작하여 중도금 대출을 널리 홍보하였고 분양자중 550세대가 260억원의 대출을 신청하였다. 이 중도금은 1998년 3월 1차 중도금을 시작으로 총 5차에 걸쳐 순차적으로 집행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하나은행 등은 중도금으로 쓰일 대출금을 아무런 통보 없이 비밀리에 260억원이란 중도금 전체총액을 (주)청구의 계좌로 일괄지급하고 말았습니다. 단지 대출승인에 도장을 찍었다는
죄 아닌 죄(?)로 부당한 대출사건의 피해자이자 인질로 잡히고 말았습니다. 부패한 기업과 은행이 합작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후 청구회장 장수홍등은 한나라당 대선 자금 불법지원에 따른 선거법 위반으로 구속되었고 (주)청구는 법정관리 상태로 넘어가고 우리들의 한 서린 260억 대출금은 청구그룹 해체와 맞물려 그 종적을
감추고 말았습니다. 이후 하나은행은 덩그런 말뚝하나 없는 공사상황에서 원금과 이자를 갚으려고 선량한 시민들을 윽박지르고 하나은행으로부터 대위변제 요구를 받고 있는 서울 보증보험은 압류예고 통지문을 남발, 부동산 등에 가압류를 행사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 사건을 실정법으로써는 구제할 방법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씁쓸한 감정은 이내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러한 연사, 그리고 시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과 어조를 보면서 한 기사가 떠올랐다. 며칠 전 은행이 영업으로 벌어들인 이익 가운데 수수료 비중이 최고 64%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기사였다.

소액 투자자들의 계좌관리비용, 예금액에 비례한 대출이자 삭감은 물론이고 어린아이들의 돼지저금통을 지폐로 바꾸는 것까지 수수료를 거두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IMF로 인한 은행의 다시 태어나기 과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사회적, 경제적 약자의 부담 하에 이루어진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이 사건 자체와 은행의 현재 실태와는 동일한 관계에 있다 할 수 없다 할지라도, 이 사건도 은행의 충분한 위험부담의 설명이 없었기에 일어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점점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라는 미
명아래 점점 효율성과 수익성에만 매달려 약자에 대한 조그마한 관심도 사라지는 것 같은 현실을 대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야 파란 하늘아래 하얀 소복과 그 위에 새겨진 빨간 글자들이 익숙한 현실이 아닌가 생각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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