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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조선일보 10월 29일자 인터뷰에서 "김정일 답방 정치적 이용 절대반대"를 외치고 나왔다. 이게 무슨 소린가? 개인 관광이라도 오면 허용(?) 하겠다는 얘긴가? 남북 정상회담이 아니라도, 국정 최고책임자끼리 만나는 것 자체가 고도의 '정치 행위'라는 초보적인 상식을 모르지 않을 제1야당 총재의 입에서 이런 황당한 말이 나오다니...
이 말은 정치에 몽매한 바보의 虛言이거나 국민을 기망하는 어설픈 사기적 수법, 어떤 음모를 내포한 언동에 다름 아니라고 본다. 그의 언행이 '치고 빠지기 식' 일과성 술수가 아니라면 현실 정치인이 '정치' 자체를 惡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위험한 사고의 2중성을 배제할 수 없는 발언이고, 있을 수 없는 망언이다.
한나라당과 이회창 총재의 대쪽같은 대 정부·여당 공격의지나 '치고 빠지기 식' 파상 공세는 역대 야당 중 제일 많은 횟수의 장관 등 불신임 결의안을 발의한 실적에서도 혁혁하게 입증된 바 있지만 최근의 이한동 총리 해임안 국회부결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에서도 '정치인'이 아닌, 투사로서 그의 행보가 어떤 방식으로, 무엇을 겨냥하는지 짐작케 한다. 이날 인터뷰에서 이회창 총재는 이렇게 말했다.
"(임동원) 통일부장관 해임안 통과에 이어 총리해임안까지 자민련과 공조로 통과시켰다면 속은 시원했을지 모르지만, 국민들은 오만한 야당의 모습을 봤을 것이다. (이한동) 총리는 해임하지 않더라도 이미 견디기 어려운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고 생각한다."
햇볕정책의 '전도사'로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임동원 통일부장관의 목을 쳐서 정부의 햇볕정책 자체를 무력화하자는 의도였기 때문에 햇볕정책과 무관한 이한동 총리는 자기가 노리는 '먹이'가 결코 아니었다는 뜻이다. 시체에 매질은 자제하겠노라는 도량을 과시한 셈이다. 이미 운신을 하지 못할 정도로 짓밟아놨기 때문에 '목을 치지 않아도 목적은 달성했다'는 강자의 오만이 섬뜩하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 총재의 '김정일 답방 반대' 발언 부분을 살펴보자.
'조선' 이상하 정치부장이 질문에서 "(정부는)김정일 연내 답방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내년에라도 추진하려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대선 국면에 중요한 변수가 될 텐데" 라고 묻자 이 총재는 남북정상회담 자체의 의미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라고 전제하면서도 "내년 선거를 앞두고 김정일 답방이 정치적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다면 답방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고 밝힘으로써 김정일 답방에 대한 불순한 속내와 반대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같은 날짜 경향신문이 2면에서 톱기사로 보도한 "李총재 대선前 답방 반대" 제목은 이 총재의 심오한 의중을 비교적 정확하게 짚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총재가 답방 반대 이유로 든 '정치적 악용'을 정부 여당이 결코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에서, 과연 누가 '악용'으로 판단하고 매도할 것인지 자명하다는 점에서, 그의 레토릭이 노리는 숨은 의도를 간파하기란 어렵지 않다.
이회창 총재는 또 인터뷰 말미에서 같은 당 주진우 의원이 추진한 노량진 수사시장 불법입찰 담합의혹에 대한 질문을 받고 "주 의원 사건은 내가 사전에 알았다"고 중대한 한 마디를 남겼다. 차기 대선자금 공급기지설은 부인했지만 '주진우 사업 편들기'가 이 총재의 지원으로, 당 차원에서 추진됐음을 당당하게 보여주는 증언이 아닐 수 없다.
남북정상회담을 반대하다가 여론에 밀려 지지했으면서도 남북문제 전체를 포괄하는 '햇볕정책' 자체를 전면 재검토하라는 자가당착의 극치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지금까지 '발목 잡기'가 상생의 정치로 오해되는 이 총재의 옹졸한 정치는 언제쯤 자기모순에서 탈피하게 될까.
정부가 북한과 경협을 위해 쌀을 차관형식으로 제공하겠다는 것을 '퍼주기'라고 매도하더니 거듭되는 풍년으로, 쌀 수매가 문제로 농업인들의 비난이 일자 슬그머니 '쌀 보내기'에 동의해놓고, 인터뷰에서 느닷없이 창고에서 썩을지도 모르는 '묵은 쌀'을 보내자는 얘기였노라고 말한다. 10·25 재 보선 완승을 계기로 수구 냉전세력의 지지에 자신감이라도 얻었다는 말인가.
이 총재는 북한에 보낼 쌀의 생산연도를 말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아는데... 지금 와서 새삼스럽게 '묵은 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저의는 무엇인가. 김정일 염장 지르기를 작심한 것은 아닐까. 그의 추악한 독선과 냉전논리의 선봉에서 '김정일 서울방문 저지' 투쟁 피켓을 든 한나라당 의원들을 보게될 날도 머지 않은 것 같다. 고이즈미 방한반대 시위처럼.
우리는 민족문제에 싸늘한 이회창 총재의 심장에서 인류 보편의 휴머니즘이나 한 가닥 동포애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남북 화해협력 분위기에 재를 뿌리는 어리석은 행위만큼은 역사에 두고두고 씻을 수 없는 죄악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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