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섦

해인사에서 보낸 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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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성(leejaeand)등록 2001.11.04 14:05
너라는 단풍

김영재

이제 너의 불붙은 눈 피할 수 없다
감춰야 할 가슴 묻어둘 시간이 지나갔다
그 누가 막는다 해도 저문 산이 길을 트고있다


쉬고 싶었다. 그렇지만 단풍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좀 편하려고 오랜만에 답사팀을 따라 나섰다. 내가 타자 차는 출발했다. 이 답사팀을 안지는 5~6년된 것 같은데 둘러보니 다 낯설다. 그 낯섦이 편안하다.

안개가 자욱했다. 무진으로 가는 길이 이랬을까?

해인사로 오르는 홍류동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해인사로 들어선다. 일주문부터 흙길을 천천히 걷고 싶은 건 나의 욕심이었을까?
장경각을 둘러보고 있는데 서울부터 따라오던 안개는 비를 만들어 다가오고 있었다. 촉촉히 쓸쓸히 그리고 깊게 깊게 가을을 들이 밀고 있었다.

해인사 스님들을 위한 작은 서점에서 헬렌이어링의 조화로운 삶으로 마음을 따뜻하게 가다듬고 홍제암으로 향한다.
소리없이 다가오는 가을비를 맞으며 천천히 흙길을 걸어서 간다. 아주머니 두 분이 절을 하고 계신다. 나는 툇마루에 앉아서 비 내리는 가야산의 단풍을, 내 마음의 단풍을 가늠한다. 아직 단풍이 절정은 아니군. 가야산 너라는 단풍도 이재성 너라는 단풍도......

아주머니께서 나오신다. 저두 절하구 싶은데......어떻게......절 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아주머니들이 가셨다. 나만의 공간이다 자, 이제.
천원짜리 한 장을 불전함에 넣고 두손 모아 합장하고 대한민국에 산다고 주소를 말하고 생년월일을 말하고 이름을 말하고 절을 했다. 그런데 몇 번을 해야 하나 어떤 맘으루 해야 하나 뭘 빌어야 하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 사랑의 몸짓을 수도 없이 보낸 그 사람이 너라는 단풍처럼 다가오길 빌까. 내 꿈이 이루어지길, 가족의 건강과 화목을, 돈을 많이 벌게 해달라고 했던 것 같다.

답사 가서 절 해본 건 처음이었다. 그때 수덕사에서 보라색 옷을 입었던 그 여인처럼 내 모습도 단아하고 예뻤을까? 그랬을까?

원망스러웠다. 4시반이라는 약속시간이 더 오랜 시간을 이 툇마루에서 놀고 싶은데, 몇 날 며칠을 그렇게 놀면서 아까 산 조화로운 삶을 읽으며 뒹굴뒹굴 구르며 지내고 싶은데, 그러다가 시린 가을 빛을 가득 실은 홍류동계곡에 정말 이름처럼 빨간 단풍잎이 둥둥 떠내려가면 슬며시 다가가 내 종아리에 감기는 붉은 잎을 슬쩍 떼냈으면 좋겠는데.... 4시반. 미운 4시 반. 정말 미운 4시 반.

아쉬움을 두고 발길을 옮기는 것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물길을 보내다가 물들지 않는 너라는 단풍에 지쳐 발길을 돌리는 것 같다. 그래서 지켜보는 이도 없는데 뒤를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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