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하인가? 방수로 사업인가?

정부의 편법개발에 대항하는 고공 농성

검토 완료

최훈(hq1911)등록 2001.11.15 10:39
김중호 기자와 최 훈 기자 공동

'경인운하 반대', '침수지역 주민의 생존권을 외면하는 환경단체는 물러가라' 라는 상반되는 플래카드는 경인운하 건설 논란에 대한 핵심을 이야기하고 있다.

인천시 목상동의 '고공농성' 현장은 중장비가 계속 소음을 내며 달리는 언뜻 보기에도 커다란 공사장과 별 다를 바 없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거대한 중장비에 대비되어 더욱 초라하게 보이는 5-6M 정도의 철골 구조물 위에서 외롭게 추위와 함께 싸우고 있는 환경단체 관계자들과 그 옆에서 플래카드를 열심히 세우고 있는 주민들에게 '파이팅' 구호를 외치며 지나가는 중장비 운전자의 한 마디에서 별 문제 없어 보이는 공사장안에 어떤 긴장된 분위기가 흐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옹색한 철골 구조물 위를 힘겹게 올라서 보니 싸늘한 늦가을 바람과 함께 자그마한 텐트 옆에 화장실 역할을 하는 생수통이 '고공농성'현장의 어려움을 쉽게 알 수 있게 하였다. 거기에 주간에는 두 분만 투쟁하신다고 계시는 성혁수, 이진우 씨는 "3일째라 생활은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추위만은 익숙하지 않다"고 하시며 이렇게 어찌 보면 무모한 일을 한 배경에는 단지 일반에게 알리는 것이 목적이다. 잘 될 거 라고 생각하느냐에 대한 질문에는 "이는 확신의 문제보다 당연한 바램의 문제"라고 하였다.

3일째 추위와 싸우고 있는 그들은 굴포천 임시방수로 사업을 핑계삼아 환경영향평가가 끝나지 않은 경인운하건설을 반대하는 서울, 인천 환경단체 관계자였다. 시위 지원단 중 한 분인 환경정의 시민연대 정책실장인 오성규 씨는 우선 여러 증거를 토대로 이번 굴포천 방수로 공사가 사실상 정부 주도의 편법적인 경인운하 건설임을 분명히 하였다.

오 실장은 경인운하건설을 반대하는 이유로 운하 내 수질문제를 첫 번째로 들었다. "운하가 시작되는 행주대교 부분도 3-4급수에 불과한데 그 물을 가두어 놓을 때의 수질은 제 2의 시화호를 상상하게 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운하의 끝과 만나는 인천항의 해수염분농도 변화에 따른 해양생태계 파괴를 들었다.

"경인운하 건설 근거중의 하나인 바닷모래를 나르기 위한 해사부두 예정지에 천연기념물인 황조롱이와 재두루미서식지가 있어 환경파괴가 이루어 질 것입니다"라고 말하면서 그 외에 경제성 문제도 지적하였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경인운하의 백지화와 정상적인 절차에 의한 굴포천 유역 수해방지대책을 주장하고 있다. 환경단체측은 우선 환경영향평가보완 요구와 경제성 재검토 요구를 하였지만 그 결과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에 법정투쟁까지도 병행하고 있다.

환경단체들의 활동에 대한 주민들의 의견은 바로 가까운데서 들을 수 있었다. 시위장 바로 옆에서 플래카드를 걸고 계시던 인근 지역 주민인 허찬행 씨는 "이 공사는 단지 굴포천 방수로 공사일 뿐이며 이는 인천시 계양구 일대의 상습침수 문제 해결을 위한 생존권문제이다" 하고 말문을 열었다.

"굴포천 공사가 시작된 것은 92년부터였다. 그래서 논밭 다 팔았는데 지금 와서 어쩌자는 것인가? 막상 그들은 공사중지 이후 생계 대책에 대해서는 무책임으로 일관했다" 라며 반대운동의 시기와 경인운하 백지화 이후의 대안이 없음을 반박하였다. 그 때 옆에서 작업을 돕던 한 지역 주민이 "이런 식으로 하면, 이 지역에 환경운동 하는 사람들은 발도 못 붙이게 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에서 환경운동에 대한 감정이 상당히 격앙돼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지역주민의 감정에 대해 환경운동 관계자들도 인식하고 있었다. 오성규 실장은 "지역주민들의 처지를 십 분 이해한다. 하지만 우리가 주장하는 바는 명백히 경인운하 건설의 포기이며 생존권 차원의 치수대책을 위한 방수로 공사는 전적으로 지지한다. 하지만 방수로와 운하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의 차이는 엄청나다. 모든 오해는 정책형성과정과 실행에 있어서 폐쇄적이고 불공정한 태도를 견지해온 건교부에 전적인 책임이 있다"라고 말한다.

이번 사건은 소위 정부의 환경문제인식이 어느 정도인가를 가늠케 하는 극명한 사례였다. 눈에 보이는 경제적 효과에 집착한 나머지 법의 한계를 교묘히 이용하여 '일단 시작하고 보자'는 정부의 실적위주의 정책에 환경단체와 지역 주민들간의 감정의 골만 깊어가는 형국이었다.

새만금 사업이 보여준 잘못된 환경정책의 폐해는 정부가 주장하는 개발논리의 이익을 상쇄하고도 남는 것이였다. 결국 '인간이 살만한 환경'의 가치에 대한 정부의 근본적인 자세변화없이 이러한 논쟁은 앞으로 또다시 되풀이 될 것이다. 고공농성장에서 초췌한 모습으로 이야기하던 성혁수 씨의 말은 이런 점에서 곱씹어 볼 만하다. "가치관의 변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소유와 편리함, 이런 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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