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바, 졸라 짱나"로 시작하는 아이들의 말, 욕 권하는 사회로?!

검토 완료

양은주(wayfar)등록 2001.11.16 21:05
인터넷이나 피시통신을 통해 아이들이 친구들과 대화하는 것을 본 사람이라면 요즘 십대들의 언어에 대해 대강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오후 아파트 단지 내에서 딸아이(초등 2.)와 산보를 하다가 단정하게 교복을 받쳐입은 여중생들의 실제 대화를 듣게 되었다.

A ; 야, 우리 담탱이 오늘 왜 아침부터 사람 짱나게 야리고 지랄이냐?
B ; 그 년이 요즘 생리중일 거야, 신경 꺼. 뭘 쫀쫀하게 그런 걸로...진짜 짱나니까. 기분 잡
쳐!

뭐 대강 이런 이야기로 시작해서 이어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솔직히 아이들 얼굴을 한 번 더 쳐다보았다. 해말간 얼굴의 두 여학생은 얼른 보아도 불량기라고는 조금도 없어 보이는 아이들이었다.

이미 신문에서 몇 번 이야기 된 적이 있는 이야기라 새삼 실감하는 수준임에도 실제 아이들의 욕이 하나의 접두어나(부정적인) 말하는 과정에서 흥을 돋우기 위한 추임새같이 쓰이는 것을 보았을 때는 사실 적지 않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욕을 하지 않고는 대화가 안 된다는 아이들.

그런가하면 사이버 상에서 아이들이 주로 쓰는 말들은 어떤가.
'안뇽하세요.' '아라떠' '겅부' '겨런'...등등, 가만히 살펴보면 대화상에서 좀 더 빠르게 타자를 칠 수 있는 쪽으로 옮아가고 있다. 거기에 핸폰을 이용해 만들어낸 다양한 표현의 방식들도 아이들의 중요한 커뮤니케이션의 도구로 정착하고 있다. 예를 들어 (^…^) (^ ^) (^o^) (*^…^*)’는 ‘싱글벙글’, ‘m(… …)m <(… …)> …(.….)……’는 ‘미안합니다(고개숙였죠)’는 뜻이라고 한다. 웃는 표정만 해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고 한다. 그야말로 그들만의 상형문자들이 생겨나고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기란 어떤 시기인가. 신체적으로 정서적으로 가장 예민한 시기로 쉽게 상처받고 좌절하기도 하고 자신을 내보이고 싶어하는 등, 다양한 욕구들의 크기가 가장 큰 시기이다. 동시에 어쩌면 일생을 통해 가장 많은 규제가 적용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무엇인가 해서는 안 되는 것, 모범적이고 반듯한 것들, 혹은 규범 따위들을 파괴하고 싶은 욕구가 그만큼 큰 시기이다. 무조건 아이들에게 반듯한 말을 써라, 욕하지 말라, 사이버 상에서도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는 표준어를 사용하라 라는 식의 훈화만 되풀이하는 것은, 어른으로서 잘 못 된 길을 가는 아이들을 보고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는 식의 안이함일 뿐일 거란 생각이 든다. 아이들의 언어가 격해지면 격해질 수록 그 아이들이 받는 규제의 정도가 강하다는 반증이 아닐까. 실제로 아이들의 학교생활-입시를 향한 전쟁-은 예전 보다 훨씬 더 힘겨워진 듯하고 그만큼 교육현장은 더 비인간적이고, 더 비교육적인 상황으로 가고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다. 쉽게 변화되기 어려운 아이들의 교육현장에 혐의를 두고, 거칠어진 아이들 언어를 아이들이 처한 현실에 비추어 성찰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아이들의 몫이기 전에 어른들의 몫이다.

몇 십 년 전, 내가 처음 대학에 들어갔을 때 놀라우면서도 행복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풍부한 언어'였다. 남한 각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들의 언어는 각양각색이었고 늘 교과서언어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서울 말씨만 알던 내게 그 친구들의 다양한 말은 서울말에서 나를 해방시켜주는 듯했다. 그리고 언젠가 신문에서 읽은 '욕쟁이 할머니'의 구수한 욕이 듣고싶단 이유만으로 그 할머니가 경영하는 식당엘 가고싶어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요즘은 지방엘 내려가도 진한 사투리를 들을 수가 없다. '교육'과 다양한 매체들의 영향력은 참으로 위대하다. 어쩌면 우리 아이들은 이렇게 좁은 나라에서도 하나의 긴 산맥이나 큰 산, 강등을 중심으로 이쪽 저쪽의 말이 달라질 수 있단 사실을 영 모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섣부른 생각이 들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의 다양한 표현방식과 거친 욕설들을 바라 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마련된 <욕 방>이라든가, 사이버 상에서만은 적어도 문법파괴나 각종 상형문자들을 풍부해진 표현방식으로 용인해준다면 어떨까. 반면 정규 교육과정에서는 더욱 철저하게 올바른 언어교육을 하고-적어도 시험 답안에 사이버 언어나 욕을 쓸 아이들은 없지 않은가?- 아이들의 욕구가 비틀리지 않게 표현될 수 있는 공간을 충분히 마련하고 그 공간에서는 맘껏 발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거칠게 표현하고 싶을 때는 그렇게 하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러운 성장과정일 것이다. 그 성장과정을 필요 이상의 우려 없이 자연스럽게 바라봐 주는 어른들의 몫이 충실하게 이행된다면 아이들은 '경계', 혹은 '선'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경계' 혹은 '선'이란 바로 이 사회를 사는 모든 사람이 지켜야할 <약속>임을 아이들 스스로 깨달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사이버 상에서의 '욕설'은 이미 아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논란거리가 될 만한 사건이 보도될라치면 그 뒤에 엄청난 답변들이 붙는다. 그 답변들 중에는 성의를 다한 토론의 성질을 가진 것도 많지만 감정을 실은 욕설이 난무하는 것 또한 어렵쟎게 볼 수 있다. 이 욕설은 어른들의 것이다. 이런 사이버 상의 발언은 누군가의 말처럼 주장을 표현하는 발언이기보다는 '배설' 쪽에 더 가깝다. 자유로움을 특성으로 하는 사이버 세상에서의 이런 표현들을 없었던 걸로 할 수 있는가? 하나의 욕설이 게시판에 올라오면 또 다른 욕이 꼬리를 문다. 분명 이 사회를 구성하는 어른들의 목소리다. 그렇다면 이 어른들에게도 현실에서 올바르고 반듯한 방법으로는 해결되지 못하는 무엇인가를 짐작해볼 수 있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 정치적 상황들은 많은 규제들을 성인들에게도 지워왔다. 어떤 규제에 대해서도 자유로울 수 있는 사이버 세상에서 익명으로 현실에서 해결되지 않았던 문제들에 대해 적어도 맘껏 이야기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은 정신 건강을 위해 필요한 일이 될 수도 있다. 어른들이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성장과정을 보아주듯, 어른들도 어른들 스스로의 자정과정을 견뎌주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화가 날 때 화를 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욕을 먹어야 할 사람에게 칭찬이 가는 것 역시 옳지 못하다. 욕을 해야하는 상황이라면 누구든 욕을 해야한다. 욕쟁이 할머니의 욕에서 깊은 인간미를 느끼는 이유를 생각해 보라. 문제는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그 '선', 혹은 '경계'이다. 욕을 해야할 상황에서 욕을 하되, 무엇을 위한 욕인지를 먼저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 사회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도정임을 잊지 않을 때, 욕은 생명력을 얻어 사회를 기름지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사회의 건강성을 물을 때, 욕할 권리를 빼앗는 사회보다는 욕 권하는 사회 쪽이 더 그 사회의 건강성을 담보할 수 있다고 믿는다.
ⓒ 2007 OhmyNews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