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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현실은 현실이 아니다. 영화 속에는 현실과 환상이 존재하는 것이다. 허풍 같지만 김기덕 감독의 영화 '나쁜 남자'에서는 그렇다.
그 남자와 그 여자
목에 난 상처와 허름한 옷, 그리고 강렬한 눈빛. 왠지 쉽게 살아온 것 같지 않은 사나이 한기. 그는 사창가의 뒤를 봐주는 깡패이다. 그는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지만 길거리에서 우연히 본 그녀를 사랑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밑바닥과는 다른 세계에 사는 예쁜 여대생이다. 그래서 그는 그녀에게 덧을 놓아 밑바닥으로 끌어들인다. 그녀 또한 마법에 걸린 듯 덧에 빠져 사창가로 들어오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그와 같은 계층으로 변하게 된다. 그래야만 사랑이 이루어지니 말이다.
거울 속의 남자
그는 그녀를 바라본다. 하지만 그녀는 그를 바라볼 수 없다. 한기는 선화 자신이 비추는 거울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거울 속에서 그녀가 변하길 바라고 있다. 아니 기억 속의 누군가처럼 돌려놓아야 했다. 허물어져가는 그녀를 보는 아픔을 감수하고서라도.
유리와 거울
그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자신을 드러내는 유리는 아픔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그런 유리는 현실로 다가와 아픔을 주기도 한다. 부패한 경찰이 그의 구역에 올 때도, 선화를 데려올 때, 그녀가 변하는 모습을 바라볼 때도 거울 속에서 바라본다면 자신은 상처받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사람들이 자존심이라는 안전한 거울을 내밀듯이.
담배
그에게 담배는 대화이다. 사람들이 쓰는 여러 가지 말보다 한 가치의 담배로 통하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남자들이 그 동안 전유해왔던 대화의 수단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죽음에 이르기 직전까지도 그는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는 듯 담배를 꺼내 태운다.
선화
그녀에게는 그 자신이겠지만 한기의 눈에서는 기억 속의 누군가일 것이다. 다가가 서슴지 않고 키스를 해도 이상하지 않을 기억 속의 그녀. 하지만 선화는 그녀가 아니다. 그의 못 다한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 아픔을 머금고 그녀를 돌려놓아야 했다. 바다로 뛰어들기 이전의 그녀와 똑같이 말이다.
변화 그리고 사랑
그녀는 변화하기 시작한다. 그녀의 머릿속의 하얀 드레스는 현실 속에서 멀어지듯 기운 못에 떨어지고 그녀를 바꾸는 한기의 손에 의해 못은 바로잡힌다. 타락이기보다 그의 삶의 영역을 상징하는 검정 드레스가 하얀 드레스의 자리에 걸리게 된다.
그의 사랑은 그 안에 그녀를 가두는 것이다. 하지만 그 또한 변하게 된다. 그를 변하게 하는 것은 바로 사랑하는 그녀. 그가 안전하다 생각했던 거울은 그가 거울 안에 있다는 것을 모르게 했다. “깡패가 무슨 사랑이가?”라는 한마디의 대사. 그가 꿈꾼 운명적 환상이 헛된 것이지 않을까라는 물음을 주기도 하지만 거울은 그녀에 의해 깨지게 되고 그와 그녀는 벼락같이 떨어진 난데없는 운명을 받아들이게 된다. 과거처럼 교차된 운명의 기억이 그와 그녀를 만나게 하는 사진되고 그 운명과 같은 모습으로 그들은 만나게 된다.
자주 보이는 그의 죽음의 고비는 그녀의 사랑을 얻어내 그녀의 죽음을 대신한다. 그의 운명의 환상과 달리 현실에서 변화되게 되는 것이다.
영화를 보고나서
정해진 운명은 미래 속에서는 과거일 것이다. 그런 운명적인 미래가 과거처럼 교차할 현재는 환타지 속에서나 가능하다.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를 다녀오듯 예정된 운명의 기억을 더듬어 거슬러 올라가는 한기의 모습처럼 말이다.
한기가 느낀 운명은 현실 속에서 과거가 흘러가듯 환타지가 현실이 되어간다.
“나쁜 남자” 그가 나쁜 이유는 자신의 운명 속에 그녀를 끌어들이고 서로 변화해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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