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지 않을 권리

장애인을 배려하는 사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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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수(kangbs22)등록 2002.01.19 09:27
프랑스 정부가 지난 1월 10일 장애인의 '태어나지 않을 권리'를 인정한 이른바 '페뤼슈' 판결을 보완하기 위한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는 소식이다.

페뤼쉬사건을 이해하려면 18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한다.

1982년 임신기간 중 풍진(rubella)에 걸렸던 페뤼슈부인은 병원에태아 감염 여부와 함께 출산을 해도 이상이 없을지 진단을 의뢰했다.

병원측은 3차례에 걸친 정밀검사 끝에 "문제없다"는 판단을 내렸고 페뤼슈 부인은 이듬해 1월 니콜라라는 아이를 출산했다.

그러나 몇개월 뒤 니콜라는 중증 신경장애와 청력·시력 장애등의 증상을 보였고 의사들은 그것이 산모의 풍진 감염(congenital rubella syndrome) 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페뤼슈 부부는 92년 자신들과 아이 니콜라의 이름으로 병원을 상대로 피해보상 청구 소송을 냈다. 이른바 ‘출생 피해 보상청구 소송’이었다

같은해 법원은 병원 측의 실수를 인정하고 보상금을 지급할 것을 판결했다.여기까지는 국내에서도 가끔씩 보도되는 의료사고 소송과 다를게 없다.

그러나 항소법원은 99년 병원측이 페뤼슈 부부에 대해서는 피해를 보상해야하지만 니콜라에 대해 보상할 의무는 없다고 판시,논란의 불을 지폈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인간은 태어나거나 태어나지않거나 그리고살거나 살지않거나를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가진 존재가 아니다”라고 규정했다.

페뤼쉬부부는 상고를 하였고,지난 2000년 12월 프랑스 대법원은 병원측이 장애아로 태어난 아이 니콜라에게도 보상을 해야한다는 최종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병원측의 판단 착오로 페뤼슈 부부가 낙태를 비롯한 각종 조치를 통해 니콜라를 비정상적으로 태어나지 않게 할 기회를 빼앗긴 만큼 니콜라도 보상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판시했다.

이른바 인간의 태어나지않을 권리(rights not to be born)를 인정한 셈이다.

프랑스법원은 작년에도 태아기에 초음파 검사결과 장애요인이 발견되지 않아 태어난 다운증후군 장애인 2명에게 배상권을 인정했었다.

정부와 재판부는 이 판결에 대해서,장애인이 부모 사망 이후 경제적으로 홀로서기 위한 자금을 마련한다는 취지라고 해명했지만, 정작 장애인 단체들은 “장애인으로 태어나느니, 죽는 것이 더 낫다는 말인가”라며 크게 반발했다.

그리고 프랑스의 산부인과 의사들은 태아에게 약간의 이상만 발견되더라도 사후 책임을 면하기 위해 낙태를 권유하도록 압력을 받고 있을 뿐 아니라 ,프랑스 의사들이 가입해있는 의료사고 보험료가 이 판결 이후 10배 이상 올랐다며 정부에 관련 법 정비를 요구하며 파업까지 벌였었다. 뿐만 아니라 의회에서는 정치적인 쟁점이 되기도 했었다.

프랑스 정부는 이번 법안에서 임신중 태아장애 규명과 관련해 명백한 의사 과실이 없을 경우 단순히 장애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배상받을 수는 없도록 규정했다.

이른바 '태어나지 않을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 대안으로 장애인 지원 체제를 대폭 강화하는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기존의 장애인 보호법에 따라, 10만1000명의 장애아가 특수교육비 지원을 받고, 63만1093명의 성인장애인도 사회보장 혜택을 입고 있지만, 앞으로 '사회적 연대'의 차원에서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으로 , 지방자치단체가 50세 이상의 정신장애인 전문 수용센터를 건립하려는 민간 사업자에게 땅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운영비를 전액 지원하는 사례를 향후 모델로 삼고 있다고 한다.

또한 의사 과실이 드러나더라도 의사 개인이 아니라 국가의 의료보험기관이 배상금을 대신 지불토록 했다.

장애인의 '태어나지 않을 권리'에 대한 윤리적 논란은 커녕 거리를 지나다닐수있는 이동권조차 없는 우리의 현실을 생각할때, 장애인문제에 사회구성원 전체가 관심을 갖고,사회적인 쟁점으로 삼는 프랑스사회의 선진적인 모습이 부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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