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국 주류·명주 박람회

건전 음주문화 정착과 잊혀져 가는 전통을 찾아

검토 완료

최원정(quickman)등록 2002.02.05 18:14
자네 집에 술 익거든 부디 날 부르시게
내 집에 꽃 피거던 나도 자네 청하옴세
백년 덧시름 잊을 일 의논코자 하노라


정철의 "자네 집에 술 익거든"이란 시조이다. 술 한잔하는 핑계거리로 '백년 덧시름 잊을 일의 의논'이라니 선배 주당들의 배포가 참으로 호탕하지 않은가! 우리의 선조들이 가가호호 술을 빚어 친한 벗들과 함께 어울려 마셨으며, 또 그때의 취흥이 어떠했을 지를 잘 보여주는 시조라 하겠다. 또한 우리는 이 시조의 너머로 우리 민족과 술이 얼마나 가까운 사이였으며, 우리 민족의 술 사랑이 또 어떠했을 지를 헤아려 볼 수 있다. 비단 이 시조뿐인가? 술을 노래하고, 술을 예찬한 시가들은 얼마든지 찾아볼 수가 있다.

또 이수광의 '지붕유설'에는 한국전통주의 하나인 미인주의 제조법이 등장한다. 눈에 띄는 술 이름만큼이나 그 제조법 또한 독특한데, 간략하게 언급된 그 제조법이란 다름아니라 결혼 전의 아름다운 처녀가 생쌀을 잘게 꼭꼭 씹은 것을 모아다 발효시켜 만든다는 것이다. 맛은 요구르트에 알코올을 섞은 달짝지근한 맛이라고 하는데, 그 맛도 궁금하지만 그 이름과 제조법의 특이함이 많은 주당들의 맘을 설레게 할만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후대로 넘어오면서 정확한 제조비법을 아는 이가 없어 현재에는 완벽한 미인주를 영원히 맛볼 수 없게 되었다. 비단 미인주뿐인가. 수없이 많은 한국의 전통주들이 사장될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먼저가신 선배주당들의 진노가 여기까지 느껴지는 듯 하다.

음주가무를 즐기는 민족, 고개를 넘으면 술맛이 다르다고 할만큼 집집마다 독특한 맛을 내는 가양주의 전통이 무너진 까닭은 무엇인가? 물론 대개의 전통주들이 가전비법(家傳秘法)으로만 은밀히 전해진 탓도 그 이유중 하나일 것이다. 더 큰 이유는 일제 강점기와 광복 이후 진행된 통제 일변도의 주류 정책이 아닐까? 최근 프랑스 와인업계의 몰락과 독일의 와인사업의 성공이라는 상반된 결과는 정부의 정책과 지원의지에 따라 그 사활이 달라짐을 반증한다 하겠다.

또 한 가지 빠뜨릴 수 없는 전통주 침체의 원인은 우리 국민들의 의식과 기호이다. 외국 여행을 나간 사람들의 대부분이 귀국 길에 양주 한두 병씩은 꼭 챙겨들고 오는 오늘날의 풍토, 우리 국민들을 겨냥하여 만들어지는 양주까지 있는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작금의 전통주 위기가 우리 국민들의 의식과 무관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 이름을 잃어가거나 제조비법이 사라져 이름만 남아 있는 술들이 늘어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값비싼 수입양주시장의 규모는 점차 늘어나 전체 8조원 주류시장 중 1조5000억 원으로 그 매출이 확대되었다는 사실은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이처럼 수입양주가 약진하는 사이 한국의 전통주는 그나마 국순당 '백세주'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1000여억 원 정도의 매출에 그치고 있으니, 우리 전통주의 처지가 너무도 초라한 것은 아닐까?

사실 양주들의 대부분은 증류를 통해 희석되어지는 증류주인데 비해, 우리 나라 전통주들 대부분은 자연에서 생산된 곡물들을 이용한 발효주들이다. 물론 과다한 술의 섭취가 건강에 좋을 수야 없겠지만, 한국의 전통주는 기본적으로 몸의 보양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특징이기 때문에 우리의 술을 흔히 약주라고 부르는 것이다.

약주라는 말은 한자의 뜻으로만 보면 약(藥)이 되는 술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약이 되도록 여러 가지 한약재를 넣어 만든 술도 있지만 사실은 약이 될 만큼 좋은 술이라는 뜻에서 생긴 이름일 것이다. 이제 이처럼 좋은 우리 술을 우리 스스로가 아끼고 사랑하는 풍토가 자리 잡혀야 할 것이다. 또, 우리가 아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세계만방에 우리의 자랑스러운 술을 펼쳐야할 때인 것이다.

이러한 때에 일반인들에게 점차 잊혀져 가는 한국의 전통주와 명주들을 알리고, 나아가 주류문화의 올바른 정착을 위한 박람회가 '우리물산장려운동본부'의 주최로 개최될 예정이어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름하여 2002 한국 주류·명주 박람회!

이번 행사는 "건전한 음주문화 형성과 낮은 인지도의 한국 전통주들을 홍보하겠다"는 주최의도 이외에도 술이 우리 곡식으로 빚어진다는 점에 착안하고, 쌀 수급문제로 시름하고 있는 농민들과 소년소녀가장들에게도 도움을 주겠다는 뜻을 담아 행사기간 중 판매된 전통주의 수익금 일부로 쌀을 구매, 이를 다시 소년소녀가장들에게 전달할 예정이라고.

'우리물산장려운동본부'는 일제강점기 조만식 선생님이 이끈 바 있는 '조선물산장려회'의 유지를 받들어 우리 것을 아끼고 지키자는 취지로 1994년 창립된 부산의 대표시민단체이다.

이번 행사는 우리물산장려운동본부가 해마다 지역경제와 국가경제 발전에 관한 세미나와 운동을 벌이던 중, 이름마저 생소해져버린 한국의 전통주와 명주들이 그 명맥만 이어간다는 사실을 안타깝게 여겨 발을 벗고 나서게 된 것이라고. 김희로 우리물산장려운동본부 이사장은 '전통주도 살리고 사회 전반에 만연된 주류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희석시키는 것은 물론 나아가 건전한 음주문화 형성에 기여하겠다'고 그 취지를 밝혔다.

이름마저 생소해져버린 한국의 전통주와 명주들이 보다 우리 국민들로 사랑 받게 되는 계기가 될 이번 행사를 통해 건전한 음주문화가 조성되고 우리 명주들이 더욱 그 멋스러움과 맛을 만방에 알릴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우리물산장려운동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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