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전 그날의 노무현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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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규(sanlim)등록 2002.04.17 20:20
1988년 '87년 6월 항쟁을 기점으로 정점에 오른 시민 운동은 드디어 여소야대 정국을 만들었고 광주5.18에 대한 청문회와 전두환 일당에 대한 5공비리 청문회가 시작되었다.

그날도 나는 5공청문회를 TV로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은 현대의 정주영 회장이 증인으로 나온 날이었다. 언론에서는 그가 얼마나 추궁을 당할 것인가 또는 어떤 폭탄 선언을 할 것인가에 관심의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또 한편으로는 정 회장의 증인 채택에 따라 현대그룹이 특위위원들에게 엄청난 로비를 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마침내 그날 잔뜩 기대를 하고 있던 나는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장면을 TV에서 보고 말았다. 청문회가 시작되어 자신이 발언할 차례가 오자 어떤 의원은 정주영 회장에게 고향 선배님인데 죄송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의원은 20여분동안 횡설수설만 하다 시간이 되어 마이크가 꺼지자 오히려 정주영 회장이 무슨 답변을 해야 하느냐고 묻고 답변 안해도 좋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한심스런 청문회를 보다 짜증이 난 나는 TV를 끄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서점에 들러 책을 한 권 사고 돌아서는데 전자 대리점 앞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는 것이다. 호기심에 그곳을 기웃거리던 나는 그곳에서 새까만 얼굴의 노동자 같은 국회의원 노무현을 보았다. TV에 비쳐진 그의 모습은 인권변호사였다지... 정도로만 알고 있던 내게 충격과도 같은 쾌감으로 다가왔다.

"노동자 농민 같이 힘없는 사람들과 증인같은 사람들이 어떤 정책으로 대립되는 상황이라면 증인은 대통령도 만나고, 장관도 만나고, 국회의원도 만나서 로비하는데.. 또 정치헌금이란 명목의 정경유착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노동자 농민은 누가 만나주기나 합니까?"라며 감정에 복받쳐 눈물을 흘리는 것을 나는 본 것이다.

지루하던 특위장은 긴장감이 감돌고 자신만만하고 당당하던 정주영 회장은 당황하기 시작하였으며 그는 집요하게 정주영 증인의 잘못을 추궁하였다. 자신에게 부여받은 시간이 지나자 특위원장은 질의를 빨리 끝내라고 성화를 부리고......

아마 그날 그 순간이 5공청문회 최고의 시청률이 아니었나 싶다. 국회에서 증인이 눈물을 흘리는 것은 봤어도 증인을 추궁하는 특위위원이 노동자 농민을 생각하면서 굵은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는가!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특위위원 모두가 현대의 로비 앞에 무릎을 꿇었지만 그는 홀로 싸워 통쾌하게 이긴 것이다. 전국민의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고 또 한편으로는 전국민을 코끝 찡하게 만든 그날의 노무현.....

며칠 후 서울은 물론이고 시골의 웅변학원까지 플래카드가 하나 걸렸으니 그 내용은 "어머니 청문회 보셨습니까" 였다......그리고 그 청문회가 있은 이후 전국의 웅변학원에 수강생이 넘쳤다는 얘기도 있을 정도였다. 또 그해 어떤 월간지에는 그해를 빛낸 10인의 얼굴에 들기도 했으며 그날의 청문회 장면을 노련한 사냥꾼이 호랑이를 몰아가는 상황에 비유하기도 할 정도였다.

그날 이후 14년이 흘렀다.
노동자 농민을 위해서 굵은 눈물을 흘렸던 그때 그 사람 노무현이 이제 또 하나의 장벽인 지역감정마저 녹이겠다는 각오로 대통령에 도전한다. 몇 번의 패배가 그에게는 오히려 훌륭한 자양분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인지 아닌지는 물론 국민의 선택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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