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노조'는 없다.

사회통합형 기업에는 사회통합형 노조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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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현(leviolette)등록 2002.05.01 14:53
지난 4월 19일, 데이베이스 구축 전문 업체인 (주)오픈에스이(사장 최민)의 노동자들이 서울 혜화동 마로니에 공원에서 서울경인사무서비스직노동조합(이하 서사노) 오픈에스이지부라는 이름으로 출범식을 갖고 공식적인 노조활동에 들어갔다.

오픈에스이 노조는 우리나라 노동운동 역사상 최초로 장애인들이 주축으로 결성된 노조라는데 큰 의미가 있다.

오픈에스이는 사장 최민 씨 스스로가 장애인이고, 과거 노동운동으로 투옥된 전력을 가지고 있으며 '장애인, 비장애인이 함께 일하는 사회통합형 기업'을 표방하며 사원의 상당수(30-50%)를 장애인으로 고용하는 등 장애인 고용과 노동권을 향상시키는 데 크게 공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이 업체는 전체 노동자 150여 명중 30여명만이 정규직이고 나머지는 길게는 1년에서 일용직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이 계약직이며, 얼마전에는 계약당시의 임금조건을 임의로 변경하였다가 직원들의 반발로 취소하는 등 노동권의 침해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이에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지켜야 한다는 자각에 의해 서사노와 몇몇 장애인 단체들의 도움을 얻어 노조를 출범시키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출범된 오픈에스이 노조는 출발부터 사측과의 미묘한 대립으로 활동에 있어 난항을 겪고 있다.

그 이유는 오픈에스이 노조가 출범당시 '장애인노조'라는 점을 강조한 나머지 전체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아우르지 못했고, 사측의 '장애인고용증대'의 논리에 의해 정작 전체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나 임금 및 복지처우 등의 실질적인 협상과제가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측은 공개석상에서는 노조 결성을 환영하고, 노조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으나 노조의 존재 때문에 데이터베이스 사업 입찰에 떨어진 타 업체의 예를 드는 등 노조의 존재를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노조의 한 관계자는 "현재 사측에서는 노조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우리가 노조원을 장애인들에 한정시킬 때만 협상대상으로 인정하겠으니 판깨는 행동을 삼가라는 말을 공공연히 하고 있다"며 "노조 내부에서도 비장애인 노동자들을 조직해야 한다는 인식은 하고 있으나, 대부분의 비장애인 노동자들은 3개월 이하의 단기계약직으로 회사에 대한 소속감이 거의 없는 상태여서 현실적으로 그들을 조직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여기에 얼마전 사장이 예전에 활동했던 모 장애인단체의 간부로 활동했던 사람을 기획실장으로 선임해 사측에 우호적인 노조를 만들려 하다가 이미 노조 건설의 움직임이 있자 이를 철회했다는 소문이 있어 노동운동출신 사장의 노조에 대한 교묘한 와해책에 노조가 이용당하고 있다는 의혹도 일고 있다. 일각에서는 최사장이 정계진출을 준비하고 있고, 회사와 노조를 그의 정계진출 도구로 이용하려 하고 있다는 비난도 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최 사장은 회사의 이념을 '사회통합형 기업'이라 말하며, 장애인들을 비롯한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에 묶어둔 채 장애인 고용자수를 늘리는 데에만 급급하고 있다.

따라서 사측은 노조가 노조원을 장애인에 한정시켜 장애인들의 고용 증대를 촉구해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장애인노동자를 비장애인들로부터 분리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여, 결국 최사장 자신이 주장한 '사회통합'에 정면으로 위배되게 된다.

그가 진정으로 사회통합을 주장한다면, 노조를 장애인에 한정시켜 장애인과 비장애인 노동자들 사이를 이간질하고, 비정규직노동자의 정규직화'라는 본질적인 요구를 가리기 위해 '장애인고용증대'라는 이름을 이용하는 태도는 버려야 마땅할 것이다.

노조 또한 한국노동운동역사상 최초의 장애인 노조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사업장 전체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참다운 노조의 모습을 재정비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조직되지 못한 비장애인 계약직노동자들에 대한 사측의 불합리한 처우들을 폭로하고, 이들도 같은 사업장의 노동자로 인식하게 하는 등, 논점에 있어 '장애인'이 아닌 '노동자'에, '장애인고용자수 증대'가 아니라 '정규직화와 노동조건 및 임금 향상'에 무게를 두어야 할 것이다.

오늘은 세계 노동절이다. 오픈에스이 노조가 장애인노동자와 장애인노동자가 함께 일하고, 함께 투쟁하는 사회통합형 노동조합으로 자리잡아 새로운 노동운동문화를 만들어가는 초석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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