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혁의 소리산책>

Man From Ipanema(1)

검토 완료

박주혁(invictus)등록 2002.06.05 15:42
브라질이라는 나라를 생각할 때 처음에 와닿는 이미지가 무엇일까? 세계 최강의 축구, 원초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 아마존, 화려하기 짝이 없는 삼바카니발, 풍요롭고 향기로운 커피, 혹자에게는 강력한 부정부패를 자랑하는 정치, 누군가에게는 유술과 카포에라로 대표되는 독특한 그들의 무술문화, 그렇지만 음악팬들에게는 뭐니뭐니 해도 보사노바일 것이다.

보사노바. 아마도 수많은 재즈팬들이 이 보사노바라는 장르로 하여금 재즈에 발을 담그게 되었을 것이며, 이 보사노바가 없었다면 재즈의 발전도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이 보사노바라는 장르는 재즈계에 끼친 영향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보사노바라는 장르에는 챨리 파커<1>나 존 콜트레인<2>이 보여주었던 불같고 원초적인 임프로비제이션도 없고 어찌보면 재즈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격렬한 리듬감을 통한 그루브의 발현도 없다. 그러나 어찌하랴? 이 장르는 재즈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하모니를 통한 합주의 극한보다는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점이 멜로디라는 점에서 다른 것이고 이질적인 것이다. 이 보사노바라는 장르를 창조하였으며 그 극한이자 정점에 서 있는 인물이 바로 이 안토니오 까를로스 조빔이다.

'안토니오 카를로스 브래질레이로 디 알메이다'의 긴 이름을 가진 조빔은 리우데자네이로의 시쥬카에서 태어났지만 얼마되지 않아 이파네마로 이주하였다. 10세경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클래식 작곡까지 익혔지만 그에게 있어서 음악은 단순한 취미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고서 20세경부터 프로뮤지션으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고 전해져온다. 52년 작,편곡가겸 지휘자인 라다메스 지나타리의 권유로 컨티넨탈 레코드사의 전속작곡가로 취임하여 작곡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소년시절부터 친했던 뉴튼 맨도사를 시작으로 빌리 브랑코, 도로리스 듀란 등과 공동작곡한 곡이 인기가수들에 의해 레코딩되어 서서히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그중 특히 눈에 띄는 대작은 56년 빌리 브랑코와의 공동작품인 "리오데자네이로 교향곡"이다. 15분이 넘는 이 대작은 상업적 성공은 거두지 못했지만 산, 태양, 바다 등 3악장으로 구성된 심포닉한 조곡은 작곡가로서의 재능을 당시 음악관계자들에 크게 어필했다고 한다.

그리고 같은 해 역시 비범한 일생을 살다간 아티스트인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3>를 만나게 된다.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가 만들은 극인 흑인 오르페의 음악을 만들기로 한 조빔은 여기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사가 작곡가 콤비중 하나인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와 안토니오 까를로스 조빔의 콤비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삼바깐성의 여왕이라고 불리우는 엘리제치 까르도조의 곡인 "Chega De Saudage에서 최초로 보사노바라는 단어가 나오면서 보사노바의 원점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고용한 기타리스트가 현재까지도 생존해있으며 보사노바의 신으로 추앙받는 조앙 질베르또<4>인 것이다. 그는 이 곡에서 독특한 리듬인 바라손을 연주하였고 이 리듬이 보사노바 리듬의 원류이자 시초가 되는 것이다.

당시의 브라질 음악계는 삼바풍의 가요인 삼바깐성과 라틴풍의 가요인 볼레로 등이 그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점점 늘어가는 라디오의 보급률에 힘입어 영미의 팝과 모던 재즈 등이 당시 브라질 젊은이의 귀를 사로잡기 시작하였다. 여기에 전통적인 삼바에 모던재즈적인 모티브를 받아들인 보사노바에 젊은이들이 열광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여기서 드러나는 한가지 사실은 보사노바는 재즈의 한 분파가 아닌 모던재즈의 이디엄을 받아들인 삼바다. 그리하여 재즈와 아예 관계가 없다면 거짓이 되겠지만 단순히 재즈의 한 분파로 본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이자 잘못된 시각이라는 생각이 앞선다. 이로써 보사노바는 한 가지의 문화이자 당시의 조류로 자리잡게 되었고 보사노바의 여왕이라고 불리우며 아직까지도 열성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나라 레엉<5>을 비롯하여 까를로스 리라<6>, 로베르또 메스네깔<7>등의 신인에 의해 더욱 발전되어가게 된 것이다.

이 조류를 지켜보던 미국의 재즈 연주인들이 가만히 그들을 놔둘 리가 없었다. 특히 흑인 오르페가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 영화상을 수상함에 힘입어서 세계적인 아티스트로 부상하게 된 조빔과 루이즈 봉파<8>가 주목을 받게되자 사라 본<9>이나 프랭크 시나트라<10>등의 아티스트들이 보사노바 풍의 곡을 부르게 되었다.

63년 조빔은 크리드 테일러의 프로듀스로 3매의 앨범녹음에 참가하게 된다. 스탄 겟츠<11>의 "재즈 삼바 앵콜(흑인 올페 카니발의 아침을 작곡한 루이즈 봉파도 참가)", 조빔의 기타와 피아노를 전면에 등장시킨 전곡이 연주곡으로 된 "The Composers of Desafinado Plays", 그리고 조앙의 부인 아스트러드 질베르또<12>가 세계적인 가수로 발돋움하게 된 앨범 "게츠/질베르토"이다.

이런 조류속에서 음악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최고의 성공적인 연주는 스탄 게츠와 조앙 질베르또, 안토니오 까를로스 조빔, 그리고 조앙의 부인이었던 아스트러드 질베르또 등이 모여서 협연을 한 게츠/질베르또 앨범은 세계적으로 대단한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물론 이 앨범이 좋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아직도 스탄 게츠의 색소폰이 보사노바 특유의 청량감을 깍아먹는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이리하여 조빔의 음악은 세계로 확산되게 되었고 각계에서 작곡, 연주 요청이 쇄도했다. 재즈 필드의 빅 네임들과의 공연을 예를 들면, 67년 프랭크 시나트라와의 공연작 "시나트라 & 조빔"과 77년 사라 본이 리오에서 녹음한 "아이 러브 브라질"에서 두곡을 공연하고, 80년에는 엘라 핏제랄드<13>가 조빔의 작품집 "엘라 싱즈 조빔"을 녹음하였다. 이외 조빔 작품집은 살리나 존스, 오노 리사<14>, 엘리아느 엘리아스<15>, 조 핸더슨<16> 등 수많은 뮤지션이 연주했으며 시대의 주류가 어떠하던간에 조빔의 음악은 항상 시대와 함께 공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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