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혁의 소리산책>

Man From Ipanema(3)

검토 완료

박주혁(invictus)등록 2002.06.05 15:42
단지 단순하고도 아름답게 들리는 그의 음악은 실은 고도의 계산을 통해서 만들어진 치밀한 작업이다. 단순하지만 아름다운 멜로디는 실질적으로는 거대한 교향악적 모티브에서 줄일 곳은 줄이고 끼워넣을 것은 끼워넣어서 만든 고도의 계산되고 철저한 숙고를 통한 작업의 산물인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하나의 음을 티끝하나 없는 맑은 상태로 만들어가며 그 안에 브라질의 자연이 담고있는 원초적이고 원형적인 아름다움을 담아내는 작업인 것이다.그만큼 조빔의 작곡은 극도의 치밀성을 요구하는 마치 한올의 실수만 있어도 전체가 틀어지고 말아버리는 페르시아의 카페트를 짜는 작업에 비유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수 있듯이 조빔이라는 아티스트는 논쟁의 여지가 없는 천부의 재능으로 30년 이상에 걸쳐 균형을 유지하면서 재즈적인 기술주의, 그리고 대중화라고 하는 두 가지의 유혹에 버텨 왔다. 그가 없었다면, 보사노바는 애매한 표현, 혹은 스타일이라기보다는 유행이라고 말하는 편이 어울리는 어떤 것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그를 흠모하며 그의 곡을 자신의 것으로 녹이는 데에 노력을 하는 것일런지도 모른다. 조빔의 활동은 브라질에서는 작곡가로서의 활동에 많이 편중되어 있었지만 미국에서의 활동은 연주인으로서의 면모로 두드러진다. 특히 그중 CTI에서 발표한 67년 음반Wave는 작곡소개가 중심이된 앨범 Girl From Ipanema(63년)에 비교한다면 연주인으로서의 조빔의 면모가 한층더 강조되어있고 기타 브라질 뮤지션과는 그 방향성을 달리하는 조빔의 독자적인 리듬에 대한 센스가 나타나고 있다. 이는 조빔이 보사노바를 넘어서서 자신의 장대한 음에 대한 감성을 연주곡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역시 70년 CTI발표 음반Stone Flower에서 타이틀곡이 브라질 북동부 리듬인 마라카튜에 입각한 것이고 장대한 조곡풍의 세계를 전개한다. 이러한 경향은 "마치타 펠레(72년 MCA에서는 조빔이란 타이틀로 발매)"에서 더욱 강조되어져 있다(마치 이 음반에서의 조빔은 거대한 악상의 바다에 헤엄치는 음표들을 단 한 군데의 울타리로 몰아넣은 유능한 목동같은 모습이다).

그리고 이시기에 조빔의 음악의 큰 구심점은 바로 자연에의 애정이란 것이다. 54년 작품 리오데자네이로 교향곡이 조빔의 작곡의 원점이란걸 또 새삼 언급해야겠지만 대자연의 풍부한 창조물 모두를 조빔은 사랑했고 음악으로 묘사하려했으며 ,노래하고 연주했던 것이다.

그리고 아마존 열대우림 파괴가 환경문제로 세계적인 지탄을 받기 이전부터 조빔은 인간의 손에의한 환경파괴에 대하여 음악을 통해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그것은 "Terra Brasils"이라는 80년도 앨범 자켓에 표현되어져 있었고, 조지 아마도 원작영화 사운드 트랙 Gabriela와 자신의 리더작인 "파사린"등 80년대 작품에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자연보호를 소리높여 활발한 운동적으로 호소하였다기보다는 더욱 높은 예술적인 이디엄에 입각하여 더욱 고급스러운 메시지로 전한 것이다.

그의 일생에 있어 마지막인 1994년 조빔은 활동을 재개하였다. 우선 93년부터 시작한 7년만의 리더 앨범 "Antonio Braziieilo"의 녹음을 완료했는데 여기엔 94년 2월 리오를 방문한 스팅<1>과의 듀엣곡(How Insensitive)도 들어 있다. 3월에는 일본의 여성 보사노바 보컬리스트이자 기타리스트인 오노 리사의 앨범 "Esperansa"에 특별출연 했고, 4월에는 카네기홀 버브 창립 50주년 기념 콘서트에 출연하여 스탄 게츠를 추모했으며, 살리나 존스가 리오에 방문하여 녹음한 조빔 작품집 "보사노바 나잇"의 음악감독을 담당하며 2곡에 참가했고 프랭크 시나트라 "듀엣 2"에 "플라이 미 투 더 문"을 녹음하는등 최근 수년간 이만큼 정력적인 활동을 한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 때문인지 12월 8일 입원조차하기도 전에 심장발작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죽기 직전까지 나이를 잊은 채 정력적인 활동을 하던 그의 죽음은 주위 사람들을 당황시키기에 충분했다. 그의 유작 "안토니오 브라질레이로"에는 그의 사랑하는 가족 부인, 손자, 막내딸 등이 참가했으며, 수작이란 점에서 그의 죽음에 마지막 가는 훌륭한 선물이 되었음이 위안이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그의 음악안에서 그가 사랑했던 자연과 삶, 주위의 모든 것들에 대한 것들을 풀어나가려 노력했던 음악이이었고 21세기가 되기전 안타깝게 죽음을 맞은 최후의 거장이었던 것이다. 안토니오 까를로스 조빔은 브라질이 낳은 최고의 아티스트이다. 그는 시대의 조류를 이끌어 나가는 작가였으며 또한 그 자신이 창조해낸 조류를 끝까지 발전시킨 희대의 장인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가 사랑했던 이파네마에는 그의 이름을 딴 안토니오 까를로스 조빔이라는 거리가 명명되어져 여지껏 그의 전설은 꺼지지 않고 타오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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