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동안 학생운동은 내게 무거운 짐을 지워 준 화두였다.
그것은 너무 일찍 그 화두에 눈뜨게 되었을 뿐 아니라, 동시에 너무 일찍 지쳐버렸으며, 그리고 결국에는 그것을 버리지도 끌어안지도 못한 채 회색분자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 바깥편의 한 켠에서 살아오면서, 탄탄한 이론학습 능력을 갖추고 쟁쟁한 논리를 펼쳐 대던 내 남편 및 수많은 내 주위 운동권 출신들에게 난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살아왔다.
그들에 대한 내 대응은? 그 인간들이 입연 후 5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알았어. 됐다 됐어. 난 잘 몰라서 할 말이 없다. 그만 하자. 머리 아프다"였다. 그 비슷한 얘기라도 꺼낸 내가 미쳤지. 결국 말 시켜놓고 그만둔다는 비난만 귀가 아프게 듣고 만다.
이런 나에 대한 비운동권 혹은 반운동권 인간들 대부분의 반응은? "너 힘도 좋다. 쓸데없이 그런 거엔 뭐하러 열 올리냐? 냅둬 그냥. 그래 살다 죽게."
나는 90년대 세대인 우리들에게 있어서, 90년대의 '운동권' 그들은, '운동권, 그들만의 리그'를 펼치며 살아왔다고 감히 단언할 수 있다. 무슨 말을 하려면, 용어니 뭐니 부터 "그게 아니지"로 시작되는 반박과 상대에 대한 경청은 없는 태도가 일반적인 모습으로 비쳐졌다면, 과도한 오해라고 말할텐가? 좋다. 할말 있단 말이지. 그래, 내가 원하던 바다. 한번 멋지게 반박해 봐라.
지방선거를 보면서, 예상대로 투표율은 저조했고, 예상대로 노풍은 죽었다고 떠들고, 예상대로 온갖 비난들은 넘쳐나고, 또다시 떠오르는 생각없는 20대, (난 만으로 얼마전 20대를 벗어났다. 개혁의 주류라는 30대와 정체성에서 차이가 난다니, 좋다. 20대에 슬그머니 끼어보자), 기분 좋으면 20대는 열린 사고의 독창적이고 진취적인 세대고, 기분 나쁘면 아무렇게나 후려쳐도 되는 동네 북이더란 말이냐?
억울해도 꾹 참고, 왠 오바냐, 뭔 뒷북이냐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열렬한 운동권들에게는 회색분자라 욕먹을 게 뻔하고, 그 반대에 서있는 보통의 친구들에게서는 "넌 뭐하러 쓸데없이 힘쏟고 다니냐. 하여튼 오바래니까." 그런 말 들을 줄 알면서도 내 뒤틀린 심사는 기어이 나를 "쫑알"대도록 등 떠밀었다.
내가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건, 지방선거와 대선을 묶어서 생각하는 그 합리성의 부재, 우리가 무슨 교조주의 집단이고, 지방이 무슨 중앙당의 세력 판도 싸움터냐? 맨날 자율적이고 독립된 지방자치 운운하면서, 왜 지방선거와 대선을 연결하는데? 미국에서 미국인들이 주선거는 공화당, 대선은 민주당 그런 거 하면, 합리적인 선거 행태고, 왜 우리가 따로따로 생각하면 "반동"으로 치부되어야 하는데?
안다. 마산인가 어디는 한나라당 보궐선거 후보가지고, 영삼이 아저씨 아들 현철이 내보내야 한다고 하고 있다더라. 부산에서는 "안상영" 시장이 강간 의혹이 있는데도, 시장에 당선되니까 기가 막히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안상영이 시장되었다고, 모든 부산 시민 매도하는 건 문제가 아닌가? 그리고 부산 공무원 노조에서 어떻게든 진실 규명하려고 애쓰고, 시장 탈락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쟎아.
학교 다닐 때 보면, 꼭 과에 나와서 열심히 일하는 애들이, 과에 잘 안나오고 일 안하는 애들 몫까지 욕을 퍼먹게 되곤 한다. 제발 잘하려고 애쓰는 사람들 기죽이는 일은 그만 해야 한다. 90년대 세대를 얘기하는 책 얘기도 읽고, 월간 조선 조갑제가 했다는 헛소리를 써놓은 한겨레 손석춘 논설위원의 20대에 대한 바램을 읽고, 나는 하는 수 없이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내 맘이 등떠미는 대로, "이제 90년대를 이야기 할 때다"란 글을 써서 오마이뉴스에 실었다.
잉걸로 묻혀버린 이글을 아니나 다를까, 그래도 좀 관심있어 하는 사람들이 꽤나 다녀가고, 댓글을 남겨 놓았다. 그중에 예상대로 80년대 세대 한 사람의 비판과 90년대 세대라는 또 한 사람의 비판이 있었다. 그 80년대 세대 왈, "아무리봐도 90년대 세대 생각없는 거 사실이다. 뭔가 보여줘라. 너네들은 마마 보이(혹은 걸) 세대다" 그리고, 그 90년대 세대란 한 사람은 우리 때도 80년대 못지 않게 운동이 활발했다. 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92년까지는 그래도 좀 했지. 하지만,93년부터는 거의 바닥세 아니었던가? 그리고 내가 글을 또 쓰게 된 한 이유였던 책동네 기사의 댓글을 보면, "데모에나 좀 열심히 참여하지. 그러고서 운동을 얘기하지 그래?" 라는 그런 댓글도 있다.
좋다. 이 모든 댓글에 나는 할 말이 있다. 어차피 이런 글은 읽을 사람만 읽을 거니까, 우리 좀 빡세게 생각해 보자. 길어질 대로 길어지더라도 말이다. 지금 왠 뚱딴지 같은 세대 논쟁이냐고? 좀 있으면, 보궐 선거하고 대선 들어간다. 그때 결과 나오고 나서 우리 이렇게 했어야 돼. 후회하면서 뒷북칠래? 그러니까, 지금 시간 날 때 열심히 논쟁 좀 해보잔 말이다. 대선가서 망가지지 말고.
내가 처음 "90년대 세대를 이야기 할 때다"란 글을 쓴 이유는 오직 하나. 지금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란 말이다. 우리 반대편의 저 거대하고 황당한 세력들이 미친듯이 우리를 옥죄어 오고 있단 말이다. 그들이 또 희희낙락하고, 마음대로 우리를 저울질하고 평가하며 (조갑제처럼), 결국 그들한테 승리나 밀어주고 싶단 말이냐? 뭉치잔 말이다. 제발. 뭉칠 수 있는대로 뭉치자고.
그러면 뭉칠 때, 니가 잘못했니, 내가 잘했니 하면 뭉칠 수 있을까? 까짓거 통 크게 한번 서로 인정해 주고, 한번 "사고" 한번 치잔 말이다.
자, 이제 내가 주제넘게 대다수 우리 세대의, 말없이 잠잠한 그들을 위해 대변자로 자처하며, 한번 덤벼보겠다. 불만 있어? 내가 중도적 입장을 잃었어? 좋다. 내가 총대 멘다. 총대 메고서라도 한번 머리 터지게 논쟁하고, 달라져서 우리 한번 "일" 내 보잔 말이다.
내 글에 비판적 견지를 제시했던 그 소수의 그러나, 전형적 모습의 각 예로 너무나 정확히 등장한 '한 80년대 선배'와 '90년대 꼴통 운동권 친구 한 놈과 비슷한 견해를 말했던 한 사람'과, 그리고 '정말 재수없는 잘난 척 운동권 출신'에게 보내는 내 댓글을 아래에 붙인다.
이제 90년대 세대를 이야기 할 때다
80년대가 "저항"의 시대였다면, 90년대는 "민주"의 시대였다
김소연 기자 ellisabet@bcline.com
호루스님.
김소연, 2002/07/19 오전 12:18:39
김소연입니다.
우선 처음 호루스 님이 말씀하셨던 내용에 대해, 솔직히 전 충분히 반발해도 될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저는 그냥 보통사람으로 지냈다라고 말하고 말았지만, 어차피 열혈 운동권들은 그런식으로 말하고 치부하길래 그래서 그냥 '그래.. 나는.. 좋다. 평범하게 묻혀 지냈다.' 라고 말하기로 하자 한 것 뿐입니다. 그렇다고 특히 내세울 것도 없으니까.
저는 87년 민주화 항쟁때 고등학생으로 이미 그 대열에 참여한 사람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뭣도 모르고, 따라갔지만, 시민들의 열기, 내가 봐도 보통사람인 사람들이 서로 자원해 연사로 나서면서 쏟아내는 분노, 그들의 진심에서 우러난 이 사회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생각하는 모습은, 내가 속한 사회에 대해 참여 의식을 가지게 한 경험이지요. 박종철은? 이한열은? 그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간부로 간부수련회를 떠나서 맨 마지막날 했던 장기자랑에서 우리조가 한 연극은 혹시 선생님들이 민주화 의식교육을 하지 않나 뒷문 창을 통해 빼곡시 보던 교감 선생님때문에, 결정적인 순간에 말을 멈추는 선생님과 그 다음 말을 애타게 기다리는 학생들의 모습을 형상화 한 것이었습니다. 그 연극 안건 제안한 사람 접니다.
친구들이 저에게 너는 대학 가면 극렬 운동권이 될 것이라 했지요. 저는 안될 줄 알았습니다.
왜냐면, 80년대의 선배들은 정말 공부만 하고 싶어도 세상이 그들의 등을 떠밀어서 밀려나갔습니다. 윤민석씨 기사보니 역시..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저는 전교조, 부고협, 이제 음지에서 양지로 올라온 사람들이 자기의 목소리를 드높이는 걸 보았습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떨어질 고난을 알고서도, 자신의 인생이 소위 줄가게 될 걸 알면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았던 80년의 초기 운동가들과는 달리, 우리 세대에는 소위 "소영웅주의"로 자신을 내미는 인간들도 눈에 띄게 늘어났습니다. 민주화가 표면에 등장하고, 거세지면서, 전교조 활동과 고등학생까지 참여하는 분위기가 되었던 일련의 사건들.. 그 과정을 고등학교 3년 동안 보아오면서, 나는 이제 투쟁의 순수성이 훼손되어 가는 과정도 보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를 온전히 하나로 묶어내던, 진실에 대한 열망과 참여에 이제 혼탁한 물이 스며드는 것도 보았단 말입니다. 난 회의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런 저런 모습들은 나에게 삐딱한 시선을 남겨주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서, 1학년 과대표를 하면서 집회참여를 위해 나는 아이들을 독려했습니다. 하지만, 강제하진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어떤 이유에서건 강제는 싫었으니까요. 수업거부를 하면서, 선배들이 선생님들께 알아서 잘 말해서 빼주겠다고 했지요. 그런데, 일이 꼬였습니다. 그 과정은 말하지 않겠습니다. 난 선배들 원망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수업거부를 하는 게 맞고, 집회에 동참해야 한다는 생각에 수업거부 결의를 실시한 것이니까요.
이 과정 중에 나는 아이들에게 수업거부 찬반 투표를 실시하면서 말했습니다. 놀러가기 위해 수업거부를 선택해도 좋다. 민주화는 억눌린 소리를 낼 수 있는 권리를 찾는 것이다. 난 니들이 정말 원하는 대로 선택하길 원한다. 아무 것도 강요하지 않겠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다만, 우리가 수업거부하는 취지는 이렇다. 여기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가능한 찬성과 동참에 지지를 보내주면 좋겠다.
모두가 남아서 토론하고, 의견교환하고, 반론하고, 지지하고. 그렇게 우리 모두가 의결에 참여해 내린 결정이었으니, 선배들의 말과 상관없이 책임은 스스로 지는 게 당연합니다. 참고로 의결에 참여한 학생은 전체 우리 동기 중 아예 학교를 안다니는 애들 빼고, 거의 모두였습니다. 투표 후, 각자의 선택대로 집회로 가고, 집으로 가기도 하고, 하지만, 70% 이상이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이 일은 후에 아이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내가 선동했으니까), 제가 교수님 앞에서 총대 메고 혼나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저는 대학시절, 거의 모든 우리 학교 집회에 참가했습니다. 그러니 님이 말하셨던 대부분의 삐딱한 시선을 받을 이유가 없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나는 "나도 이만큼 했다"가 아니라, 말없이 등돌린 아이들의 대변자가 되고 싶습니다.
저는 노래패 활동도 했습니다. 모든 집회에 가능한 참석하고 모든 사안에 적극적으로 사고하면서, 토론회등에 갔어도, 난 어떤 이념 동아리도, 모임에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1학년 여름 지리산을 다녀오면서, 마지막 산장,, 이름이 생각이 안 나는 군요. 야영지에서 한양대 민가패와 우리 모임 애들( 이 모임은 부산 경성대 저희 동문 모임입니다. 저희 동문회는 당시 경성대 안에서도 활발한 운동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전 대학 입학 전부터 옵저버 형식으로 그들을 만나며 얘기를 들었습니다. 당시에 우리 학교에서는 지리산에 가는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에 지리산에 간다고 하길래 좋은 기회라고 따라 붙은 것입니다.) 이 민가 대결을 벌였습니다. 결과는 우리 모임의 승리였지요.
민가패가 아닌데도 민가를 더 많이 아는 사람들, 적극적인 운동에 나서는 살아 숨쉬는 열정이, 이미 잦아들기 시작한 저희 대학과는 다른 분위기를 보여주었고, 세석산장(생각났습니다)에 모인 사람들의 열정, 이야기들이.. 나를 한번쯤은 회의에서 벗어나 운동권, 그 속에 들어가 직접 부대껴 볼 것을 요구하는 자각을 일게 했습니다.
그래서 노래패도 들어가서 활동했지요. 결국은 난 그 회의를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계속 이어지는 각종 소규모 집회. 왜 내가 그 자리에 서 있는 지 자료를 읽고, 학습하고, 사고하고 판단해 참여하는 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 "활동"이 "자각" 보다 우선시 되는 생활. 일단 일정 잡혀 있고, 당장 급하니까, 우리 패가 나가줘야 한다. 때로는 부당하다고 생각되었던 중앙집행부의 지시에도 일단 따라주는 게 대의를 위해 좋고, 그들의 어려움을 생각해 주자라고 말하면 할 말이 없었죠.
하지만,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계속 할 수는 없었습니다. 나에게는 가장 큰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 문제는 "확고한 신념"의 부재였습니다. 옳은 게 뭔지 알면서도 나는 그 하나의 신념을 위해 모든 걸 내버릴 수 있는 확신이 생기질 않았습니다. 나를 모두 버릴 수 있는 신념, 나에게는 회의가 신념보다 더 컸습니다. 더 이상 서로 모순되어 가는 내 내면의 갈등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결국 나는 다시 그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하나라도 사람이 더 필요할 때, 자리를 지켜주지 않는 것에 대한 원망, 특히 후배들의 원망, 누나는 정말 내게 많은 걸 생각해 보게 해주었는데,,,
난 지금도 회의합니다. 내가 그 자리를 물러난 것이 잘한 것이었는 지, 아니면 그 자리를 지키는 게 맞는 것이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살면서 두가지는 얘기하지 말자고 생각한 것, 운동에 대한 이야기와, 종교에 대한 이야기. 아직도 나는 신념에 대해 애매모호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회색분자입니다.
대학 4년 각종 시위뿐만 아니라, 과 행사에 졸업할 때까지 참여했고, 한총련의 연세대 사태때는 집이 근처인지라 쫓겨서 몰리고 있던 학생들에게 진압부대의 소재와 달아날 길을 가르쳐 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생각없이 산다는 그런 말을 들을 이유는 없죠. 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내세울 그 어떤 것도 없기는 합니다.
한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건, 함부로 우리 세대가 아무 생각없이 살았다고 말씀하시지 말라는 겁니다. 나만큼도 행동하지 않았던 친구들 중에서도, 많은 고민과 그에 대한 생각, 나름대로의 참여를 한 사람이 많았다는 겁니다.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몫만큼 우리 시대의 책무를 해내려고 애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투표는 무조건 일단 해야 한다. 해야지 참여다. 그 논쟁에 대해, 근거와 주장의 이유에 대해 충분히 수긍하고 인정할 만한 점이 있지만, 그렇다고 투표거부를 반박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방선거를 대선과 연결시키지 말라고 말씀 드렸죠. 일단 실행적인 면에서는 제가 생각컨대 저희들 중 다수는 노무현이 대통령 후보로 나올 대선을 "두고 봐라"라는 심정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누가 뭐라고 한들, 각자의 생각대로 살 권리, 그게 "민주"라고 생각합니다.
호루스 님이 말하는 "당위성" 물론 이해합니다. 잘못된 세상을 만들지 않기 위해, 차선이라도 노력해야 한다는 거, 하지만, 80년대 세대는 세상이 그렇게 투사가 되고, 열렬한 참여가 아니면 안되도록 선배들의 사고를 만들었지만, 우리 세대는 아닙니다.
우리에게 중요했던 건, 무엇이 되었든 "맹목"을 거부하고 생활화된 민주화를 체화해서 산다는 것, 아마도 그것이 저희 세대에게 주어졌던 과제가 맞을 겁니다.
시대의 흐름을 되돌릴 수 있습니까? 아니 그건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랬다간.. 정말 우리 세대 모두 투사가 되는 방법밖에 없겠죠. 80년대의 선배들이 장막을 걷어주지 않았다면, 우리도 투사가 될 수 밖에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일은 이미 선배들이 끝내지 않았습니까?
우리에게 제발 당신들과 똑같이 살아야 한다고 요구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게 당신들이 쥐고 살 수 밖에 없었던 태도들을 강요하지 마십시오.
기사 쓴 것에 대해서 한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그는 대다수 평범한 학우 중의 하나일 뿐만 아니라, 그 중에서도 좀더 운동권에 접해 있는 나와는 정반대 편에 거의 접해 있는 친구입니다.
우리의 일문 일답.
"노무현 바람 죽었댄다. 우리 땜에, 지방 선거 참여 안해서 그렇다는데,,"
"웃기는 소리. 마음대로 떠들라고 해."
"넌 대선에 찍으러 갈거냐?"
"응. 넌 머하러 그런 데 힘빼냐. 난 그런 건 아예 생각하기도 귀찮다. 걔들 그렇게 살게 냅둬라."
1번과 5번의 기사의견을 말해 주었습니다.
분개하더군요. 거의 세상 일에 적당한 중간과 냉소를 표방하는 아이가.
그러면서, 상대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이게 소수일 거라 생각하십니까? 제가 확신컨대 대다수의 태도입니다.
우리 세대는 투쟁보다, 사회 속의 실질적 참여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인권의 문제, 제대로 살아야 하는 문제, 기타 등등. 하지만, 만약에 정말 군부 독재가 회귀하거나 한다면, 그런 생활은 절대로 견디지 못할, 그래서 거리로 뛰쳐나올 인간들입니다.
그 말을 좋아합니다. 더디가도 함께 가요. 그런 그들을 끌어안고 가야하지 않겠습니까? 급격한 의식화가 시급하던, 80년대 공포정치 상황이 아니란 말입니다. 차근차근 설명하고, 상대에 귀기울이고, 그러면서 동감과 이해를 구해야지. 왜 우리를 배척하려고만 합니까?
그리고, 장상 총리 문제를 접한 여성으로서의 생각, 최초라는, 어쩔 수 없는 현실 속에, 남성 정치가들의 어쩌구 저쩌구 그러니 장상을 밀자.
전 그게 궤변이라고 생각합니다.
투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힘을 실어줘서 살려야 할 때는 지났습니다. 김영삼과 김대중을 보면 더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해서 노무현이 되어봤자, 어쩌면 어쩔 수 없는 현실 타협에 물들지도 모릅니다. 아, 대통령이 되려면, 현실과 어쩔 수 없는 타협을 해야 하는 구나.
지방선거, 저는 노무현의 상황판단 미스와, 민주당의 노무현 한테 모든 비판의 짐 떠넘기기,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비난이 반영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이 속에서 배워야 할 건 자기 분열이 아니라, 뼈아픈 국민의 정화 요구에 귀기울이는 자세입니다. 도대체 국민들이 "우리는 진정한 길을 가고자 애쓰는 정치가를 원한다고", 마이크 잡고 돌아가면서 텔레비젼에 출연해 한마디씩 하기라도 해야합니까?
더디 가더라도, 정도로 제대로 가자.
현실적인 승리를 위해 갈 짓자를 걷는 노무현. 언론이 떠들고, 좀 안다는 놈이 떠들고, "노무현은 안돼"를 하던 인간들을 묵사발을 만들고 대통령 후보로 만든 건, 제대로 된 인간이 대통령 하겠다고 나오는 꼴 좀 보고 싶다는 국민의 열망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투표, 투표에 대한 의무감 주장은 절대적으로 반대합니다. 님이 뭐라고 하시든, 제가 보기에는 투표 안하는 것도 참여입니다. 더러운 정치판을 거부한다는, 그러므로, 반듯한 모습을 보여만 준다면 언제든지 열성적으로 참여 하겠다는. 우리의 무언의 함성이란 말입니다. "똑바로 해"
노무현의 최근 모든 행보에도 불구하고, 나는 비행기표를 사서라도 한국에 들어가 대선에서 노무현을 찍을 겁니다. 제 기사 속에 이미 썼지요. 왜냐면, 그는 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우리의 희망이고, 모든 것에 100% 동의 할 수 없어도, 분명히 그의 심지에는 개혁과 바른 세상에 대한 신념이 가장 핵심적인 요소일 것이라는 생각을 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비난하고, 갈라지고, 손가락질 하는 게 지금 필요한 게 아니란 말입니다. 정말 호루스님 말대로 투표에 참여하고, 바른 세상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면, 그 몸에 밴 비판이 지금 필요한 게 아니란 말입니다.
서로를 끌어안고, 잘 해 보는 게 더 중요하다구요. 상대에 대한 이해없이 몰아붙이기나 하는 태도에는, 가차없이 등을 돌려버릴 준비가 되어 있는 게 우리 세대입니다.
이미 충분히 90년대에 그 모습을 보여주었죠.
다시 제 그 친구 왈, 비판적이더라고 하니까..
"운동권? 걔들이 그렇지 뭐,, 비판 빼면 시체지."
80년대 선배 여러분들이 우리에게 어떤 은혜를 베풀었는 지를 생각해 봄과 동시에.. 우리에게 어떤 "위악과 분열"의 재산을 남겨주었는 지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세대 대부분은 이념 논쟁이라면, 아예 치를 부르르 떱니다. NL이고 PD고 간에 아예 알고 싶지도 않단 말입니다.
대다수 우리 세대에게 물어보세요. NL과 PD에 대해 알고 있는지,
"거 머 친북, 반 친북 그런거 아냐? 알고 싶지 않아. 그런 얘기를 왜 꺼내냐 넌?"
마지막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운동권 속에서 자리를 지켜줬던 나의 친구들에게 채무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들의 활동에 적극 지지합니다. 누군가는 자리를 지켜야 했으니까요.
할 말이 없어서, 선배들에게 감사의 말만 쓴 것도, 좋게 평가한 것도, 나를 낮춘 것도 아닙니다.
제발 우리를 분열시키는 그 꼴들을 그만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먼저 낮추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아예 이런 데 관심조차 가지지 않을 내 대다수 동 세대 친구들에게 거부감만 주는 행위들을 그만 하라고 말하고 싶어서요. 그리고, 제발 협력이나 좀 하라고요.
사실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따끔한 쓴 소리였습니다. 그래서 먼저 당신들을 인정한 것입니다. 어쨌든 당신들이 이룬 성과에 대해..
더 이상 우리를 함부로 말하지 마십시오. 말없이 가만 있는 우리가 할 말이 없어서 가만 있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나처럼 앞에서 떠드는 게 귀찮을 뿐이지
이상입니다.
읽고 나서 보니 거의 하고 싶은 말은 다 했네요.
자, 이제 지방선거 결과 논쟁, 노무현 자질 논쟁, 발언 논쟁, 충분히 했습니다. 그만 좀 합시다. 이게 그럴 시간에, 어떻게 대선에서 이길 것인지, 어떻게 그런 일치와 굳은 연대를 성취할 것인지. 그것 좀 얘기합시다.
하나라도 더 끌어들이고, 이해시키는데, 힘 좀 쏟잔 말입니다. 비판하고, 논쟁할 힘과 능력이면, "조갑제? 너 주둥이 닥치지 못해?" 그런 말 할 수 있을 만큼, 우리도 한 편이 될 수 있단 말입니다. 제발, 니 떠들어라 서로 반목하고, 저것들이 대선에서 똑바로 투표할까? 불신하고. 그런 짓 좀 하지들 마세요. 힘을 합쳐도 모자란 지금 입니다.
2002년 오늘의 개혁 지향 우리 모두의 화두는 "연대"입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