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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 국무총리서리에 대한 국회인준 거부는 아무리 불신과 혐오로 가득한 한국의 정치판의 현실을 감안한다고 해도 역시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경에는 없는 '여인에게 돌을 던진' 사람들이 일찍이 공화당 김성곤이 갈파했듯이 백수건달들이었기 때문에 더욱 분노를 넘어 처량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 땅에서 태어난 국민으로서 험난한 세월, 생존을 위해 온갖 세파에 부대껴 오면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또 부도덕한 일, 창피한 사건, 사소한 실수 한 가지라도 저지르지 않고 백옥처럼 깨끗하게 살아온 사회 지도층 인사들은 또 몇 명이나 남아 있을까 헤아려 봅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임기 말을 맞아 정치적인 12라운드 KO패를 면할 셈으로 무색무취한 장상 이화여대 총장을 국무총리 서리로 임명하고 국회 인준을 요청했을 때, 일부 언론은 "정치권이 거부할 수 없는 절묘한 포석"이라느니 "노회한 용인술"이라느니 하는 비아냥거림과 말장난을 늘어놓았지만, 국민들은 건국 이후 최초로 혐오스러운 정치에 쉽게 물들지 않을 것이라는 유일한 희망으로 '치마 입은' 국무총리가 탄생할 것이라는 신선한 기대로 한껏 부풀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국회를 장악한 원내 제1당, 이회창 씨가 이끄는 한나라당의 반대로 모처럼 가졌던 우리들의 소박한 바람은 물거품이 됐고, 많은 여성단체들의 적극 지지는 참담한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장상 씨가 개인적인 과오를 이실직고하지 않았다는 것이 '괴씸죄'의 표면적인 이유였다고 봅니다. 그런데 국민들은 표결에 참여한 국회의원 누구도 장상 씨보다 도덕적으로 비교우위에 있다고 믿는 인물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비극입니다. 총리인준 부결 이후 이회창 씨와 한나라당의 태도를 보면 마치 소도둑이 바늘도둑을 잡고 의기 양양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은 오로지 연말 대통령 선거를 5년 전으로 되돌려 놓겠다는 일념으로 김대중 정권의 실책을 더욱 거칠게 밀어붙이겠다고 공언한 바 있습니다.
장상 총리인준 국회 청문회에서 아들을 둘 이나 불법으로 군대에 보내지 않은 이회창 씨와 하수인들이 남의 자식 병역의무를 유난히 강조하는 꼴은 차라리 한 편의 코미디였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친손녀를 미국(하와이)에서 '원정출산' 하도록 묵인한 이회창 씨가 장상 씨 부부의 미국 유학 중 낳은 아들 이중국적을 질타케 하는 대목에 이르면 말문이 막힐 뿐입니다. 국세청장, 차장과 자신의 친동생, 서상목 의원 등을 수금 책으로 동원하여 국민 혈세 수백억 원을 도둑질해서 자신의 선거자금으로 뿌렸던 이회창 씨가 장상 부부 교수의 평생저축 수억 원을 부동산 투기로 마련한 돈이 아닌가 하고 몰아세우는 수법은 철면피한 행위의 극치를 보여주었습니다.
한 층에 100평이 넘는 초호화 빌라 3개 층을 한꺼번에 쓰던 이회창 씨가 40여 평짜리 아파트 두 채를 터서 쓰고 있는 장상 씨 가정을 호화, 사치생활자의 표본이라고 질타한 폭거는 양의 탈을 쓴 늑대의 모습 그것이었습니다. 일제검찰에 멸사봉공했던 부친의 친일 얘기만 나오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던 이회창 씨가 이화여대 설립자 김활란 박사를 친일파로 단죄하는 것도 모자라, 김활란 박사를 개인적으로 존경한다는 이대총장 장상 씨의 애국심까지 불신을 제기한 작태는 적반하장에 다름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구나 노골적인 성차별 발언으로 여성 총리서리를 비하한 한나라당과 이회창 씨의 방자한 리더십은 차라리 식인종들의 파티를 방불케 하는 한 편의 블랙 코미디였습니다.
내 눈에 박힌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소맷자락에 붙은 티끌을 탓하는, 대표적인 더블맨 집단의 이중성을 여과 없이 드러낸 본회의장 풍경은 참담한 것이었습니다. 이회창 씨가 대~한민국의 대법원 판사, 감사원장, 국무총리를 지냈다는 사실이 이토록 창피스러울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국 현대 정치사가 한없이 부끄럽게 느껴지는 판에, 오만 방자하게도 대통령까지 해먹겠다고 다시 덤벼드는 작태를 지켜보는 일은 괴롭습니다. 과거 군사독재 권위주의 정권의 정통 계승자 이회창 씨는 자신을 후계자로 지명한 김영삼 정권과 함께 국가를 부도 위기로 몰아넣은 책임에서 한 발짝도 물러설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업보와 치명적인 개인의 과오로 이회창 씨는 수구정권 재창출에 실패했지만 나라를 망친 책임이 자신과 전혀 상관없다는 듯 국민에게 단 한 번도 사죄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온 국민이 김대중 정부와 함께 IMF 체제 극복을 위해 촌각을 다투던 시절, 이회창 씨는 민주당 정권의 발목 잡기에만 급급해서 현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 인준을 6개월이나 지연시키는 지울 수 없는 과오를 저질렀습니다. 그 후로도 정부수립 이후 유례가 없는 국무위원 불신임안 제출횟수 기록을 세우는 등 국정불안을 끝없이 조장하더니 드디어 마지막 장상 국무총리 인준마저 거부하는 파행정치의 극치를 철저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상생'이 '반목'의 다른 말이었다는 것을 확연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회창 씨는 정치를 비판이 아닌 불신과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최대의 공헌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이회창 씨가 대통령이 되기 위해 원내 최대 정당의 보스로서, 개인의 노욕을 채우기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이라도 정당화하겠다는 독선과 아집에 기인한다고 판단됩니다. 장상 총리서리에 대한 총리인준 거부는 다수당의 오만을 유감없이 과시한 외모를 갖추고 있지만 외곬 수의 심층을 들여다보면 이회창 씨의 옹졸한 가부장적인 성향, 치졸할 정도의 정치력 부재에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회창 씨에게는 '빈대를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태워야 하는' 방법 외에 다른 대안이나 아량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이번 인사 청문회가 입증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대안이나 아량이 곧 '정치'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회창 씨가 그런 덕목들을 갖추지 못했다는 사실은 한나라당의 이부영 씨등 개혁적인 사람들을 통해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입니다. 정치를 모르거나 외면하는 사람, 독선적인 유형의 인간이 정치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거니와 정치괴물 아돌프 히틀러의 사례에서 보듯 매우 위험천만한 도박이라는 것이 정치학자들의 예언적인 견해입니다.
이회창 씨는 '김대중 정부 공격만이 연말 대통령 선거의 승리 요체'라는 한나라당 방침에 따라 여론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던 장상 씨를 끝내 총리 자리에서 끌어내리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요즘은 다수당의 위력을 한껏 실감한 듯 기고만장이 극에 달한 느낌입니다. 신문을 며칠 읽지 않은 사람은 아마 정권이 바뀐 것으로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서청원 대표의 입을 통해 '총리인준 청문회를 계기로 김대중 정권은 국정수행 능력이 파탄에 이르렀다'고 큰소리 치고 있습니다. 장상 총리를 정략적 판단에 따라 낙마 시켜놓고 인준부결 책임을 대통령의 무능으로 싸잡아 덮어씌우려는 시도로 보이지만 이런 이회창 씨의 얄팍한 의도를 주류(main stream) 유권자들이 연말 대통령 선거 때까지 쉽게 기억하고 있을 지는 의문입니다.
그래서 국회를 지배하고 정부를 깔아뭉개려는 한나라당 집안풍경은 한 마디로 소도둑이 바늘도둑을 잡고 큰소리 치는 꼴이라는 것입니다. 어두웠던 지난 30년 독재 권위주의 정권의 정통 후계자가 걸핏하면 정치공작, 야당파괴하지 말라고 외치고 언론사 거액 탈세조사를 언론탄압이라고 핏대를 세웁니다. 이회창 씨의 한나라당은 바늘도둑 '여인'에게 돌을 던지고 말았습니다. 그들 스스로 아무리 정부 비판세력이라고 우겨도 국민들은 여전히 불신과 혐오, 환멸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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