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유학생의 고국 방문기

검토 완료

류영재(yjryu)등록 2002.09.04 11:29
내 나라에 다녀오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규정하기 힘든 아픔이 올라 온다. 그 아픔의 근원을 따지고 들어가면 '우리 사회의 뭔가 정상적이지 않은 사고체계나 기준의 언저리'에 결국 다다르게 된다. 그것은 흡사 외눈박이가 두눈박이를 구축해 버린 꼴처럼 필경 비정상(abnormality)이 정상(normality)을 보고 꾸짖고 있는 형국이다. 그리고 사회 구성원들 대부분은 그 엉터리 장단에 덩실 춤을 추고 있을 따름이다.

교육의 문제를 보면 한숨이 절로 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초등학교 아이들부터 학력레이스의 경주마가 되어 있다. 앞만 보고 달려야만 하는 경주마, 좀 더디 달리면 채찍을 맞아야 하는 슬픈 운명의 경주마처럼 말이다. 이런 와중에 가정이 담당해야 할 역할은 이미 상실되었다. 친구들과 오손도손 모여 앉아 우정을 쌓아 나가는 모습은 이미 박물관에서나 찾아야 할 듯 싶다. 이런 판에 전인교육(全人敎育)을 들먹인다면 '자다가 봉창 두드린다'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이번 방문 중 접했던 비정상의 압권은 단연 '강남 vs 강북'간의 괴리 내지는 위화감의 문제였다. 이는 가진 자들의 배 터지는 소리였고 배고픈 자들의 공복의 울음이었다. 이미 그것은 물적 기반의 차이에 더하여 신분적 기반의 차이가 되었다. 상당수 강남아이들이 갖고 있는 신분적 특권의식을 바라보면서 나는 그 아이들을 천민자본주의의 태반에서 자라난 어둠의 자식들이라 불러 주고 싶을 뿐이다.

성도덕의 문제에 접근해보면 참 우스꽝스럽다 못해 슬플 뿐이다. 굳이 전통적 유교가치관으로 회귀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상식적 수준의 양심과 약속을 되찾아 가자는 것이다. 흔히 지구상에서 가장 성문화가 개방되어 있다는 북구라파의 나라들도 혼외정사에 대해서 과연 우리만큼 관대할까? 거리를 걷다 보면 수 많은 잠재적 가정 파괴범들이 요란한 네온사인으로 버젓이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이미 우리의 거리는 환락의 거리가 되어 버렸다. 소돔성처럼 고모라처럼.

이미 진작에 코미디가 되어 버린 정치를 바라보면서 나는 아르헨티나를 떠올렸다. 지난 60년대 GDP 규모에서 세계 7위권을 자랑했던 나라가 이젠 급전직하 했다. 한마디로 망했다. 왜 그랬을까? 난 단연 썩은 정치와 부패한 관료제에 그 이유의 상당부분을 돌리고 싶다.

또 한편 난 GE의 잭웰치를 떠올렸다. 세계 최고 기업의 비결을 묻는 어느 기자에게 그는 뭐라 했던가?
"그 비결은 도덕성에 있습니다. 도덕적이지 못한 CEO 밑에서 도덕적인 종업원이 나올 리 만무이고, 도덕적이지 못한 종업원들이 결코 좋은 기업을 일굴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는 생산, 자본, 인력 등의 효율성 여부를 이야기하기 보단 엉뚱하게도 선문답을 하고 있다.

우리의 정신과 관념은 이미 후진국이 되어 버렸다. 아마 지구상에서 몇 안 되는 가장 빈곤한 나라가 되어 버렸다. 지난 40여년의 성상, '잘 살아 보자'는 구호는 이미 우리의 폐부 깊이 박혀 우리를 기어코 경제동물화 하였다. 그 와중에 우리의 자랑스런 선비정신도, 아름다운 품앗이, 두레정신도, 숭고한 정절과 지조의 미덕도 사라져 버린 지 이미 오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리 아이들은 어디로 갈 것인가?
ⓒ 2007 OhmyNews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