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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내 친구는 결혼을 하면서 남편이 어학연수 때문에 떠나는 캐나다행 비행기에 함께 몸을 실었다. 6개월 정도의 예정으로 올 12월말 정도에 돌아오겠다고 했다. 요즘세상은 참 좋은지라 멀리 캐나다에 있지만, 인터넷상에 카페가 있어서 그곳을 통해 친구의 생활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마찬가지로 여기의 소식을 전해줄 수 있었다.
사실, 그 친구는 17년이나 된 죽마고우인데 서로 사는 게 바빠서인지 서울에 함께 있어도 6개월에 한번 만나기가 힘들다. 그런데도 멀리 있다고 생각하니 왠지 더 보고싶은 맘이 있었다. 가끔 늦은 밤 전화기를 붙들고 함께 수다도 떨곤 했는데 그것이 아쉽기도 하고 말이다.
며칠전 여느 때와 같이 카페에 들렀는데, 캐나다에 있어야 할 그 친구가 서울에 왔다고 글이 남겨져 있었다. 그것도 바로 오늘 온 것이 아니라 온지 보름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야 여유가 생겨서 글을 올린다는 내용이었다. 너무나 놀라워 난 그 친구에게 당장 전화를 걸었다. 반가운 마음과 궁금한 마음 반반이었다. 다짜고자 난 어떻게 된거냐고, 무슨일 있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서울에 왔으면서 왜 이제서야 연락했느냐는 서운함도 전하면서.
친구는 강아지때문이라고 했다. 그제서야 난 '나리'라는 이름의 강아지를 친구가 캐나다까지 함께 데리고 갔다는 걸 생각하게 되었고 간간이 친구가 카페에 올렸던 글도 생각났다. '나리'가 아파서 병원에 갔었다는 이야기가.
친구는 그 강아지를 고등학교 1학년때인가 샀다. 그러니까 벌써 십삼사년은 족히 되었을 것이다. 친구는 외동딸로 자라서 형제가 없는 외로움을 강아지인 '나리'를 통해 달랬을 것이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마치 동생처럼 생각해왔다. 이번에 캐나다를 가면서도 복잡한 수속과정을 거치면서까지 동행했었다. '나리'를 두고 가면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이유도 있지만, 친구도 외로워서 힘들 것같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 마음을 이해할 것도 같았고, 또 한켠에선 내가 느껴보지 못해서인지 이해가 되지 않기도 했다. 뭐 사실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냥 그런가 보다 했었다.
그런데, 함께 동행한 '나리'가 매우 아파서 서울에 돌아왔다고 했다. 말도 잘 통하지 않고 병원비도 만만치 않고, 그렇게 힘들게 다닌 병원의 처방에도 '나리'의 병은 낫지를 않았다고 했다. 남편과 충분히 상의한 후에 어쩔 수 없이 서울로 왔고 지금 강아지를 데리고 병원에 다닌다고 했다.
다른 친구들도 소식을 전해듣고 그 친구와 통화를 했고, 다들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냈던가보다. 하긴 나도 친구에게 기회가 아깝다는 이야기를 한 기억이 있다. 오늘, 카페에 들어가보니 친구가 다른친구들에게 서운한 마음을 적어 놓았다. "하찮은 것일지 몰라도, 소중해~ 나한테는" 이라는 제목으로.
그 글을 읽으며 문득 나 자신을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난 그 친구 마음을 얼마나 이해했던가. '나리'는 강아지지만 친구에겐 정말 친동생과도 같은 존재일텐데 그 '나리'가 아팠으니 말도 안 통하는 타지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좋은기회를 포기하면서까지 '나리'를 살리고픈 맘이 컸던 것이리라. 잠시 미안했다. 그리고 옛이야기 한토막이 생각났다.
옛날 어느 숲속에 배고픈 귀신 아귀가 있었다. 아귀는 어느날 숲속에서 비둘기 한마리를 발견했다. 그 비둘기를 잡아 먹으려고 비둘기를 쫓아 가는데 비둘기는 살기 위해 도망치다가 성인(성스러운사람, 신)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곤 그 품안으로 들어가서 숨었다.
뒤쫓던 아귀는 성인에게 비둘기를 내 놓으라고 난리를 쳤다. 그러자 성인이 아귀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럼, 비둘기의 무게만큼 내 살점을 떼내어 주마"라고. 아귀는 어떻게 먹으나 배를 채우면 그만이니까 성인에게 그렇다면 살점을 어서 떼어 달라고 했다.
양팔저울을 두고, 한쪽에 비둘기를 올려 놓은 후 성인은 칼로 비둘기 무게 만큼의 허벅지 살을 떼내어 한쪽에 올려 놓았다. 그런데 저울이 비둘기 쪽으로 기울었다. 그래서 조금 더 살을 떼어 저울에 올려 놓았다. 분명히 비둘기무게 보다 많이 나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저울은 여전히 비둘기 쪽으로 기울어져 움직일줄 몰랐다.
이상하다 생각하고 있을때 갑자기 하늘에서 이런 소리가 들렸다.
아무리 하찮은 미물일지라도 그것이 가지는 가치와 생명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할 만큼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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