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서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참으로 우리만의 비밀이지만 무일푼 된 늙은이는 되지마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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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임식(cho3242)등록 2002.09.23 08:47
아침저녁 쌀쌀한 날씨만큼 어김없이 계절의 변화를 느끼게 되는 추석 학창시절 이맘때가 되면 교복이 하복에서 동복으로 바뀌는 날이기도 하였습니다.

올해 루사가 지나간 발자취로 마냥 가벼운 마음만은 아닌데 더 무거운 응어리가 가슴에 닿았습니다.

제삿상 준비와 성묘 그리고 가족의 정이 철철넘치는 이틀을 보내고 내친김에 한숨을 자고 났더니만 벌써 떠나야할 시간이더이다.

떠나오기 전 아내와 함께 한 분 남은 일흔이 넘으신 고모님을 찾아뵈었습니다. 덩그러니 큰집에 홀로 계시다 반가이 버선발로 뛰어 나오셨습니다.

절을 받자마자 부엌으로 가셔서 모처럼만에 온 조카 먹여 보낸다며 한 상 가득 음식을 차려 오시더니만 배게 옆 목통안에서 주섬주섬 무슨 편지를 꺼내셨습니다.

노인학교 교장선생님이 보내준 편지라 하시며 윗 쪽은 접어서 가리고 아래쪽을 가리키며 한번 읽어 보라시기에 무심코 받아 읽어보았습니다.

거기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 지혜로운 늙은이가 되소서 라는 주석과 함께

설치지 마시고 헐뜯지 마시고 군소리 마시고 죽는소리 마시고
미운소리 마시고 우는소리 마소서
무엇이든 조심조심 일러주시고 알고도 모르는 척 어수룩 하소서
절대로 이기려 하지 마시고 그저 저 주시구려
한 걸음 두 걸음 홀가분히 물러서 주시고 양보하며 슬기롭게 참아 주소서
이 모든 것이 늙은이의 지혜러니

돈 돈 돈의 욕심을 버리셔야지 아무리 많은 돈 가졌다 하드래도
죽으면 모든 것이 그만인 것을
많은 돈 벌어놓아 자식들 싸움판 만들면 가문의 망신 개망신 되나니
살아서 배풀어 큰 덕 쌓아두면 죽은 뒤 칭송 또 칭송 받으시고
당신의 공적 길이 길이 남으리라

그러나
참으로 우리만의 비밀이지만 무일푼 된 늙은이는 되지마소서
옛 친구 만나면 약주 한잔 권하고
손주놈 볼라치면 용돈한푼은 줄 수 있어야지
그것마저 못하면 서러운 푸대접 감당키 어렵다오
이말은 진심이니 명심하소서
옛일일랑 다 잊으시고 잘난 체랑 더더욱 하지 마소서
당신은 이제 저물었다오
아무리 애써봐도 힘만 팽기러니 지금도 안 늦으니
존경받고 추앙 받는 늙은이로 사시구려
아프면 안되오 멍청하면 안되오 소일거리 찾아서 활동하소서
이것이 늙은이의 대도이리니
몇 번이고 외치노니
건강 또 건강
몇 번이고 이르노니
오래오래 사소서

제가 본 내용입니다.
가슴 한가운데가 훵하니 뚤리고
등줄기에선 전율이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노인들의 삶에 대해 깊게 생각한적이 별로 없었던터라
더욱 그랬나 봅니다.

세명의 자식을 먼저 저세상으로 보내고
막내와 함께 함께 여생을 보내고 계시는 고모님은 눈물이 나더라고 하셨습니다.
이세상을 먼저 이끄셨던 그분들의 자리가 왠지 쓸쓸하더이다.
마치 내 앞날을 보는 것 같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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