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적인 추석특집방송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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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소영(seeingsky)등록 2002.10.04 10:47
우리네 명절 추석입니다.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인지라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에서부터 요즘 사는 이야기까지 입이 쉴 새가 없습니다. 안방 한 구석에 가족의 일부인 양 떡 하니 자리잡은 텔레비전도 끊임없이 무언가 말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 하나 눈길 주는 이가 없지만, 실은 계속 쳐다보고 있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게 누구냐구요. 바로 접니다.

그렇습니다. 좀 전까지만 해도 일반인들이 나와 삶을 이야기하며 희노애락을 담아 노래를 부르더니(MBC버튼 노래방), 이제는 연예인들이 나와 한바탕 노래를 부릅니다(KBS2 폭소 가요제). 이웃에 송편을 갖다주라는 어머님 말씀에 따라 동네를 한바퀴 돌았습니다. 집에 들어와 보니 여전히 켜져 있는 텔레비전에서는 영화가 방영됩니다. 극장에서 몇 백만을 관람한 영화라던데, 지금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사람의 숫자는 얼마나 될까요. 괜스레 궁금해집니다.

사실 전 텔레비전을 별로 좋아하진 않습니다. 시시껄렁한 잡담만을 늘어놓는 것은 딱 질색입니다. 그러나 예쁜 연예인이 나오는 건 보기 좋습니다. 그런데 이번 추석에는 왠일인지 인기연예인들이 별로 보이질 않습니다. 단체로 성묘라도 간 것일까요. 평상시에는 자주 보지 못했던 비인기(?) 연예인이나 일반인의 참여가 부쩍 눈에 띕니다.

-전반전

여전히 밥숟가락을 들고서도 힐끔힐끔 텔레비전을 보게 됩니다. 명절 음식에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푸짐한 밥상만큼이나 각 방송사에서 마련한 추석 특집 프로그램도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합니다.

일단 명절 특집하면 생각나는 프로그램은 뭐니뭐니해도 버라이어티쇼입니다. 올해도 변함없이 '폭소가요제'(KBS2), '빅스타 총출동'(SBS)와 같은 프로그램을 볼 수 있었으니까요. 이들 프로그램의 재미야말로 출연진에 의해 좌우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익숙한 프로그램 사이사이에 기존에 못 보던 것이 하나씩 끼어 있습니다. 파일럿 프로그램이라나요. 정기편성에 앞서 시청자 반응을 보고픈 마음에 방송되는 프로그램들이랍니다. '서바이벌 심리퀴즈- 철면피 '퀴즈 금의환양', '코미디 클럽'(KBS), '스타 도네이션-꿈은 이루어진다'(SBS)등 각 방송사별로 서너개 씩은 준비한 모양입니다. 물론 추석연휴 후에도 이들 프로그램을 계속 볼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특집 드라마 역시 눈길을 끌기에 충분합니다. 가족애를 소재로 하는 드라마가 대부분인 것을 보면 여전히 우리 사회의 가치는 '가족'이라는 키워드로 풀이되는가 봅니다. '황금연못'(SBS)에서는 어려운 상황에서 웃음을 잃지 않는 이웃의 모습이 그려졌고, 부엌데기(MBC)에서는 정성을 담은 밥상을 통해 가족을 불러모으는 화합의 모습을 담아내었습니다. '첨성대의 달'(SBS)에서는 아줌마의 꿈을 그리고 있네요. 기존의 트렌디 드라마나 주말드라마에서 남녀간의 사랑과 다툼이 주된 소재였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올해 추석에는 안방극장도 단단히 한몫 했습니다. '엽기적인 그녀'(KBS2), 신라의 달밤(SBS), 글래디에이터(SBS)등 영화관에서도 많은 관객을 사로잡았던 흥행작들이 대거 방영되었기 때문입니다. 기대에 부흥하듯 이들 영화는 대부분 약15∼20 %의 높은 시청률을 얻었습니다.

- 후반전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말은 방송에도 적용할 수 있나봅니다. 프로그램이 가지각색이니 여기저기 성한 구석이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대개 방송사 제작 시스템이 '즉작제'(그때그때 제작하여 방송하는 것)인데, 연휴 내내 종일 무언가를 방송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일지도 모릅니다. 어찌되었든 방송사 나름대로 시간과 인력을 총동원하여 제작하였을 테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입니다.

추석 연휴가 끝나자마자 '자유선언 토요대작전'(KBS2)는 비난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남녀 씨름 코너에서 남녀 출연진이 뒤엉켜 몸싸움을 벌이는 야릇한 장면이 이어져 시청자를 민망케 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자막 사용에 있어서도 성희롱을 의심케 하는 표현이 사용되어 KBS의 시청자 게시판과 방송위원회의 사이버민원실에 항의의 글이 빗발쳤습니다.

이에 연출자 김충 PD는 "문제가 될만한 내용을 걷어내야 했는데 편집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며 제작진의 실수이며 시청자에게 죄송하다"고 말했다지만, 여전히 씁쓸한 입맛은 어찌할 수가 없네요.

추석 특집이라는 이름 아래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였지만 이것 역시 구색 맞추기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다양하다는 것이 겨우 오락 프로그램이라는 장르에 국한된 것임은 여러분도 쉽게 눈치채셨을 겁니다. 제작의 수고를 덜어주는 동시에 시청률 걱정을 덜어줄 영화들이 곳곳에 포진했음도 보셨을 테니까요. 이미 오락프로그램에 만연한 출연진들의 말장난은 추석이라 달라질 것이 없다는 사실에는 실망할 기력조차 없었답니다.

- 연장전

추석 특집 방송을 볼 때는 몇 까지 지켜야될 수칙이 있답니다. 첫 번째, 교육방송 같은 거 요구하지 마라. 두 번째, 텔레비전은 세 시간 이상 연속해서 켜두지 마라. 세 번째, 안방에서는 텔레비전만 보라, 네 번째, 유치한 말장난을 보고도 품위 있고 고상한 입담으로 여기라. 다섯 번째….

내가 기대하는 좋은 프로그램이 다큐멘터리와 같은 형식이거나 교훈적이고 발전적인 내용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프로그램들로만 꾸며진 편성이라면 저는 텔레비전을 내다 팔지도 모릅니다. 지금과 같은 다양한 시도들을 통해서 언젠가 우리 모두가 바라는 프로그램을 볼 수 있는 날이 오겠죠. 그날을 기대해봅니다. 올해의 추석 특집 프로그램은 이미 타임캡슐에 넣어뒀거든요. 2년 후에 열어볼 겁니다. 그때는 방송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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