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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너무 멀게만 느껴지는 노벨상이지만 일본인들에게는 이제 '신기한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대학원, 석·박사 과정도 밟지 않은 평범한 일본의 한 젊은 민간회사 연구원이 한국인들에게는 '꿈의 경지'로 남아 있는 노벨 화학상을 받았습니다.
일본의 연이은 노벨상 수상 실적은 사실 지금까지 쌓아온 경제적 성과를 바탕으로 기초과학에 쏟는 탄탄한 학문적 수준과 역량을 증명해준다고 보아야 맞을 것입니다. 일본은 물리, 화학, 의학, 문학 등 여러 부문에서 받은 데 비해 우리는 유일하게 평화상 부문만 한 번 수상했을 뿐입니다.
그나마 김대중 대통령이 받은 노벨 평화상을 부정한 방법(뇌물, 정권차원의 로비)으로 받았다고 한국 최대의 정당 한나라당과 이회창 후보가 폭로, 비난하는 희한한 꼴이 뒤늦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진위를 불문하고 연말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자 정치한다는 사람들 모두가 이성을 잃은 채 나라 망신을 자초하면서 국민들 자존심 죽이기에 총 궐기하고 나선 듯 합니다.
이런 시류 탓으로 노벨상의 권위가 훼손되지는 않겠지만 우리 자녀들이 '노벨상도 돈이면 된다'고 혹시 착각할까봐 겁납니다. 그런가하면 이번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수상으로 노벨 평화상이 언뜻 '대통령들이나 받는 상' 정도로 격하된 때문인지 "자연과학이나 의학, 문학 부문에서 한국인 수상자가 나와야 진짜 노벨상을 받았다는 실감이 날 것"이라고 호언하는 소리도 들립니다.
더군다나 최근 이회창 후보와 한나라당의 폭로에서 보듯 "김대중 대통령이 로비를 해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는 어처구니없는 소리까지 횡행하는 상황을 보고 있으면 '노벨상도 별 것 아니구나'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법하다는 느낌도 듭니다.
많은 사람들은 김대중 대통령이 야당 지도자 시절부터 여러 차례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올랐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1997년 대통령 선거에 나섰을 때, 역시 노벨상 평화상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하지 못했다는 사실도 물론 알고 있겠지요. 그런데 그 당시 이회창 씨 측근이었던 한나라당 이신범 의원 등을 중심으로 "김대중씨가 노벨 평화상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요지로 국제 여론을 환기시키는 한편 노벨상 위원회에 '역(逆) 로비 투서'까지 보냈다는 사실이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소위 말하는 이회창씨 측 인사들이 펼친 '반 김대중 세력의 역 로비'라는 추악한 스캔들이 그것입니다.
당시 '김대중 노벨 평화상 수상 저지'를 위해 '역 로비'가 있었다는 사실은 이번 한나라당의 로비설 폭로를 반박한 청와대 성명과 노벨상 위원회 사무총장의 반박 코멘트에서 새삼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노벨상 위원회 사무총장은 한나라당 측이 주장하는 로비설을 "매우 무례한 짓"이라고 일축하면서 당시 역 로비가 있었다는 사실은 간접화법으로 시사해서 눈길을 끌었습니다. 사무총장은 '노벨상에 로비는 통하지 않는다. 역 로비도 마찬가지였다'고 말하면서 이들의 주장을 '무지의 소치'로 점잖게 꾸짖었습니다. 이 말은, 수상자 결정이 로비의 영향을 결코 받지 않지만 '역 로비' 역시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회창씨와 한나라당 의원들의 로비설 폭로가 사실이라면 노벨 평화상은 존재 가치를 잃을 것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로비설' 주장은 악랄한 블랙 코미디에 불과하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신성한 권위를 자랑하는 노벨상이 명예를 침범 당했을 때 어떤 결과를 빚을 것인가, 한 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라고 봅니다.
스웨덴 한림원을 상대로 '로비설 진위 여부'를 놓고 단 한 차례의 사실확인 과정도 없이 '김대중 로비설'을 대서특필한 한국의 메이저급 신문 조선, 중앙, 동아일보는 특히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봅니다. 폭로 근거는 이회창씨나 한나라당이 가장 혐오하는 '재소자 증언' 즉 최규선의 확인되지 않은 메모 한 장이었습니다.
이것은 결국 '반 김대중 정서'를 공유한 조 중 동과 한나라당이 번갈아 가면서 '북 치고 장구치는' 약속된(?) 음해행위의 반복, 즉 '치고 빠지기 식'의 폭로를 위한 폭로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조 중 동이 언론의 사이비 기능을 재확인시켜주었다면, 한나라당은 정당 기능의 포기로 나타났다고 판단합니다.
이것은 '이회창 대통령 만들기'에 혈안이 된 측근들의 섣부른 돌출행동을 수구언론 조 중 동이 여과 없이 보도했다는 뜻입니다. 이회창 후보의 부인 한인옥 씨는 얼마 전 광역 및 시, 군 자치단체장들을 모아놓은 자리에서 연설을 통해 "하늘이 두 쪽 나도 정권은 잡아야 한다"고 기염을 토함으로써 이 부부의 대통령 병이 어느 정도 중증인지 짐작케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대통령 선거가 '막가파 식'이 되어서는 곤란하다고 봅니다.
노벨상 선정 위원회가 혹시 정도가 아닌 방법으로, 한국에서 흔히 그렇게 하듯 고질적인 로비나 뇌물에 의해, 수상자를 결정했다면 어떻게 될까, 차마 생각하기도 싫은 시나리오입니다.
심사위원들이 '검은 돈을 먹고' 김대중 대통령에게 노벨 평화상을 주었다는 주장은 알프렛 노벨의 숭고한 유지를 훼손하는 패륜적 작태일 뿐 아니라 노벨상의 순수성과 권위를 수십년 동안 가감 없이 인정해 온 세계 석학, 지성인들에 대한 씻을 수 없는 모독이고 도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회창씨와 한나라당은 지극히 어리석고 철딱서니 없는 행동을 고의로 자행한 것입니다.
노벨상의 권위를 아끼는 세계 각국의 지성인들이 한국 대통령 후보 이회창씨의 당랑거철(螳螂拒轍)의 만용을 어떻게 이해할까 매우 궁금합니다. 소위 30여년 군사독재 시대를 거치면서 '뇌물 공화국'의 전성기를 이끌어 온 주체세력의 계승자가 이회창씨와 한나라당이라면 세계 지성인들의 이해가 쉽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이회창씨가 인류 역사에 가장 야비한 한국의 정치인으로 비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하늘이 두 쪽 나도 대통령을 해먹겠다"는 사고방식의 소유자들이어서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김 대통령의 공 사적인 비리나 결점을 들추어 비난 할 수는 있다고 보겠으나 "로비를 통해 노벨상을 받았다"고 폭로한 발언은 결코 정적을 향한 단순 공격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의 '로비설 공격'은 국제적 망나니를 자초한 정상배의 치졸한 행위이기에 앞서 정신분열증에 가까운 행태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나는 일찍이 이회창씨의 이러한 성향, 즉 '제로섬 취향'을 예로 들면서 "이회창씨는 결코 정치가, 지도자로 성공할 수 없는 인물"이라고 조목조목 강조한 바 있습니다. 이것은 이회창씨의 별명인 '대쪽' 이미지에서 보듯 자타가 공인하는 부정적인 요소에서도 쉽게 드러나고 있다고 봅니다.
1997년 대선 패배 이후 한나라당의 사당화(私黨化) 과정에서 여실히 보여준 선의(善意)를 가장한 독선과 특권의식, 여기에 '정치'에서 개인감정을 앞세우는 자연인 이회창씨의 옹졸한 캐릭터는 이미 검증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자유당 독재시절 야당 지도자의 한 사람이었던 조병옥은 이승만 정권의 혹심한 탄압 하에서도 정치의 '제로섬게임'을 경계하면서 '빈대 한 마리를 잡기 위해 초가 삼간을 태울 수는 없는 법'이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빈대 잡기 위해 집을 태우려는 사람은 외곬 수 '독립군'이거나 정상배, 둘 중 하나로 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정치는 식민지 해방투쟁을 하고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순수한 의미의 '독립군'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흔히 '정치'하는 사람들을 쉽게 양분할 때 '정치꾼(정치인)'과 '정치가'를 차별해서 말하는 경우를 봅니다. 우리는 둘 다 '정치'라는 비슷한 용어가 있기 때문에 내용도 비슷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서구인들은 판이하게 구분해서 이해한다고 합니다. 이론으로 확립된 개념은 아니지만 이를테면 폴리티션(politician)이 보통 '정치꾼(정치인)'을 지칭한다면 '정치가'는 스테이트맨(statesman)으로, 격을 높여 부른다는 것입니다.
마치 법정 변론으로 먹고사는 사람들로서 형사사건의 범죄인, 잡범을 대변하는 사람을 '변호사'로 부른다면, 오랜 기간 지루한 법리논쟁을 벌이는 변호사를 '법률가'라고 부르는 동업자들의 차별화 관행에 비유할 수 있을까요? 이 경우 우리 서민들의 정서는 변호사와 사기꾼을 백지 한 장 차이 정도로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정치꾼'이 유권자의 표를 의식해서 다음 선거만 바라보고 행동하는 정상배, 모리배 정도의 부류라면 '정치가'는 국가와 민족의 운명, 보편성을 중시하고, 인류 장래를 생각하면서 국민에게 봉사하는 사람을 지칭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을 신문지상에서 대할 때마다 부정적인 의미의 '정치꾼'인가, 아니면 보편적 양식을 갖춘 '정치가' 인가, 쉽게 구분하는 방법의 하나로 외교(外交)적 역량과 식견을 꼽는 정치평론가들도 있습니다. 대외 관계나 국제 외교를 염두에 두지 않고 '우물 안 개구리 식'으로 행동하는 정치인들은 '정치꾼'으로 분류되어 정상배-모리배, 사기꾼에 가까운 부류로 간주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정치'를 하면서 '외교'를 잊지 않고 행동하는 사람은 '정치가'로 불러야 마땅할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 정치꾼(정치인)은 많아도 정치가는 흔하지 않다는 말일 것입니다.
매년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될 때마다 이런 저런 로비 의혹이 외국 언론에 비치지 않을 때가 드물지만 한 번도 실체가 드러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수상자 선정 자체가 엄격한 권위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이회창씨와 한나라당의 주장처럼 자국인이 받은 노벨상 평화상에 로비 의혹을 제기한 경우는 노벨상 제정 이후 처음 있는 '신기한 사건'이라는 것이 해외 언론의 비아냥 섞인 시각입니다. 설령 어떤 의혹이 있더라도 폭로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가간 외교 비화가 그렇고 국가 안위를 위협하는 사항에 그런 필요성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한일협정 비준 막후 이야기가 아직도 비밀인 것도 그런 이유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회창씨는 며칠 전 존재 자체가 비밀로 분류되어 있는 육군 감청부대를 공개했고, 북한 정보, 첩보 도감청 내용까지 공개된 국정감사장에서 폭로케 함으로써 국가안보에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혔습니다.
이회창씨는 수구적인 당리당략을 위해 "하늘이 두 쪽 나도 대통령이 되겠다"는 개인 야욕 달성을 위해, 객관적인 증거나 대책도 없이 외교를 무시하고 국가 유지를 위한 비밀까지 폭로하고 있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는 절차와 증거를 누구보다 중시하는 판사로 일생을 살아온 사람입니다. 노벨 평화상 로비 의혹 폭로에서 보듯 '넘어서는 안 될 선(point of no return)'을 이미 넘어선 이회창씨는 어느 나라 정치인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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