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의 서정이 담긴 양현식회화전

섬진강의 서정이 빛나는 그림들

검토 완료

전영철(sjjyc)등록 2002.11.15 19:30
어젯밤에 내린 비는 간밤에 눈으로 바뀌었는지 치악산에 하얀 눈이 내렸다. 왠지 겨울이 성큼 다가선 느낌이다. 이런 때일수록 고향이 사무치도록 그립다. 우편함에 끈질긴 의욕으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화가 친구로 부터 우편물이 하나 날라왔다.

바로 섬진강의 너무나도 정겨운 모습들이 담긴 그림들의 도록이었다. 섬진강을 닮은 사람들, 어머니의 강 섬진강을 너무나도 섬세한 터치로 친구는 섬진강을 잊고고 지냈던 나에게 가져다 주었다.

한장을 넘기니 김용택선생님의 반가운 글이 나타난다. 바로 전시회를 손수 축하해주기 위해서 글을 쓰신 것이다. 박수근 화백의 그림을 그토록 좋아하셨던 선생님, 하지만 선생님에게 가르침을 받고 자란 또 하나의 제자가 선생님에겐 박수근 화백 이상이리라.


섬진강의 서정이 빛나는 그림들 「양현식 회화전」
전시기간 2002.11.20(수)-11.26(화)
오프닝 2002.11.20(수) P.M 5
전시장소 造形 갤러리(인사동)
화가 양현식
전북 임실 섬진강변 출생
우석대 한국화과 졸업
단국대 대학원 동양화 전공
우묵회, 의식의새물결회,단국원회 회원


섬진강의 서정이 빛나는 그림들


글 김용택(섬진강 시인)


섬진강가에 있는 작은 학교의 아침 운동장은 생생하고, 활기차다 못해 어딘가 터질 것처럼 생동감이 넘친다. 사람과 자연이 아름답게 어울릴 수 있는 것은 농부들이 노동하는 모습과 어린이들이 노는 모습이다. 가을을 맞이하는 강과 산, 그리고 샛노랗게 익어 가는 작은 들판의 벼, 밭가나, 강 언덕에 지금 막 피어나는 억새 꽃, 그리고 붉게 익어 가는 감과 붉게 익어 떨어지는 알밤, 그 풍요로운 자연 속에 거침없이 뛰노는 아이들의 목소리는 장엄한 자연과 어울려 감동을 준다. 지금 나는 내 교실 2층 창가에 서서 저 광활하게 펼쳐진 선진강가의 풍경에 취해 서 있다. 안개가 서서히 사라진다. 새들이 울고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부른다. 아이들이 교실을 향해 해 맑은 얼굴을 돌린다. 저 속에 어린 현식군이 있었다. 지금 나를 향해 뛰어 오는 저 호영이 경수들처럼 옛날 현식군이 내 교실을 향해 뛰어 왔던 것이다.


내 반이 된 현식군이 그린 그림 한 장을 나는 얼마 전까지 간직하고 있었다. 집을 치우면서 그 그림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내 서가 어느 곳에 고이 간직되어 있을 것이다.


내가 태어나 자란 곳에서 지금까지 초등학교 선생을 하고 있는 나는 내 반이 되어 온 아이들이 그린 그림에 대해 늘 감동한다. 어린이들의 그림을 자세히 보고 있노라면 어디선가 많이 보아 온 화가들의 그림이 숨어 있다. 현식군이 어느 미술 시간에 그린 그 그림은 아이들이 빙 둘러앉아 공기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노란 색 바탕에 까만 머리통을 한 아이들이 빙 둘러앉아 있는 모습은 살아 있었고, 생동감이 넘쳤다. 그 그림을 오랫동안 교실 뒷벽에 붙여 놓고 있다가 학년이 바뀌었을 때 그 그림을 나는 집으로 가져가 내 방 벽에 또 오랫동안 붙여 놓고 바라 보았었다. 그 때부터 현식군이 그림을 그리겠다는 생각을 했는지 어쨌는지는 잘 모르겠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몇 년 전 나는 신문 지상에서 현식군의 이름을 보았고, 그리고 그의 동료들과 함께 그린 그림을 전시한 전시장에 가서 그의 그림을 보았다. 현식군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우리 동네 앞산은
뭐 먹고 자랐는지 우리보다 키가 크다
성미산은 나무가 많아서 무겁지도 않나
아무렇지도 않게 앉아 있네


위 글은 지금 우리 반 2학년 호영이가 쓴 동시다. 이 어린이는 지금 현식군이 살아던 섬진강가 일중리라는 마을에 산다. 이름도 근사한 일중리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동네 앞으로 조금만 가면 섬진강과 만나는 깨끗한 시냇물이 흐르는데, 이 시내 이름이 구림 천이다. 동네 앞에는 아름드리 큰 느티나무가 있고, 그 느티나무 아래로 이 맑은 시냇물이 흐른다. 그 시냇물 건너에 우람한 성미 산이 있고, 그 산 끝 시냇물이 휘돌아 나가는 곳에 작은 돌이 시작된다. 느티나무 아래에는 작은 들로 가는 징검다리가 있다. 그 징검다리는 지금도 있어서 그 동네 사는 경수라는 아이가 이런 동시를 쓰기도 했다.


징검다리를 건너다가
필통과 공책을
강물에 빠뜨려서
엉엉 우네
(우리 반 일중리에 사는 경수 동시)


현식군이 학교를 다니며 필통과 책가방과 신발을 빠뜨렸을 이 시냇가에는 이 나라 강물에서 가장 서정적인 징검다리가 놓여 있는 것이다. 동네 앞에 서 있는 우람한 산과 동네 앞을 휘돌아 나가는 작은 시냇물, 그리고 이마를 마주 대고 앉아 있는 마을 집들, 시내 건너에 있는 작은 들과 들 끝에 있는 또 다른 마을들은 그대로 그림이다. 그림같은 산천 속에서 오랫동안 사람들이 자연과 한 몸이 되어 살아 왔던 것이다. 그 아름답고 서정 넘치는 곳에 나서자란 현식군은 그 정서를 고스란히 담아서 되살려 내고 있으니, 그의 그림은 그가 나서 자란 산천과 꼭 빼 닮았다. 한 사람이 나서 자란 자연 환경은 그의 삶에 직간접적으로, 어떤 식으로든 영향이 미친다. 그 사람이 예술을 하는 사람에게는 거의 절대적이다. 현식군이 그려낸 그림들이 당연하게도 그와 한 몸이 된 그의 산천이 아닌가.


그의 그림들은 그의 마을을 멀리 벗어나 섬진강 굽이굽이를 넘나든다. 섬진강은 아름다운 강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 어느 계절이든, 그 어느 때 그 어느 곳을 바라보든, 소박하고 조촐한 풍경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강굽이를 바삐 돌아가는 저문 물, 강가에 있는 큰 바위들 사이를 돌아 흘러 오는 아침 강물, 해 저물면 녹지 않은 마을 뒷산 솔밭 잔서의 고즈넉한 겨울 풍경, 모내고, 벼 베고 농사짓는 농부들의 느린 풍경, 그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는 우리들의 서정이다. 그 빼어난 서정들을 현식군은 그의 그림에 다 담아 낸 것이다.


지난 추석 그가 차에 싣고 와 그의 그림에 나오는 우리 동네 느티나무아래 그의 그림을 늘어놓았을 때 나는 참으로 기뻤다. 나는 그의 그림을 한 장 한 장 바라보며 내가 살고 있는 이 작은 강을 다시 바라보며 큰 숨을 쉬었던 것이다. 그래, 그렇구나, 저 그림은 천담 마을이고, 저 그림은 구담마을 징검다리고, 저 그림은 현식군이 살았던 마을 동구로구나, 저기는 회문산 입구네. 가만 있어봐 저기 저 대 숲은 구담 마을 박씨네 집 아니냐, 그래 그렇지 당연히 그래야지, 그 것이 그림이지. 나는 흐뭇하고 감격했다. 한 예술가가 그를 닮은 산천을 표현해 내는 일이야말로 예술을 시작이고 끝이 아니던가.


나는 그림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하지 못한다. 오래 전 초등학교 때 내 앞에서 크레파스로 자기 마을과 강과 들과 감나무를 그리던 한 어린이가 성장하고 어른이 되고 예술가가 되어 그가 어렸을 때 그린 그 풍경을 다시 내 앞에 되살려 낸 그림들을 내 앞에 놓고 감개가 무량한 것이다. 이 어찌 놀랍고 경사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아이들이 다 돌아 간 운동장을 바라본다. 현식군이 뛰어놀았던 그 운동장에 가을이 깊어진다. 멀리 섬진강의 가을서정이 눈부시다. 나는 저 눈이 부신 가을 섬진강을 사랑한다. 빼어나지도, 그러다고 화려하지도 않은 산천 속을 흐르는 저 조촐한 섬진강을 닮은 사람들을 나는 또 사랑한다. 현식군이 그런 섬진강을 닮은 그림을 서울에서 전시하다니, 내가 축하하는 글을 또 쓰지 않을 수 없는 일 아니겠는가. 끝없이 흐르는 섬진강처럼 그의 그림이 끊임없이 정진하고, 또 정진하기를 빌어마지 않는다.


2002년 가을 섬진강 작은학교에서 김용택(섬진강의 시인)


다음 주엔 모든 일을 팽개치고라도 그리운 벗들을 찾아 서울로 올라가야 할 것 같다. 아! 섬진강이여, 어머니의 강이여..... 친구야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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