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이첵의 포스터 ⓒ 한상언
1837년, 게오르그 뷔히너는 23세의 나이에, 미완성의 원고를 서랍 안에 남긴 채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1879년 오스트리아의 작가 프란초스는 알아보기 힘든 뷔히너의 미완성 원고를 해독하여 뷔히너 전집안에 수록했다. 이 작품은 20세기 들어 자연주의와 표현주의의 선구적 작품으로 추앙 받게 된다. 다소 특이하게 세상에 등장한 이 작품이 바로 <보이첵>이다.
<보이첵>의 작가 뷔히너는 대학에서 의학공부를 했다. 그곳에서 자유사상의 영향을 받아 정치활동에 참여했다. 그는 사회주의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전단을 만들어 배포한 혐의로 경찰의 수배를 당하게 된다. 독일을 떠나 프랑스로 망명한 그는 청년 독일파의 작가 구츠코의 도움으로 <당통의 죽음 Dantons Tod>을 출판하고, 얼마 있지 않아 망명지에서 요절했다.
<보이첵>은 미완성 작품이다. 서랍안에 있던 원고는 메모형식으로, 구성이 완벽히 되어있는 것도 아니고 완벽한 줄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 점은 많은 연출가들에게 작품해석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극단 백수광부 제12회 정기공연 <보이첵>(임형택 연출 / 연우소극장)은 '사회속에서 억압받는 소시민'을 주제로 인간 감정의 표출에 강조를 두어 작품을 만들었다.
이 작품은 실제 살인 사건의 기록을 토대로 한다. 가난한 병사 보이첵은 장교에게 구타당하고 군의사에게 실험당한다. 그는 뛰지도 못하고 소변도 마음대로 볼 수 없다. 그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철저히 무력한 인간이 된다. 그에게 유일한 삶의 보람과 근거는 부인 마리이다. 하지만 마리가 악대장에게 유혹당하자 그녀를 살해하고 자신도 죽는다.
연출을 맡은 임형택은 <한 여름밤의 꿈> 등을 연출한 중견 연출자다. 그는 다른 연출가들이 만든 <보이첵>과는 달리 이번 공연에서 극을 바라보고 도와주는, 신과 같은 역할을 하는 배역을 넣었다. 물론 원작에는 없다.
원작이 있고, 많이 공연되는 작품일수록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자칫 원작을 훼손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원작과 다른 이야기에 관객이 혼란스러워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작품의 관찰자이자 배역이 되어버린 '칼'의 역할이 그렇다. '칼'의 존재는 혼란스럽다.
극의 시작과 끝에 보여지는, 줄에 매달린 인형과 같은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칼'이 인형놀이의 연출자와 같은 존재임을 알려준다. 그러나 배우들이 '칼'의 존재를 모르는 것처럼 연기하다 어느 장면에서는 같이 대사를 주고받으며 연기를 한다. 이 배역의 극 중 위치설정이 일관적이지 못하다는 증거다. 이 배역에 대한 확실한 입장정리가 아쉽다.
이 작품에서는 사실적인 연기보다는 표현적인 연기가 많이 사용되었다. 극의 처음과 끝 장면에서 무대 바닥에 긋는 원, 극의 처음에 등장하는 배우들의 각종 몸짓, 술집 장면에서 춤동작 등이 그것이다. 여기에 분위기를 살려주는 음악과 어울어져 장면이 주는 효과가 잘 표현되었다.
무대는 단을 세워 연기공간을 단 아래의 공간과 단을 같이 이용하였다. 특별한 무대 장치나 소품 없이 단과 단 아래의 공간을 연기공간으로 사용, 변화를 주었다. 여기에 국부적인 조명을 이용하여 무대를 여러 공간으로 나누어 사용하는 효율적인 방법을 사용되었다.
이 작품의 배우들은 대부분 20, 30대의 젊은 배우들이다. 이들의 연기는 에너지가 넘친다. 하지만 그 에너지는 연극에 감동을 주는 힘이 되기엔 부족한 감이 있다.
<보이첵>은 내용에 있어 해석의 여지가 많고 표현방법에 있어 현대적이다. 이것은 연출가들이 이 작품을 공연하는 가장 큰 매력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다른 어느 작품보다 많이 공연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연극 연출을 해보고 싶은 사람들은 <보이첵>을 보러가는 것이 어떨까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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