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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이 오랜만에 동아일보 칼럼을 썼다. 영어공용화를 주장하며 '컬트 지식인'의 자리에 오른 그다운 내용의 칼럼이다. 역시 무식하면 용감한 법, 그가 선택한 주제는 미군 무죄평결이다. 재미있는 것은 당위와 사실, 판단과 선입견을 구별하지 못하는 그의 칼럼이 현재 오락가락하며 갈피를 잡지 못하는 동아일보의 정신상태를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한번 감상해 보시라.
우리와 미군 사이의 행정협정(SOFA)을 개정하는 일은 분명히 바람직한 일이고 좋은 영향을 미치겠지만, 그런 사정을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못한다. 사고를 낸 미군 병사들에 대한 재판 결과는 미국 입장에서는 적법한 절차를 거쳐 나온 것이다. 비록 우리에겐 낯설고 편향적인 조치로 비치지만, 미군 병사들로만 구성된 배심은 ‘동료 시민들로 구성된 배심에 의한 재판’(trial by a jury of his peers)이라는 미국 법의 관행을 따른 것이다. 미군형법에 따르면 군사법정의 배심원은 민간인이 될 수 없다.
결국 우리 시민들이 정의롭고 합리적이라고 여기는 것들과 미국과 미군이 정의롭고 합리적이라 여기는 것들 사이에는 커다란 간격이 있다. 그리고 그런 간격은 본질적으로 우리와 미국 사이의 문화적 차이에서 나왔다.
정의의 문화적 차이. 문화마다 정의는 다른가? 헛소리다. 여기서 복거일은 정의를 판단하는 절차를 정의 그 자체와 혼동하는 모순을 범하고 있다. 정의란 미군범죄자를 미군 배심원이 평결하는 데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미군범죄자가 정당한 댓가를 치를 때 발생한다. 사람을 다치거나 죽게 했으면 응당한 배상을 해야 하는 것은 미국과 한국을 넘어선 정의이다.
여기서 정의 얘기를 하다가 복거일은 살며서 다른 말로 넘어간다.
미군의 주둔이 우리 군사력을 보강할 뿐 아니라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억제하므로 미군과 우리 사이의 그런 간격은 반드시 메워져야 한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그 일은 정부만이 할 수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전략을 위해서도 정부는 이런 부분에서 전략적인 대처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위 말의 이념적 상식적 판단에 앞서, 복거일은 정의의 문화적 차이를 말하다가 왜 갑자기 미군 주둔의 필요성을 말하는 것일까? 미군의 주둔은 한반도 전쟁을 억제하기 때문에 필요하다. 그런데 이들의 정의와 우리의 정의는 문화적 차이가 있다. 그 사이를 정부가 메꿔야 한다, 이런 말이다. 다시 말하면 '미군이 있어야 한반도가 편하니까, 정부는 미군들이 저지르고 다니는 범죄 뒷바라지에 힘써라.'는 얘기다. 이런 엽기적인 얘길 복거일은 버젓이 신문 사설에 써댄다. 더 보시라.
당장 필요한 것은 피해를 본 우리 시민들에게 우리 사회의 기준으로 합당한 물질적, 심리적 보상과 미군이 제시하는 보상 사이의 차액을 우리 정부가 제공하는 일이 아닐까. 정부는 그렇게 하는 데 필요한 법적, 행정적 조치들을 서둘러 취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상황을 차분하고 자세하게 우리 시민들에게 설명해서 격앙된 감정을 가라앉혀야 한다. 우리가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것들은 어디까지이고, 현실적으로 이루기 어려운 것은 무엇인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는 것도 중요하다. 예컨대, 작전 중 저지른 과실 범죄에 대해 우리 민간 법정이 관할권을 갖도록 행정협정을 바꾸라는 주장은 다른 나라의 사례와 비교해 볼 때 근거도 약하고 현실적으로 가능할 것 같지도 않다.
큰일이다. 이 추운 날씨에 화염병 던지며 시위하는 한총련들, 시민단체, 100만명이 넘는 시민들의 서명이 '보상'을 받기 위해서였단 말인가? 반미 감정은 정의가 아니면 덮기 불가능하다.
복거일은 지금 '우리가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것들'을 말한다. 그 노력들이 지금 돌출되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인가? 이 추운 날씨에 장난하는 걸로 보이는가? 물론 수많은 반미 보이코트들은 그 자체만으로 끝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바위로 날아간 계란'에 의해 그나마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모른단 말인가?
게다가, 복거일이 주장하는 정부의 법적, 행정적 조치는 가능해 보이지도 않다. 미국에 주장하기는 씨알도 먹히지 않고, 시민들의 분노는 머리끝까지 올라 있다. 이 와중에 복거일은 '울나라 지키러 와주신 미군들 혹시 다칠까 봐' 근심한다.
미군부대에 화염병들이 투척되는 상황인데도 정부당국이 침묵하는 것은 걱정스러운 일이다. 우리 시민들의 아픈 마음을 달래는 한편 미군 병사들의 불안감도 가라앉혀야 한다. 반미 감정이 이미 위험 수위를 넘었다고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시하는 미군 당국을 다독거리는 조치도 취해야 하는 것이다. 외국 병사들과 자국 시민들이 부닥쳤을 때 정부가 설자리는 바로 그 둘 사이다.
조선일보에도 실리지 않을 이런 내용의 칼럼은 현재 동아일보 편집진들의 정신분열 상태를 짐작케 해준다. 복거일의 말이 전적으로 부당한 것은 아니다. 지금 당장 미군들을 죄다 내쫓을 수는 없다면 정부가 중재를 설 수 있다. 그러나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문화적 차이'를 이야기하며 적절한 배상(보상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보상은 합법적인 일에 대한 손해에 쓰는 말이다. 배상이 적합하다)을 받도록 하라는 말은 지식인이라는 사람이 할 말이 아니다.
잘못이 있다면, 그것은 돈이 아니라 정의로 보상해야 한다. 그것은 국가의 할 일이다. 그것이 제대로 행해지지 못한다면 시민들은 당연히 자기의 권리를 수호하기 위해 여러가지 종류의 실력을 행사할 수 있다. 여기다 대고 문화적 차이를 역설하는 복거일 같은 지식인은, 이문열에 이어 리콜해야 할 필수적인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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