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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전화를 했습니다. 부모님께 이번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에게 한 표 찍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부모님뿐만 아니라 친척들과 외가 식구들에게도 전화를 걸어 노무현 후보 지지를 요청했습니다. 예상 외로 다들 선선히 그렇게 하시겠다고 대답해주셨습니다.
거기에 힘을 얻어 친구들에게도 전화를 걸었습니다. 어릴 적 고향 친구에서부터, 학교 친구, 회사일로 알게 된 친구들에게까지 손가는 대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다들 나름대로 지지하는 후보가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누구라도 좋으니 꼭 투표하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전화를 받은 친구들은 저더러 왜 노무현을 지지하느냐고 되묻더군요. 노무현 후보는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는 정치인이라 지지한다고만 대답했습니다. 전화로 다하지 못했던 대답을 이제 글로 대신하려고 합니다.
부산역과 그 뒤로 펼쳐진 바다까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부산 영주동 달동네가 제 고향입니다. 어릴 때 태종대를 끼고 있는 영도로 이사를 해서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으며, 부모님은 지금도 그곳에 살고 계십니다.
전 부산을 사랑합니다. 고등학교 시절 영도에서 문현동, 수영만을 지나 해운대에 있는 학교까지 버스를 타고 1시간 넘게 통학을 했던 그 길에 이제 지하철이 놓여 제 후배들은 버스대신 지하철 타고 등교한다는 소식이 반가웠고, 아시안게임이 부산에서 성공적으로 치러졌다는 소식에 감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영화 <친구>를 보는 동안에도 잘 생긴 주인공들의 모습보다는 뒤로 보이는 자갈치 시장과 부산 시내의 정경이 더 눈에 들어오는 것을 경험하고는 고향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내가 태어난 도시, 내가 태어난 마을에 대한 정을 지역감정이라 하지 않습니다.
지역감정이란 내가 사는 곳에 대한 애정이 아닌 다른 지역 사람들에 대한 미움과 시기를 뜻하는 것입니다. '저 지역 사람들 때문에 우리 지역 사람들이 고생하는 거다' 하는 식의 이간질이 바로 지역감정인 것입니다.
전 지역감정의 피해자입니다. 제 아내는 전주가 고향인데, 장모님께서 저희의 결혼을 반대하셨습니다. 부산 사람을 사위로 삼을 수 없어서가 아니라, 이십년 넘게 곱게만 키워온 막내 딸을 부산에 시집 보낼 수 없기 때문이라 하셨습니다. 행여 전라도 사람이라 구박하거나 미워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신 것입니다.
저희 부모님이 절대 지역감정 따위에 휘둘리실 분이 아니라는 걸 이해 시키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부산에 시집 보내는 것이 아니라 부산 사위를 받아 들인다고 생각을 하시라 부탁 드렸습니다. 부산 사람이라고 해서 특별히 미워하시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여쭈었습니다. 결국 결혼 승낙을 받았고, 일곱 해가 넘도록 함께 살면서 저와 아내의 고향때문에 서로 얼굴을 붉힌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두 명의 대통령 후보가 있습니다. 한 사람은 지난 5년 동안 정치적으로 불리한 입장에만 서면 대구로, 부산으로 달려가서 호남대통령때문에 핍박을 받는다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습니다. 또 한 사람은 지역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사람을 보고 제대로 평가해 달라며 부산에서 4번이나 출마해서 4번 다 떨어졌습니다. 그러고도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며 부산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노무현 후보가 단지 같은 고향 사람이라서 지지하는 게 아닙니다. 그는 부산 사람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았습니다. 원망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부산 사람들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 못하고 제대로 된 평가를 받겠다며 부산 사람들 앞에 대통령 후보의 자격으로 섰습니다. 부산 사람인 저는 도저히 그를 거부할 수가 없습니다.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부산 사람인 저도 환호하고, 전주 사람인 제 아내도 만세를 부를 수 있습니다. 영남에서도, 호남에서도 같은 크기의 박수가 나올 수 있을 겁니다. 지역감정을 이용해 정치생명을 이어 온 이들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인 것입니다.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는 두 번째 이유는 그가 반성할 줄 아는 정치인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동아일보에 실린 노무현 후보의 '인생 10대 뉴스'라는 기사 중 일부입니다.
노 후보는 '인생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부끄러운 기억'을 7번째 뉴스에 올렸다. 78년 변호사로 갓 개업했을 때 한 중년 여자가 사기 혐의로 구속된 남편의 사건을 의뢰하며 수임료로 60만원을 냈다. 그 여자는 다음날 "피해자와 합의가 됐으니 돈을 돌려달라"고 했지만, 당시 사정이 어려웠던 노 후보는 "내가 당신 남편 접견까지 다녀왔으니 돌려줄 수 없다"며 딱 잡아뗐다.
노 후보는 94년 발간된 자서전 '여보, 나 좀 도와줘' 첫 머리에 이 일화를 소개하며 "그 아주머니가 사무실을 떠나며 내게 던졌던 '변호사는 본래 그렇게 해서 먹고 삽니까'라는 말은 지금까지도 내 가슴 속에서 메아리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인생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부끄러운 기억'을 굳이 책에 기록한 것은 그가 이 사건을 통해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인 것입니다. 노무현 후보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친 사례는 또 있습니다.
'나는 견딜 수 없는 초조감과 불안감에 아내에게 손찌검까지 했다.'
한나라당 남경필 대변인이 수원 유세에서 청중들에게 읽어 준 노무현 후보의 자서전 내용 중 일부입니다. (반성하겠다고 쓴 내용을 가지고 트집을 잡는 남경필의 태도를 보며 절망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책에는 손찌검뿐만 아니라 여성에 대한 그릇된 가치관을 갖고 있었음을 고백하는 내용도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노무현 후보가 이처럼 상대당으로부터 공격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내용을 왜 스스로 책에 기록했을까요. 그것은 가슴 깊이 뉘우치며, 반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후보는 같은 책에서 "사회운동을 시작하면서부터 나의 여성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나 아내에 대한 태도가 전혀 달라졌다. 사실 나는 이 말을 하기 위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숨기고 싶은 이야기들을 털어놓은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노무현 후보가 권양숙씨와의 결혼을 '인생10대 뉴스'의 첫번째 뉴스로 꼽고, "아내를 버려야 대통령이 될 수 있다면 기꺼이 대통령을 관두겠다!"고 말할 수 있게 된 것도 그 전까지의 그릇된 여성관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이루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 삶을 뒤돌아 보더라도 지워버리고 싶은 부끄러운 기억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전 그 기억들을 애써 지우며 살고 있지만 노무현 후보는 오히려 되새기며 반성의 계기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노무현 후보는 제가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정치인입니다.
노무현 후보는 제가 제 아이들에게 거리낌없이 소개할 수 있는 유일한 정치인입니다. 이것이 제가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는 세 번째 이유입니다.
두 딸아이를 키우는 부모 된 입장에서 늘 저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마이뉴스에 제가 쓴 기사에는 "아이들이 살 만한 세상을 만드는 일이라면 무엇이라도 하고 싶다"는 다짐이 항상 붙어 있습니다. 그건 제 자신에 대한 채찍입니다.)
만일 이회창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우리 아이들의 삶에 더 큰 도움이 된다는 판단을 했다면 전 주저 없이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을 것입니다. 이 나라의 경제발전, 남북통일, 민주화 등등 그 어떤 것보다도 저는 제 아이들의 미래에 더 큰 가치가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3김정치라 불리는 구태 속에서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발견할 수는 없었습니다. 제 눈에 비친 이회창 후보는 김씨가 아니라는 것 말고는 그 어느 부분에서 3김정치와 다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에게 정치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금기 중의 금기였습니다. 저 맑은 아이들에게 어떻게 정치 같은 더럽고 추한 것을 보여 줄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저와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 대부분의 생각이었습니다. 지난 5년간 이회창 후보가 보여 준 모습 역시 실망스럽긴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노무현 후보 때문에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노무현 후보의 유세장에는 부모들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나옵니다.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역사 앞에 당당하기 때문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돼지저금통에 동전을 모으면서 아이들에게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기도 합니다. 정치가 더럽기만 한 것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도 있음을 믿음, 깨끗하고 정정당당한 정치가 가능하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살 만한 세상'은 그럴 듯한 보육정책을 내 놓는 후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깨끗한 정치를 몸으로 보여주는 후보만이 만들 수 있습니다. 아이들 앞에서도 부끄럽지 않을 수 있는 후보만이 만들 수 있습니다.
지난 국민경선때 노무현 후보는 지지자들이 유세장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오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희망을 줘야 하는데, 아이들에게 좋은 모습만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게 힘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아이들의 데리고 나오는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까봐 걱정하는 노무현 후보의 모습에 지지자들은 더 더욱 신뢰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대통령이 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새로운 정치, 동서통합을 이루는 정치,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는 정치, 아이들 앞에 부끄럽지 않은 정치를 하는 게 우선인 정치인이 바로 노무현 후보인 것입니다.
전 노무현 후보를 알게 된 것이 너무 기쁩니다. 최악의 상황을 피해 차악을 선택해야 했던 지난 몇 번의 대통령 선거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최선의 선택을 위해 투표장으로 향할 수 있으니까요. 우리 부부가 함께 환호할 수 있는 후보이자, 우리 아이들에게 기쁘게 소개할 수 있는 그런 후보가 지금 우리 눈 앞에 서 있습니다.
12월 19일, 투표소에서 여러분을 만나고 싶습니다. 그날 이후에는 노무현 후보가 아닌 노무현 대통령을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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