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시위 지도부와 시위 참가자들께

검토 완료

이병철(cheori27)등록 2002.12.23 11:41

미대사관으로 행진하려는 시위대를 경찰이 강경하게 막아서고 있다. ⓒ 이병철

우선, 이번 집회와 시위는 평화적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시기 바란다. 그러므로 과격폭력시위라는 것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크고 작은 불상사가 발생하는 것은 지도부의 통제능력 부족과 참가자들이 지도부의 지침을 무시하거나 시위 본래의 목적을 잠시 잊고 감정을 통제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번 시위 같은 경우, 경찰이 지난번보다 더 적극적으로 막았는데, 만약의 상황에 대처하도록 이끌지 못한 지도부와 집회참가 경험이 적은 참가자들의 감정적인 행동이 곳곳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다.

교보문고 앞에서 시작된 행진이 경찰과 대치하며 밀고 밀리는 힘겨루기 와중에 오른쪽 대열이 뚫렸다. 이때 참가자들은 경찰을 밀어낸 경계선을 유지하며 신속히 대사관쪽으로 이동해야 했다. 경찰을 밀면서 뚫어낸 선은 대체로 힘으로 유지해야 하는데, 이 역할을 한 사람들은 일단 길이 뚫리면 경찰과 감정적인 대응을 자제하며 시위대의 본래 목적인 '행진'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이날 이 뚫린 길은 경찰과 사소한 실랑이를 하는 사람들로 '길'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일부 청년들은 전경 한두 명과 욕설을 주고받으며 무모한 감정다툼을 벌였고, 그러는 사이 대열의 이동이 지체되었다.

또 그 실랑이를 지켜보던 다른 시민들 중에서 한 나이드신 아주머니께서 울분을 참지 못하고 어린 전경들을 나무라는 상황이 벌어졌는데, 격무에 시달리며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피곤하고 어린 전경들은 그 아주머니에게 욕설을 하며 대드는 상황으로 악화되기까지 했다. 결국 다른 몇몇이 이 상황을 정리하느라 애를 써야 했다.

이어 경찰저지선이 정통부건물 앞으로 늦춰지면서 다시 대치상황이 이어졌다. 역시 일부 격앙된 시위자들의 무모한 실랑이가 이어졌다. 대열이 정비되지 못한 상태에서 개별적인 감정대립으로 폭력사태 직전까지 가는 충돌들이 있었다. 경찰의 과잉진압을 유도했다고 말하진 않겠다.

다만, 폭력사태는 모두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 어린 여학생들, 어린이들이 분노와 승리의 다짐으로 함께 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에게 경찰에 대한 분노만을 심어주게 되는 상황이 되어서는 안 된다. 뒤늦게 지도부가 도착해 대열을 정비하며 지하도 등을 통해 미대사관으로 우회할 것을 주문했는데, 지도부의 늑장대응 또는 미비함이 아쉬운 대목이었다.

이어 세종문화회관쪽으로 우회한 시위대쪽에서도 경찰의 과잉진압 상황이 연속된 것을 메인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인간띠 잇기 행사를 실현했다는 승리감을 안고 집회가 정리되었지만, 순수한 열정으로 참가한 시위대와 명령에 복종할 수밖에 없는 전경들 사이의 감정적 충돌을 자제하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해 줄, 평화시위를 지켜낼 '진행요원'을 주최측에서 준비하지 못한 점은 유감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 목적을 가진 전경들과의 감정적인 대응을 일반 참가자들이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는 점이다. 시위의 본래 목적인 '평화행진'은 그냥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싸워서' 얻어내야 하는 것이다. 그 싸움의 대상은 전경들의 '물리력'이지 '전경 그 자체'가 아니다.

그러므로 시위 참가자들은 본래 목적에 충실하면서 그 과정에서 부딪치는 '장애물'을 감정적 대상으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전경들에 대해서만큼은 분노가 아닌 측은지심으로 대할 때 성숙된 평화시위를 완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백만, 아니 수백만의 촛불바다가 미대사관을 침몰시키기 위해 다시 그곳에 일렁일 것이다. 지도부는 오늘의 고언을 책임 있는 자세로 들어주시리라 믿는다. 또한 오늘 경찰의 과잉진압을 겪은 참가자들께서 분노와 두려움으로 피하지 않고, 더욱 성숙한 자세로 더 많은 참가자들을 이끌고 그곳에서 함께 하실 것으로 믿는다.
ⓒ 2007 OhmyNews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