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녀는 참봉을 피해 영복과 도망하고/ 허씨는 길을 떠나는데...

진도아리랑 창극 '저 달이 지기 전에'

검토 완료

김문호(newskmh)등록 2003.01.04 08:30

작가 차범석 한국예술원 회장 ⓒ 김문호

제1장
애닮은 육자배기가 연주되며 무대가 막을 올리자 마을 타작마당이 있고 해묵은 당산나무가 중앙에 서있다. 그 아래 넓은 공터는 동네 쉼터이다. 동네사람들이 모여 사당패를 기다린다. 사당패가 풍물을 앞세워 등장하자 일을 하다말고 호미를 든 채로 나온 사람, 차분히 앉아 새끼를 꼬며 기다리는 사람 각양각색이다. 뒤늦게 순녀와 공례가 들어온다. 사당패의 한판 굿에 온 동네가 함께 어우러진다.

제2장
외따로 떨어져 있는 초가집 한 채 바로 순녀의 집이다.
뻐꾹새 우는 저녁이 되자 순녀의 아버지 허씨가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온다. 방문을 열어보니 순녀가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허씨가 돌아온 순녀를 다그치는데 정 참봉과 어덕이네가 나타나 딸을 정 참봉 첩으로 달라하자 허씨는 '안 된다'고 노발대발하지만 처지가 너무나 가난하다. 그러나 정 참봉은 순녀를 차지하겠다고 벼른다. 순녀의 신세타령이 이어진다.

제3장
사당패 영복이는 뻐꾸기 소리로 야밤에 순녀를 불러내 사랑을 속삭인다. 허씨도 남의 첩살이보다는 사당패에 들어가 명창이 되는 것이 좋다며 순녀를 떠나보내기로 결심한다.

제4장
정 참봉은 순녀 생각에 안절부절못한다. 이 때 어덕이네가 들어오고 머슴들이 사당패를 잡아오나 순녀 소식은 알 길이 없다. 허씨의 외로움과 그리움에 녹아나는 한 타령은 이어지고...허씨는 집을 떠난다. 마을 사람들은 순녀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에 목이 메인다.

제5장
허씨가 떠난 순녀의 허름한 집, 뻐꾸기는 예전처럼 울어댄다. 동네 사람들이 길을 가다가 고갯길이 힘들어 주저앉는데 순녀의 집에서 낮선 나그네가 나온다. 허씨다. 그러나 동네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한다.

제6장
정참봉 집은 분주하다. 참봉의 칠순 잔칫날을 맞았기 때문이다.
사당패가 도착하여 한판 굿을 펼치는데 순녀는 사당패에 끼여 있다. 사당패와 함께 소리를 익혀 전국 최고의 명창이 되어 고향 땅을 밟은 것이다. 순녀가 등장하여 노래를 부르자 허씨는 먼발치서 이를 지켜보다가 먼길을 떠나고 소리는 중모리에서 점점 거센 잦은모리로 바뀌고 잔치에 흥이 난 동네사람들은 덩실덩실 춤을 춘다.

연출을 맡은 목포시립연극단 상임연출 김창일씨 ⓒ 김문호

약60분간의 공연은 막을 내린다. 문화관광부는 지방문화 육성을 위해 예술단체나 지방자치단체에 매년 무대공연작품을 올릴 수 있도록 예산을 지원한다. 진도군은 3400만원(국비와 군 각50%)의 비교적 적은 예산과 4개월의 짧은 준비기간으로 이 정도의 공연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주민들이 민요에 대한 감성 등 풍성한 인적자원이 저변에 깔려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고 본다.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혼신의 힘을 다해 열연한 단원들의 노고를 치하하면서 지방예술 발전을 위해 몇 마디 하고자 한다.

이번 작품은 대본을 쓴 차범석 한국예술원 회장의 진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진도아리랑은 젊은 남편의 죽음과 시집살이, 그리고 이어지는 삶의 고단함에도 불구하고 한을 흥으로 승화시키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당시 진도에 존재하지도 않은 사당패가 중심 내용으로 사당패 영복이와 순녀가 연애를 하고 정 참봉의 유혹을 피해 도망가는 설정은 보편적인 창극의 소재로는 적합할지 모르나 어쩐지 진도아리랑 창극으로서는 무리한 적용이었다.

진도에서 공연된 민요창작극이 이번으로 처음이 아닌 두 번째이다. 지난 2000년 진도문화원에 엄청난 예산을 지원하여 약 8개월만에 무대에 올린 '진도에 또 하나 고려있었네'라는 공연이었다. 1270년경 고려정부가 몽고에 항복하자 삼별초는 이에 불복하고 자주정부를 세워 강화도를 출발 진도에서 2년여 동안 남서 해안을 장악하며 자주정부를 세우나 여몽 연합군에 의해 패망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취지와 목적은 자주권 회복을 외치는 현실과 맞아 떨어져 언론의 대대적인 각광을 받아 한국예술원에서 앙코르공연을 갖기도 했다. 지방언론은 진도민속 예술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유보한 채 일방적으로 용비어천가를 불러댔다. 현지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일상생활의 어우러짐은 정말 아니었다. 혹평하자면 부끄럽지만 진도예술인들은 연출가 명함에 경력을 하나 추가해주는 들러리에 불과했다. 출연자들이 단기간 연습으로 소리도 재대로 소화하지 못해 라이브무대가 아닌 첨단 장비에 의지한 립싱크였으니 말이다.

이번 아리랑 창극의 대본을 차 회장에게 부탁한 이면에는 '진도에 또 하나 고려 있었네' 공연에서 많은 예산을 사용하여 부담을 가진 실무진들이 중앙무대에서 재 공연을 갖게 해준 보답이 아니었나하는 의심을 갖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진도아리랑 창극 '저 달이 지기 전에' 공연을 통해 진도민속의 변화 가능성을 충분히 확인했다. 행정기관의 논공행상식 나눠먹기나 일회성 행사가 아닌 여유와 충분한 시간을 갖고 준비한다면 말이다.
ⓒ 2007 OhmyNews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