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와 백기완' 히딩크를 떠나보내며

다시 읽는 불후의 감동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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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하현(hhpaik)등록 2003.01.15 08:58
히딩크가 떠났다. 그의 옛 고향인 네델란드의 아인트호벤의 감독직을 맡기 위해 일요일에 (2002.07.07) 떠났다. 인천 공항에서의 출국 인사말은 'Good bye' 대신에 'Not so long'이란 표현으로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자신의 희원을 밝혔다.

그런데 TV의 뉴스 화면에 모습을 드러낸 그의 옆에는 촌로같은 한 노인네가 서 있었다. '누구일까?' 하는 호기심으로 자세히 살펴보니, 그 이는 흰 바지 저고리를 입고, 이마는 세월의 주름살이 깊으며 머리는 반백의 덮수라 평범하게 보이는 노인이었지만 그의 눈빛은 맑아 아름다우며 의기 있었다. '누구일까?' 한참 동안 의아히 생각하노라니 안 사람이 "백기완씨입니다."라고 일러주었다. 그 분은 백기완씨였다. 1992년 대통령 선거 당시 민중의 후보로 대선에 출마하셨던 민중운동가 백기완씨였다.

'아니, 백기완씨께서 그 곳에 무슨 연유로...?'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한 평생 싸우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님을 위한 행진곡>

이 노랫말을 사랑한 김종률이 곡을 붙인 것으로, 그 가사는 백기완씨의 '묏비나리'의 구절을 작시한 것인데,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소외된 농민과 노동자의 투쟁운동에서는 반드시 선창되었던 노래로 백기완씨가 한 평생 어떠한 삶을 살아왔던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할 것이다. 위의 노랫말에서도 드러나듯 어쩌면 그는 '민족 민주 민중' 운동을 통하여 해방과 통일의 참된 세상을 실현하고자 매진한 '마지막 남은 재야운동의 산 역사'라 여겨진다.

1946년, 14살의 백기완을 무척이나 사랑했던 백범 선생께서는 다음과 같은 글을 주시며 축복하셨다 한다.

"눈이 허옇게 내린 들판을 가더라도 결코 발걸음을 흐트러뜨리지 말거라. 왜냐하면 오늘 네가 가는 길은 뒤에 오는 사람들의 이정표가 되느니라." <서산대사의 화두>

일제 때 '돌베게'를 베고 자며 독립운동을 하시던 장준하 선생(50-60년대 『사상계』의 발행인)을 형으로 생각하며 따르며 민족주의의 정신을 익히던 백기완씨는 민주민족운동연합, 전국노동조합협의회, 백범사상연구소의 활동을 하셨고 최근에는 통일문제연구소의 활동을 통하여 진정한 민족주의의 실현을 이루려 하시고 또 과정에서 수많은 고초를 겪으셨다. 그리고 이러한 삶과 의식은 『항일민족론』,『자주 고름 입에 물고 옥색 치마 휘날리며』,『장산곶 매 이야기』 그리고 『벼랑을 거머쥔 솔 뿌리여』등의 책자로 사람의 소리가 되어 우리 민족에게 깨우침을 전하고 계신다.

님께서 그토록이나 사랑했던 노래인 민요 '임진강 뱃사공'을 들어본다면 그가 지향하는 삶의 세계가 어떠한 것인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임진강 뱃사공 치떨린 노여움. 도둑 맞은 내 나라 찾으러 가는데, 이 땅이 내 나라인데 뉘라서 짓밟는가. 불 밝히세, 불 밝히세. 온 몸으로 불 밝히세. 막막하고 답답한 세상 온 몸으로 불 밝히세. 에야 디야, 에헤야 디야. 살았을 적 공덕 쌓아 해방 세상 통일 세상 참된 세상 이뤄보세."

그가 지향하는 삶의 세계는 억압과 구속이 없으며 증오와 질시도 없는 참된 세상으로 밝은 햇살 쏟아지는 광명의 세계인 셈이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레어 신명이 절로 나는 세상살이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지향과 실천을 통해 살아 있는 미학을 구축한 인물이리라. 님께서는 그러한 세계의 모습을 우리의 풍물굿에서 찾았었다.

"...세계에 내세울 예술, 그 어느 민족 누구에게나 그 민족을 대표하는 문화의 얼굴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에게는 무엇이 있을까? 나는 그것을 풍물이라고 본다....<중략>...사람들은 그네들 최종목표, 그 염원의 세계를 극적으로 재창조하며 갖은 풍물과 재비들을 앞세우고 모였던 사람들이 모두 굿쟁이가 되어 한바탕 밟아대며 제치고 휘저었던 것이다..."(『민족과 굿』에서)

모두가 해방되고 통일되어 신명나게 생명을 펼치는 참된 세상의 모습으로 살아 역동하고 약동하는 미학의 세계이다. 이러한 세계의 실현을 위해 님께서는 1992년 민중의 후보로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신 바 있는데 그 웅지는 펼쳐지지 못하고 말았다.

최근 님께서는 민족주의에 입각한 자신답게 5000년 한 민족사에 입각할 때 지금 이 시대는 분단시대이며 우리에게 주어진 역사적 과제는 통일이며 이를 통해 우리 민족의 신명나는 삶은 가능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통일 대화 마당- 분단 시대를 온 몸으로 살아온 9인의 이야기) 그렇게 때문에 '민족혼으로 살아, 이제는 통일이 되기 전에 죽을 수는 없다'는 절규가 가슴에 맺힌다. 수 천년의 가난과 무지와 억압과 고난에 찌들린 수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에게 자유와 신명의 생명력의 바람을 심어준 이 시대의 선구자이다.

히딩크와 백기완의 만남은 참으로 아름다웠다고 한다.

통일문제연구소장인 백기완씨께서는 '2002 월드컵- 한민족의 신바람 일으키는 잔치로'(2002.03.01)이란 광주방송의 대담프로에 2002 월드컵 조직위원장인 정몽준씨와 함께 출연한 것을 계기로 월드컵대회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기실 현대의 실의와 낙담 그리고 허무와 절망에 움추려든 이 민족에게 신명으로 희망을 심어주고자 한 님의 의도가 작용했으리라 여겨진다. 이를 계기로 지난 4월 23일 2002 한일 월드컵 한국 대표팀 감독인 히딩크는 대회를 앞두고 선수들의 정신강화를 위해 백기완씨를 초청하여 강연을 들었다. 그 강연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축구를 즐겨라.
둘째, 만판의 경지, 즉 무아의 경지에서 시합에 임하라.
셋째, 생산적 방법으로 비생산적인 상대를 대하라.
넷째, (한번도 축구선수 생활을 해본 적은 없지만 길거리의 돌부리를 차며 가슴 속의 한을 풀었던 것처럼) 우리 겨레의 가슴에 맺히고 온 인류의 가슴에 맺힌 한을 내지르는 공 차기를 하라.

통역 헤드폰을 끼고 열중하던 히딩크는 일전 프랑스와의 시범경기에서 0 : 5로 패배하여 온 세상의 욕지꺼리를 들으면서도 열심히 뛰었던 선수들에게 한 말 '축구를 즐겨라'라고 강화하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 신명나는 춤꾼이 될 때 그는 공을 찬다고 할 수 있지'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실로 감동이 컸었던 모양이었다. 또한 이 강연은 우리의 대표팀에게도 커다란 격려가 된 것으로 회상되었다.

2002 월드컵 대회가 아름답게 끝나고 또 대표팀과의 계약이 만료되어 히딩크는 과거의 고향인 고국 홀랜드로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떠나기 전날 밤 홀로 책상머리에 앉아 지난 1년여의 한국생활을 정리하고 있었다. 사람살이는 사람과 사람의 일이라, 떠나기 전 다시 꼭 한번 만나 보고 싶은 아름다운 영혼을 떠올려보니 그 분이 바로 백기완씨였던 것이다. 하지만 공식, 비공식의 스케줄로 바쁜 그로서는 백기완씨를 다시금 만날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한 편의 편지글을 남겼다. '실로 존경하는 백기완 선생님...(하략)' 월드컵 축전에서 꽹과리를 울리며 굿거리 장단을 맞출 정도로 한국에 동화된 그가 실로 존경하는 아름다운 영혼께 편지글로 하직인사를 대신한다는 것은 용납될 수 없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시간이 허락된다면 꼭 뵙고 싶다는 뜻을 전하기 위해서 전화기를 들었다. 수화기로 백기완씨의 어진 목소리가 들렸다. '이 민족에게 희망과 자긍심을 심어 주시어 신명나는 삶을 실현하게 하신 당신께서...' 그것으로 서로의 믿음과 존경은 확인된 셈이었다.

다음날 히딩크는 정들었던 한국 땅을 떠난다는 것을 못내 아쉬워하며 인천 공항의 플랫홈을 들어서고 있었다. 그 때 그의 손을 다소곳이 잡는 부드러운 손길이 있었다. 다름 아닌 백기완씨였다. 아무런 말도 없이 5분 동안 손을 잡고 서로의 웃음 띤 눈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름하여 염화미소 그대로였다. 그리고는 짤막한 출국인사로 'Good bye' 대신에 'Not so long'이란 표현으로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자신의 희원을 밝혔다. 그리고 히딩크는 떠났다. 참으로 아름다운 헤어짐이었다.

우리는 만날 때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한용운. '님의 침묵'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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