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의 모성애

검토 완료

최한수(monera)등록 2003.01.15 11:18
'꿩 먹고 알 먹고’란 속담이 있다.

꿩은 알을 품을 땐 산불이 나도 꼼짝하지 않고 둥지를 지킨다. 꿩이 알을 낳아 품는 시기인 4-5월에는 유난히 산불이 많다. 이 시기는 우리 조상들에게는 '보릿고개’라 하여 배고픈 시기였다.

배고픈 사람이 불난 자리에 고사리나 뜯어먹어 볼까 하고 산에 오르다 '통닭’한 마리를 발견하게 된다. - 사실 꿩이 구워진 것이다 - 이게 왠 횡재냐고 덥석 잡아 올리니 그 밑에는 삶은 달걀이 20여 개.

오늘 저녁은 온 가족이 오랜만에 배부르게 잠을 청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만 보더라도 꿩은 알을 품다가 불에 타 죽을 수 있을 정도의 모성애를 가졌다.

하긴 사람들도 불난 집에 자식들 놔두고 혼자 뛰어 나오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동물 중 모성애가 가장 강한 것은 꿩이라 한다.

그러나 동물에겐 감정이 없다고들 한다. 올빼미, 수리부엉이 같은 육식성 동물들은 어미가 새끼들에게 쥐를 잡아다 둥지에 넣어주면 새끼들이 그것을 뜯어먹는다.

아직 어려서 그런지 감정이 없어서 그런지 새끼들은 자기 몸에 닿은 차가운 시체가 있으면 먹이로 생각하기 때문에 형제 중 누가 하나 죽어도 뜯어먹어 버린다.

한달 여 동안 몸 바쳐 키운 자식들이지만 어미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때가 되면 둥지를 떠나버리고, 어미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일상생활로 돌아간다.

인간으로 상상하기 힘든 상황이지만 동물들은 그게 자연스런 것이다. 인간만이 자식에게 ‘孝’를 요구하고 있다.

동물은 자식을 품고 감싸면서 보호를 하지만, 식물은 전혀 다른 방식의 모성애를 가지고 있다.

식물은 땅에 뿌리를 내리고 고착생활을 하기 때문에 자식 농사 잘 지었다고 감싸고 있다간 부모 자식간에 싸움이 일어나게 된다. 부모 가까운데 씨앗이 떨어지게 되면 씨앗이 싹을 틔우는데도 문제가 있고, 싹을 틔웠다 하더라도 부모가 이미 자리 잡고 있는 땅에 부리를 내려 자리 잡기가 힘들다.

뿌리를 내려 자리를 잡더라도 나중에 햇볕을 받는 문제에서 싸움이 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식물은 사랑스런 자식들을 되도록 멀리 멀리 보내려 한다. 단풍나무처럼 날개를 달아 바람에 실어보내거나, 민들레처럼 가벼울 털을 달아 주기도 한다.

도깨비바늘, 도꼬마리는 동물의 털에 잘 붙어가도록 고성능 찍찍이를 달아준다. 어떻게 보면 부모가 자기 살려고 자식들을 멀리 내치는 것 같지만, 자식을 멀리 보내는 부모는 홀로된 자식들을 위해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언제, 어디서 싹을 틔워야 하는지, 온도, 습도는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부모의 노하우를 유전자에 담아 씨앗에 함께 넣어 주기 때문에 씨앗의 생존이 가능하다. 이처럼 생물들은 신비스러울 만큼의 모성애를 가지고 있다.

과연 인간은 어떠한가? 인간도 생물에 뒤지지 않을 만큼의 모성애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모성애에 관하여 방법론 적인 면에서 따져 봐야할 게 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이 모성애를 가진 이유는 자손의 번식을 위해서이다. 잘 낳아, 잘 길러, 성공시키기 위해서이다. 동·식물의 성공은 번식이며 종족유지 즉 우수한 유전자를 유지하는 것이다.

인간이 말하는 성공의 의미는 약간 차이가 있겠지만 인간도 지구에 살고 있는 한 종류의 생물인 점을 감안한다면 마찬가지 일 것이다. 생물학적 측면에서의 인간의 성공…. 결국 인간의 종족유지, 인간의 우수한 유전자의 영속성에 있는데…. 과연 현재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성애를 가지고 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가 ?

인간은 자식을 아끼고 사랑하면서도 자식들이 살아가야 할 지구를 더럽히고 있다. 환경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지구의 지배자를 자칭하는 인간으로서 진정한 자식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은 환경보호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우리의 자식들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아 나갈 수 있을 것이다.
ⓒ 2007 OhmyNews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