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권의 존재 이유

대중의 선택과 시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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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선(paulus98)등록 2003.01.16 18:25
노무현 정권의 성격을 두고 논의가 무성하다. 무성한 논의 만큼이나 노무현 정권에 대한 기득권 세력의 저항도 무성하다. 김대중 정권이 진보적 성격을 지녔음에도 정치적 기반이 지역패권주의의 연장선상에 있었다고 한다면, 노무현 정권은 한국사회 비주류가 주류화 되는 사회변혁적 성격을 지녔다. 그 때문일까? 기득권 세력들의 정치적 심리적 공황이 조중동을 통해 허망하게 표출되고 있다.

자칭 보수라고 자리매김하고 있는 우리 사회 기득권 집단에게 노무현은 참으로 받아들기 힘든 존재일 것이다. 그 기득권 집단이 영남 보수파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지역패권주의를 교묘히 이용해 성장해온 호남 보수파들도 예외가 아니다. 대선 당시 민주당내의 노무현 흔들기나 '후단협'은 그러한 정서적 혼란의 표현이다.

지금 노무현 정권을 둘러싼 힘겨루기의 본질은 개혁대 보수의 싸움처럼 보이지만, 그 근저에는 영호남 패권주의 대 반지역패권주의 세력의 일대격돌이 자리잡고 있다. 50년에 걸쳐 기득권을 누려온 영호남 주류집단 대 비주류집단간의 한판 승부다. 이러한 싸움은 한 사회가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반드시 거쳐가야 할 관문이다. 사회주류의 교체... 이것이 진통의 핵심일 것이다.

그러면 세력대결이라는 엄중한 현실 속에서 탄생한 노무현 정권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기득권 세력의 부단한 도전에 물 흐르듯 무리없이 응전하여 사회를 안정시키는 방안은 무엇일까?

요약해 보면 남북문제, 재벌개혁, 노동문제 3가지다. 이 3가지 사안은 개혁과 수구, 기득권과 반기득권, 주류와 비주류 등 모든 사회세력이 충돌하는 접점에 서 있다.

먼저 남북문제다.

남북문제는 민족적 모순과 계층적 모순이 혼합되어 있다. 그러나 남북문제가 시급한 현안이 된 이유는 남한 경제의 내부적 요구와 인접국가의 경제적 이익 때문이다. IMF 이후 관치금융과 특혜금융이 거의 사라지면서 남한 경제는 자본과잉 상태에 직면하게 되었다.

현재 가계 대출 금리가 7%까지 내려와 있다. 금융자본 입장에서 5%의 금리는 영업비용을 감안하면 마지노선이라고 한다. 산업자본의 경우도 치열한 대내외적 경쟁으로 과거와 같은 독점적 초과이윤이 모두 사라졌다. 격화된 경쟁을 통해 기업의 체질은 분명 건강해 졌으나 이윤율은 현저히 낮아진 것이다.

따라서 한국 자본주의는 자본과잉과 이윤율 저하라는 전형적인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에 봉착했고 이것이 19세기였다면 무력을 통한 해외시장 개척으로 발전했을 것이다. 이러한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대·중소기업을 가리지 않고 기업들의 해외투자가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격화되는 경쟁 속에서 아직 뚜렷한 성과를 보여주고 있지 못하다.

북한 문제는 이러한 한국경제의 모순을 타개하는 유력한 대안으로 부상했다. 단기적으로는 시베리아 횡단철도 연결이라는 이익이 눈 앞에 있고, 장기적으로는 양질의 노동력과 저임금 생산기지로서, 또 약 2000만 명의 잠재력을 지닌 미지의 시장으로 떠오른 것이다. 북한을 긍정적 시장으로 보는 학자들은 북한이 21세기 마지막 자본주의 시장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노무현 정권은 민족의 교류라는 명분과 남한 경제의 새로운 시장 개척이라는 실리를 동시에 얻을 수 있는 호기를 맞았다. 시베리아 철도를 부산까지 연결하여 부동항을 획득, 제정 러시아 시절 이래의 숙원인 남진정책을 완성하려는 러시아의 강렬한 욕망, 시베리아 철도를 이용하여 물류비용을 절감하고 대륙으로 뻗어나가려는 한국과 일본기업들의 열망, 과잉자본과 생산비 상승으로 고전하는 남한기업들의 욕구 등이 복합되어 대북교류와 투자 욕구는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다. 노무현 정권은 현재 부시의 대북 강경책으로 일시 정체 상태에 빠진 남북관계에 너무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남북의 긴장상태는 일시적 현상일 뿐이고, 남북의 교류와 평화공존은 동북아 관련 국가 모두가 경제적 관점에서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이다.

대북 정책에서 노무현 정권이 해야 할 일은 사이비 보수논객들의 사소한 시비에 얽메이지 말고 과감하게 남북교류를 확대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노무현 정권의 가장 반대세력인 재벌도 우군으로 만들 수 있는 최상의 정책이 될 것이다. 남북교류의 전면적 확대는 노 정권에게 민족의 화해협력이라는 명분과 남한경제의 시장확대라는 실리를 동시에 가져다주는 가장 확실한 정책이다.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남한 사회내의 개혁세력과 경제를 틀어쥐고 있는 재벌 모두를 만족시키는 정책이 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재벌개혁이다.

재벌 개혁안을 두고 말들이 많다. 개혁대상이라는 두려움 때문인지 아니면 개혁이라는 단어에 지쳤는지 모 재벌 측 인사는 대기업은 존재해도 재벌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변하기도 한다.

재벌이라는 경제이익집단의 존재는 인간사가 그렇듯이 긍정과 부정 양면을 지닌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경제 사회적 변화가 지속되면서 재벌은 부정적 이미지와 역할을 보여주고 있고 재벌 개혁의 논의는 그래서 더욱 치열해졌다.

핵심은 재벌을 왜 그리고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 하는 내용상의 문제다. 지금까지는 출자총액규제, 상호지급 보증 규제와 같은 형식 논리를 통해 재벌을 변화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현재 한국경제에서 가장 큰 문제는 재벌의 존재가 아니라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지배하려는 데에 있다.

정상적이고 순탄한 자본주의화 과정을 걸어온 서구는 금융자본이 산업자본에게 여신의 제공 등 본래의 기능을 충실히 해 왔다. 금융자본이 제 기능을 하고 있다는 말은 이윤율의 왜곡이 일어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철저한 시장 평균이윤율을 관철시키려는 속성을 지니는 금융자본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한 자원이나 자본분배의 왜곡은 크지 않다.

그러나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지배할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산업자본의 속성은 대량생산에 의한 가격경쟁을 통해 시장에서 지배적 사업자가 되어 독점적 이윤을 노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시장의 평균이윤율이 무시되는 자본 투자가 발생한다. 이럴 경우 시장의 순기능적 역할이 왜곡되어 자원과 자본의 불균형 분배가 발생해 경제가 어려움에 빠지고 부패가 만연한다.

시장의 평균이윤율을 무시하고 전략적으로 자본을 배정하여 산업화 과정을 추진한 박정희 시절의 성장정책이 결국 한계에 부딪힌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관치금융, 특혜금융이란 금융자본의 부적절한 배분 및 자본이윤율의 왜곡을 표현한 용어다.

한국 경제가 IMF 이후 급격하게 회복된 것은 관치금융 즉 자본의 왜곡분배를 철저히 차단하고 시장논리에 따른 금융정책을 시행했기 때문이고 그로 인해 이윤율이 정상으로 회복되어 기업들의 경쟁력이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벌 개혁의 핵심은 재벌기업의 형식적 지배구조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재벌기업내의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을 분리하는 데에 있다.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이 분리되어 서로간의 역할에 충실하면 산업자본내의 기업의 수는 그다지 문제될 것이 없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입장에서 평균이윤율에 못 미치는 사업은 저절로 정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삼성생명의 상장 문제도 접근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삼성생명의 상장을 반대한다. 이건희 일가에게 엄청난 시세차익을 안겨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산업자본이 주축인 삼성으로부터 금융자본을 분리시키는데는 삼성생명의 상장은 필수불가결하다.

지금부터라도 재벌개혁의 쟁점은 형식논리에서 벗어나 자본의 논리로 풀어가야 한다.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투명성과 한국 사회 산업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다.

세 번째는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다.

현재 한국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은 57%에 이른다. IMF의 극복은 어쩌면 비정규직 노동자의 희생을 바탕으로 가능했다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비정규직의 희생은 막대했다. 비정규직의 임금수준은 정규직의 60% 미만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또한 계약직이라는 신분 때문에 생계조차 위협받고 있다. 이들의 고용구조를 안정시키고, 임금 수준을 높여서 생계를 보장하는 것이 노동계, 재계 등을 망라한 한국사회의 최대 쟁점이다.

노무현 정권이 남북문제, 외교문제 등을 아무리 잘 풀어간다 할 지라도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노무현 정권은 개혁 및 보수 세력 양자로부터 고립을 당해서 예측할 수 없는 어려움에 빠질 수도 있다.

지금까지 스케치 형식으로 노무현 정권이 해야 할 긴급한 과제를 이야기 해보았다. 결론은 이렇다. 역사에서 갈등이란 결국 기득권 세력과 기득권에 도전하는 신진세력 사이의 투쟁이다. 사회구성원 간에 분배가 순조롭고 신뢰가 형성되면 평화적으로 기득권의 이동이 이루어지고, 그렇지 못할 경우 폭력이 수반되는 데 그것이 혁명이다.

한국 사회의 경우 4·19혁명, 5·16쿠데타, 10월 유신, 10·26사태, 12·12 쿠데타, 광주항쟁, 6·10항쟁 등 몇 차례의 폭력적 절차를 거친 후 선거를 통한 민주적 절차로 지배세력의 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다.

다만 두드러진 차이가 있다면 기간의 지배세력의 교체가 지역패권주의에 기초한 기득권 세력사이의 교체라면 노무현 정권은 한국사회 변방세력이 선거를 통해 전격적으로 중앙세력으로 등장했다는 점이다. 그 과정이 너무 신속하고, 파격적이어서 모두가 어리둥절해 하고 있을 뿐이다. 대중은 왜 이러한 선택을 했을까? 학자들이 말하는 시대정신과 대중의 선택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노무현 정권의 존재 이유는 여기서 출발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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