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에 찍은 졸업 앨범 사진 ⓒ 류종수
지나온 삶을 맛으로 표현하면 나의 대학시절은 어떨까 생각해본다. 투쟁과 열정으로 가득 찬 삶에서나 맛 볼 수 있는 매운탕의 얼큰한 짜릿함은 바라지도 못할 테고. 아마도 이것저것 넣고 나름대로 열심히 끓였는데 뭔가가 빠진 것 같은 된장국의 맛이라고나 할까. 서툴렀지만 다양한 시도를 해 보는 단계였다고 애써 위안을 삼는다.
밋밋한 된장국엔 무엇이 빠진 걸까?
그러나 무엇이 빠진 걸까? 무엇이 모자랐기에 지금까지 내 국 맛이 이렇게 제대로 우러나지 못하는 걸까? 실감나지 않는 졸업에 임박해서야 절실히 내 자신에게 던지고 있는 질문이다. 그래서 아직은 무언가를 끝마쳤다기보다는 여전히 나를 찾아 떠난 여행의 어느 즈음에서 다시 지도를 펼쳐보고 있는 중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졸업생으로 후배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써야하는 이 글도 내게는 익지 않은 단감을 따는 기분처럼 성급함 마음이 앞선다. 최소한 10년은 더 내공을 쌓고 난 다음이라면 모를진대 고시를 패스한 것도, 좋은 직장을 구한 것도 못되는 내 처지에선 더욱 그렇다. 내 감상만 적기에는 그 사치스러움이 유치찬란해 질 것 같아 또한 그렇지도 못하겠다. 바라는 게 있다면 이 졸열한 글이 후배들로 하여금 나의 여정에 잠시 들러보게 하고 그래서 각자의 맛을 조리해 가는데 조금이나 분발의 계기가 됐으면 하는 욕심이다.
새내기였던 96년도는 아직 캠퍼스에 정치적 구호가 널리 메아리 치던 격동의(?) 90년대 중반이었다. 한편으론 화염병을 들고 '교문박치기'까지 벌어졌던 전투적 학생운동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던 때이기도 했다. 그 와중에 한 선배의 권유로 좌파 정치조직에 몸담게 되었고 그 해 겨울 전국에 들불처럼 번진 '노동법 개악 저지' 총파업 투쟁의 현장을 누비게 되었다. 공원이 들어서기 전의 황량한 여의도 광장을 가득 메운 분노의 함성 속에서 계급투쟁을 역설하기도 했고 명동성당으로 향하는 대열 속에선 경찰의 방패와 최루탄에 온 몸으로 전율했다. 남들처럼 책으로 이념을 무장하기도 전에 총파업이라는 거센 파도에 휩쓸리면서 소위 의식의 급성장을 겪었지 않았나 한다.
그러나 난 웃자란 수풀처럼 옹골찬 신념이 채 뿌리 내리기도 전에 허약하게 드러눕고 말았다. 내 속엔 내가 너무 많았던 것이다. 지금 남아있는 내 알량한 의식이 그때 가졌던 기억과 열정의 각인이면서도 아직도 나를 흔들며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그렇게 잘 여물지 못한 나의 신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길이 세상에서 가장 먼길이라 했다. 그때 가지 못한 가슴, 그것이 내가 끓여온 밋밋한 된장국에 넣지 못한 첫 번째 그 무엇이지 않을까 싶다.
미치도록 사랑하지 못한 것도 내 속에 빠진 그 무엇 중에 하나이리라. '삶이란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주어진 자유시간'이라고 한 어느 신부님의 말이 떠오른다. 우리 삶의 화두는 결국 사랑이지 않을까. 자유에 대한 사랑, 해방에 대한 사랑, 사람에 대한 사랑. 그 어느 것 하나 열렬히 사랑해 본 적이 없다. 자유를 만끽하고자 6개월 동안 이국을 떠돌아 보기도 했지만 자유의 향기만 맡고 돌아온 기분이다. 여유로움 속에 심리적 자유가 생겨나고 투철한 의지 속에서 정신적 자유가 내재할 수 있음을 여행 속에서 어렴풋이 느끼고 온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떠올려 보면 잘 정돈된 유럽을 눈요기로 삼는 여행보다는 하루에 6리터의 물을 마셔가며 헤매고 다녔던 페트라의 유적이 더 큰 자유를 주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아직도 사회주의 이상을 실현하고 있는 이스라엘 키부츠에서 우유를 짜는 노동의 대가로 누릴 수 있었던 지중해의 햇살은 참으로 눈부셨던 기억이 난다. 세상의 모든 색감들이 선명하게 살아나 그것을 바라보는 내 눈마저 맑아지고 정신도 깨끗해지는 기분이었다. 두발로 걸어간 만큼 새로워지는 세상. 내 생애 기분으로나마 자유를 그렇게 많이 느껴본 적은 없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한다는데 어찌 내가 자유를 안다고 감히 말하겠는가. 다만 인생을 여행처럼 살 수 있다면 자유를 좀 더 알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난 누구를 얼마나 사랑한 적이 있는가. 이 질문 또한 날 부끄럽게 한다. 나 하나 건사하지 못하다는 변명으로 사랑을 일부러 멀리하기도 했고 고백하는 용기가 모자라 그 사랑 앞에 머뭇거리기도 했던 것 같다. '연애는 신이 주신 최고의 선물', '연애는 인생의 중대한 공부이자 구원이다' 이런 말에 동의하지 않는가? 사랑한다면 고백해야 하는 것. 단순하지만 쉽지 않은 이 말이 참으로 많은 것을 아쉽게 만든다. 누군가를 미치도록 사랑해보는 것, 이것 또한 나에게 빠져있었던 것이다.
고백하는 삶
▲ 눈 내린 겨울 교정 ⓒ 류종수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에서 빨리 달리는 열차 안의 시간과 밖에서 그 열차를 바라보는 사람의 시간 흐름이 틀리다는 것을 입증했다. 마치 거북이가 느끼는 1시간과 치타가 느끼는 1시간이 다르게 다가오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의 20대도 열차를 탄 것처럼 여타의 인생보다 훨씬 빨리 지나가 버릴 것이다. 이 소중한 시간에 대상이 무엇이던지 간에 열렬히 고백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밋밋한 인생이 되지 않겠나.
과방 책장의 책들도 붉은 색의 이념서적에서 파란색의 전공서적들로 바뀌었다. 우리가 준비할 미래도 분명 변화하고 있으리라. 그래도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은 고백하려는 노력이지 아닐까 싶다. 성찰이 없는 고백은 진실하지 못하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 항상 새롭게 되뇌어 보자. 그래서 무언가를 진정으로 희구한다면 당당히 말하자. 난 이렇게 살고 싶다고. 행정인 이여! 우환에 살더라도 안락을 박차고 가슴이 부르는 대로 고백하면서 살자. 그것이 연인이 되었건, 장래의 꿈이 되었건 하늘과 맞서는 정직한 심성으로 고백하지 않고서야 어찌 풍요로운 인생을 기대하겠는가.
나 자신과 우리들에게 던지는 말이다. 강요하는 투로 들렸다면 그 만큼 내가 소중한 것을 빠뜨리고 살았다는 자괴심의 발로라고 생각해 주길 바란다. 어줍잖은 아포리즘이 난무하는 글.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의 어느 안개 낀 길 위에서 남긴 이 글이 다시 부끄러워진다. 마지막으로 이 한마디를 남긴다. 사랑하고 감동하고 희구하고 전율하며 살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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