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개 이야기]혼자 사냥하던 '노랭이'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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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호(newskmh)등록 2003.01.23 11:29

품평회에 나온 진도개 ⓒ 김문호

내가 소년시절을 보낸 진도 산월리는 김씨들이 집성촌을 이룬 평화로운 곳인데 산을 넘고 또 넘어야 마을이 있다고 해서 '산월'이란 이름을 얻었다. 보통 '산넘에'라고 불렀다. 마을 앞은 소포만의 관문인 시원한 바다요, 삼면은 잘 짜여진 요새처럼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래서 주로 대숲에 살면서 애지중지 기르던 씨암탉을 낚아채 가던 살쾡이로부터 너구리, 오소리, 족제비까지 산과 들에서 사는 짐승이 많았다. 우리 동네는 낙엽이 떨어지는 휑한 겨울이 오면 꿩, 산비둘기, 노루 사냥은 연례 행사처럼 계속됐다. 어린 우리는 사냥꾼들이 몹시 부러웠다. 진도 포수도 있었지만 육지에서 온 사냥꾼들이 더 많았다.

데리고온 사냥개들은 볼썽사납게 생겼었다. 귀가 입까지 축 들어져 지지리도 못생긴 놈, 바둑이처럼 점박이, 심지어 불독처럼 험상 굿은 개까지 너무나 다양했다.

눈 내린 산을 돌아 다니는 진도개 ⓒ 김문호

잘생긴 노랭이는 이상하게도 사냥꾼이 오는 날이면 우리를 따라 나서지 않았다. 말을 듣지 않는 노랭이가 몹시 얄미웠다. '아니 그런데 사냥꾼을 따라 다니는 것이 아닌가.' 사실은 일정 거리를 두고 뒤를 밟고 있었다. 그리고 사냥꾼이 총을 쏴 꿩이나 비둘기를 잡으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사냥개보다 한발 빠른 동작으로 사냥감을 낚아채 집으로 내달렸다.

총명함에 반한 사냥꾼들은 군침을 흘렸다. 결국 그들의 성화에 못 견뎌 노랭이는 팔려갔다. 나는 며칠 밤을 울었다. 그 후 중학생이 되고 노랭이에 대한 기억은 지워지고 있었다. 그런데 2년이 지난 어느 날 하교 후 산길에서 나를 기다리는 노랭이를 만 났다. 너무나 반가웠다. 아! 귀를 뒤로 모으고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고 끙끙대며 반가움을 표시하던 노랭이.

진도개와 똥개의 차이

진도에 사는 개는 모두 진돗개다. 그러나 분명히 것은 진도개와 똥개의 구분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지독히 개 자랑이 심한 녀석이 자기 개로 사냥을 하자고 우겨서 하는 수 없이 그 집에서 기르던 백구로 사냥을 나섰다. 산에 들어서자 코를 낮추고 킁킁대며 냄새로 사냥감을 찾았다.

'옳거니, 노루 냄새를 맞았구나'하며 있는 힘을 다해 개를 따라 다녔다. 20분을 뛰었을까? 앞서 가던 백구가 빠른 속도로 내달리더니 풀 섶에서 뭔가를 낚아챘다. 그런데 갑자기 구린네가 났다. 아니나 다를까, 똥을 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진도개는 사냥감을 쫓는데, 똥개는 먹을 것 밖에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하기야 훈련을 받지 않은 개가 사냥하는 것은 무리인가 싶다.
집에 돌아와 보니 사냥꾼 아저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집을 뗘난 지 3일 째라는 것. 그 뒤 두 번인가 도망온 후 노랭이 소식은 완전히 끊어졌다.

노랭이가 사냥꾼을 따라다니며 총에 맞은 꿩을 물어온 것도 멧돼지 만한 노루를 혼자서 사냥한 그 날 이후부터다. 노루가 산 위로 도망치는 것을 막기 위해 위에서 아래쪽으로 공격하자 놀란 노루가 밑으로 튀어 내린 것이었다.

노루는 노랭이의 공격에 뒷발질을 하며 도망하다 언덕에서는 뛰지 못하고 굴렀다. 그러나 양쪽으로 튀어난 송곳니 때문에 쉽사리 승부가 나지 않았다. 30분 정도 사투 끝에 옆구리를 물어 뜯어 창자가 튀어나오자 애절한 비명을 지르며 노루는 쓰러졌다.

사냥한다고 달랑 개 한 마리 앞세우고 무작정 산을 다녔다. 심한 갈증에 늘 마시던 옹달샘으로 뛰어가 벌컥 벌컥 물을 마시다가 일어난 일이다. 노루도 물먹으러 왔다가 봉변을 당하고 만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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