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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오랫동안 알고 있는 삼십대의 이군은 정당한 폭력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는 지금 결혼을 한지 오년이 넘었고 가끔 아내를 구타 한다. (그의 말대로 표현 하자면 흐트러진 집안 분위기를 바로 세운다. 가끔 한번씩 긴장감을 줘야 집안이 빠릿하게 돌아 간다고 그는 말한다.)
어린시절 그의 아버지는 밥을 빨리 먹지 않는다고 그를 때렸다. (지금의 그는 밥을 먹을 때 말 한마디 하지 않는다) 학창시절 그의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기침을 하여 수업 분위기를 흐린다고 그를 때렸다. (지금의 그는 후배 사원이 자신의 앞에서 기침을 하면 인상이 구겨진다)
또 학창시절 그의 선배는 키가 큰 편에 속하는 같은 반 친구들 몇명과 함께 단지 키가 크다는 이유로 그를 때렸다. (지금의 그는 후배 사원에게 늘 명령조로 딱딱 끊어서 말한다. 그를 좋아하는 후배 사원을 거의 본 적이 없다. 우연인지 그가 맡고 있는 파트의 퇴사율이 가장 높다)
군대 생활을 할때에는 그의 선임병은 라면을 퍼지게 삶았다고 그를 때렸다. (그의 아내는 라면을 정말 꼬들꼬들하게 잘 삶는다고 한다. 결혼 초기와는 다르게)
전역후 복학을 했다. 그의 과선배, 고교 동문선배, 동아리 선배들은 때론 전통을 이유로 때론 헤이해진 기강을 이유로 그를 또 때렸다.
(지금의 그는 같은 회사의 고교동문회 총무다. 동문회때 후배 한명이 술먹고 말실수 했다가 이빨이 부러졌다.) 그리고 이외에도 특별한 이유도 없이 사회로 나가기 전까지 참으로 많이 맞고 살았다.
그는 꽤 오래된 중견 기업의 회사에 입사를 했다. 그런데 입사 초기 그의 선배는 그가 허락없이 기구를 만졌다고 그를 때렸다. 그의 이년 선배가 삼년 선배에게 버릇 없다며 두둘겨 맞고 퇴사 하는걸 보기도 했다. 실적이 좋지 않다고 같은 조원 전체가 줄빳다라는 걸 맞는 걸 보기도 했다. 물론 회사는 아무런 인사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은근과 끈기와 도전하는 기업 정신의 표현이라고 했다. 실적 향상을 위한 어쩔수 없는 충정의 표현이라고도 했다.
어느정도 회사 경력이 생긴후 더이상 그를 직접 때리는 사람은 없었다. 물론 가끔 자존심이 매우 상하는 일들은 있었다. 그의 부서장은 가끔씩 '이런식으로 일할거면 나가'라고 고함을 치며 집기를 집어 던졌다. 또 서너번은 부서장과 비굴한 면담을 하기도 했다. 퇴사를 종용 하거나 타부서로 가야 한다거나 하는 문제로. 그때도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런건 저에게 물어 볼 것이 아니라 윗분들이 알아서 결정 하시면 저희는 그냥 그 결정에 따르는게 아닙니까.
그의 아버지는 시내에서 작은 가게를 하고 있었고 그는 가난한 편에 속했다. 직장 생활 십년 가까이 했지만 그는 여전히 잔업을 했고, 특근을 했고, 명절때 출근을 했다.
그래도 그는 가난한 편에 속했다.
회사는 수십억, 수백억 흑자를 내기도 했지만
그는 늘 가난한 편에 속했고 월급은 가까스로 100만원을 넘겼고, 고용불안에 떨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지금 자신의 주변에 부당한 폭력은 없다고 생각 했다.
열악한 노동 현장에서 시달리는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도..
회사의 이익들이 특정 몇몇에게만 집중 되는것을 보면서도..
보통 수십억대의 정치인들과 수백억대의 정치인들의 부정과 재벌, 졸부 옹호 정책들을 보면서도..
자신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세금 제도의 불합리를 보면서도..
소수의 농간으로 자신은 도저히 갖을수 없게 무섭게 치솟은 부동산 가격을 보면서도..
재벌 언론의 노골적인 편파와 왜곡으로 얼룩진 기사를 보면서도..
한국의 여중생을 억울하게 죽게한자들이 무죄 판결을 받는걸 보면서도..
팔레스타인의 철부지 어린이가 이스라엘 군인의 총에 맞아 죽어가는것을 보면서도..
무력강국 미국의 세계 여러나라에 대한 일방적 폭력을 보면서도..
그는 여전히 무조건적 폭력은 없다고 생각 했다.
다 맞을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 했다.
그는 그동안 그토록 맞아 오면서도 스스로에게 묻지 않았다.
나는 왜 맞고 살아 왔는가? 왜 나는 맞아야만 했는가? 라고..
그는 그렇게 묻기 보다는
세상은 원래 힘있는 사람이 힘없는 사람을 때릴 수도 있는 거라고 차츰 믿게 되었다.
그래서 나도 힘이 세면 때릴수도 있는거고, 힘이 없으면 맞을 짓을 하지 않는게 현명 한 것이라고
생각 했다.
그래서 그는 세상의 폭력과 불의에 무감각 했다.
정치인들의 비리가 터져도, 재벌의 불법 증여가 발각 되어도, 인권을 유린 당해도, 부정부패를 보아도..
그는 그들에게 관대 했다.
..돈있고 권력 있으면 원래 다 그런거지..나 같으면 안 그러겠어..
하지만 그는 끝까지 모르고 있다.
자신이 관대하게 바라보는 그 폭력이 사실은 언제고 자신에게도 가해지는 더러운 폭력이라는 것을...
그는 여전히 자신은 성실한 가장이라고 믿고 있다.
자신은 정직하고 건전한 삶을 살고 있다고 믿고 있다.
늘 성실하고 노력하는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믿고 있다.
자신은 더이상 폭력의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자신의 폭력은 폭력이 아니라 당연한 권위와 질서 지키기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여전히 충직한 직장인이고 성실한 가장이다.
그는 아내를 가끔씩 두둘겨 팬다.
반찬이 똑같다는 이유로...밤참을 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말대답을 하며 덤빈다는 이유로...
그는 여전히 직장 여성 후배들에게 술잔 따르기를 당연한 미덕으로 강요하고
상사의 인격 모욕의 언어 폭력을 직장 생활의 일부로 받아 들인다.
뉴스에서 모 연예인 남편의 야구 방방이 구타를 보며
충분히 이해 할 수 있는 가장의 어쩔수 없는 기강 세우기의 하나일뿐이다..
그 여자가 그만한 원인을 제공 했기에 맞는 것이다..나도 그냥 두지 않았을 것이다..라며 말한다.
그는 여전히 믿고 있다.
나는 대한민국의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사람중의 하나라고...일반적 남성이라고...
여자들은 가지 않는 군대를 3년이나 다녀왔고, 처자식을 먹여 살리느라 밤늦도록 고생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그에 맞는 권한을 가져야 하고 그만한 가족에 대한 통제 자격이 있다고..
그래서 나의 폭력은 폭력이라고 말 할 수 없다..단지 가장의 책임 행사일뿐이다..라고..
그리고 또 여전히 믿고 있다.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해 정당한 폭력은 필요 하다고..
박정희를 추억하고 전두환을 대장부라고 추켜 세우며
이 나라도 누군가 다시 한번 꽉 찍어 눌러 새롭게 기강을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잘 살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더러운 폭력의 악습에 무감각 하고 폭력을 정당화 하는 사람들도 사실은 모두 폭력의 피해자들이다.
맞을짓을 하면 당연히 두둘겨 패야 한다라고 신념으로 물리적 폭력을 무감히 휘두르거나 묵인하며 사는 당신도, 사실은 더 크지만 눈에 보이지 않지만 끊임없이 일어나는 이 사회의 무서운 폭력의 희생자 이다. 그리고 크나큰 동조자 이다.
당신 자신을 다시한번 돌아 보라.. 살아 오면서 얼마나 많이 맞았고 얼마나 많은 불의에 시달렸는지... 가정에서, 학교에서, 군대에서, 사회에서....
이제 당신의 아이들도 당신이 보여준 폭력과 당신이 동조한 폭력속에서 또 그렇게 신음하며 자라고 살아 갈 것이다.
당신이 만들어 놓고 당신이 동조한 정당한 폭력속에 당신의 아이들도 힘에 굴종하는 비굴한 삶을 살 것이다. 당신이 옳다고 믿는 그 정당한 폭력의 테두리속에서 충직한 충견처럼, 일벌레처럼. 그렇게 열심히, 아주 열심히. 강자가 행하는 정당한 폭력에 무릎을 꿇고 성실하지만 비굴한 삶을 살 것이다. 특정 소수를 위해 꽉 찍어 누르는 이기적이고 더러운 폭력앞에 무감각하게 또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강자를 동조하고 묵인하며 살아갈 것이다.
이래도 과연 그들의 폭력은 정당한가.
이래도 과연 정당한 폭력은 존재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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