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연예공산품업자의 궤변

가수 박진영의 여러가지 오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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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csk6633)등록 2003.03.12 19:47
가수 박지윤의 신곡 ‘할 줄 알아?’가 청소년 유해 판결을 받는 등 세간의 논란이 되자, 그 곡의 작사자이자 제작사 JYP의 대표인 박진영이 항변을 하였다. 그는 직접적 표현도 아닌 은유적 묘사에 대한 유해판결은 잘못되었다고 하며 성에 대한 문화적 엄숙주의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대중들의 찬반이 물결을 이룬다. 그런데, 논란의 핵심은, 물론 가사의 내용과 유해판결의 결과이지만, 무엇보다도 그 동안 박진영 개인이 각종 언론매체에 그 만의 ‘성에 대한 의식’을 설파하고 주장했던 행각에 있다. 그리고 그의 그러한 주장들에는 위험한 오류들이 도사리고 있다. 하나씩 벗겨보자.

영상물 등급 위원회에 보낸 그의 편지 내용 중의 일부이다.

성을 너무 숭고하고 경건하게 생각하면 성을 재밌게 즐기지 못하게 되고 그렇기에 우리나라 부부들의 성 관계 횟수가 선진국들에 비해 휠씬 떨어지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여성의 1/3이 오르가즘을 느끼지 못하고, 또 1/3이 가끔 느낀다고 하는 통계를 접하면서 여성들이 성을 즐기고, 또 성에 있어서 적극적일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성 표현을 하는 박지윤이라는 가수는 청소년들에게 중요한 이미지들을 지닌다고 생각합니다. 육체의 쾌락이 정신과 이성에 비해 저속한 것이라는 생각은 아주 위험한 것이며, 그러한 생각이 후에 청소년들로 하여금 육체의 쾌락을 쫓는 일에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고, 또 한국 여자들을 침대에서 한 없이 수줍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의 SEX는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80만 명의 접대부 여성도 필요 없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에 대한 지나친 엄숙주의나 보수주의는 이중적이고 왜곡된 성문화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 주셨으면 합니다.


재미있고 나름대로 재치가 있는 항변이다. 그런데, 그 논리 전개에 있어서 의도적인 것인지 혹은 그가 거기밖에 생각이 못 미치는 것인지, 매우 중요한 점을 빠뜨렸다. 박진영은 이 것을 알아야 한다. 유해 판결을 받은 사유가 단지 엄숙한 보수주의 심판자들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해서만이 아니라 어설픈 성 해방 논리의 상업화로부터 청소년들을 보호하기 위함도 있는 것을.

가수이자 제작자인 박진영은 철저하게 상업적인 인물이다. 정치계에 입문하여 3,4선의 경력을 가진 국회위원들이 아무리 이상적 목적을 가지고 있다 하여도 그가 엄연히 정치인일 수밖에 없듯이, 박진영이 성 해방이니 자유연애를 부르짖어도 그는 어차피 제도권 연예시장에 상품을 갖다 파는 연예제작자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과거에 가수이자 연예제작자인 이수만이 어느 매체에 이렇게 인터뷰 하였다. 립싱크에 춤만 잘 추는 가수들을 배출한다는 항간의 비난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젠 가수들에 대한 고정관념이 바뀌어야 한다고, 자신들이 키우고 정상에 올려놓은 가수들은 ‘가수’라는 표현보다 ‘비주얼 아티스트’들이라고…

그럼 얼마 전 중앙일보에 실렸던 박진영의 인터뷰 내용을 보자.

- (가수의 노래)실력의 기준은 무엇인가.
"춤이든 노래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갖고 있느냐다. 가수가 반드시 노래를 잘 불러야 한다는 생각에 난 반대다. 대중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으면 된다. 노래가 중간 실력이어도 춤을 잘 추면 어떤가."

- 노래 못하는 가수가 너무 많아질 우려도 있는데.
"노래 못하는 가수가 많아지는 것을 제작자만의 책임으로 보면 안된다. 만약 그런 문제가 있다면 대중의 책임이 더 크다. 대중이 실력없는 가수를 외면한다면 그들이 어떻게 살아남겠는가?"


이수만과 박진영의 사고에는 공통점이 있다. 립싱크를 하든 비주얼 이든간에 대중들에게 즐거움만 주면 된다는 논리다. 이를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그들은 즐거운 대중상품을 생산하고 제작하는 연예사업가니까. 그런데 여기에는 박진영이 성토하는 제도적 엄숙주의 만큼 위험한 상업적 천박주의가 그 기저를 차지한다. 이를 개방주의니 진보주의로 해석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짓이다. 박진영은 노래 못하는 가수들 창궐의 문제를 대중들에게로 돌리는 책임회피식의 발언을 서슴치 않는다. 여기에 그의 간교함이 나타난다.

TV출연에서의 인기가 주가 된 한국연예산업의 풍토에서는 브라운관 앞의 대중들에게 그 브라운관 안의 가수들의 실력여부를 재단하는 선별의 자격이 없다. 대중들은 실력이 있건 없건, 그저 TV연예프로그램에서 제공하는 상품들을 지켜보는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 상품들이 만약 각종 콘서트나 다양한 매체에서의 활약 같은 품격화되고 차별화된 대중예술의 진정성을 보여준다면, 대중들은 무라카미 하루끼의 책을 사기 위하여 서점으로 가는 행보를, 뮤지컬 ‘캣츠’의 공연을 보기 위하여 공연장으로 가는 발걸음을 ‘실력있는 가수’의 콘서트장으로 바꿀 테니까.

얼마 전에 KBS TV의 ‘100인 토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에서는 잠시 논란이 되었던 ‘누드 퍼포먼스’ 행위에 대한 법적 구속여부가 과연 정당한가를 주제로 다루었다. 토론은 예술과 외설 구분에까지 이르렀다. 특히, 소설가 하재봉씨는 예술과 외설의 구분은 법률전문가인 판사들이 결정하기 보다는 예술종사자들의 전문적 시각이 필요하다고 ‘누드 퍼포먼스’ 행위를 옹호하였다.

필자는 가수 이수만, 박진영 그리고 하재봉 이들이 같은 실수 그리고 한 부분의 진실이 크게 망각된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본다. 그것은 문제가 되었던 부분들이 모두다 상업화된 공산품이란 사실이다.

누드 퍼포먼스의 경우, 물론 하재봉씨의 전문적 시각의 요구는 100% 옳은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신제품 요구르트 홍보가 아닌, 단지 우유나 요구르트와 누드 여성을 소재 또는 주제로 한 순수한 예술적 차원에서의 퍼포먼스였을 때, 법적판결에 대하여 왈가왈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마찬가지로 박진영이 부르짖는 성해방은 그가 음반을 팔아서 이윤을 추구하는 상업시장의 아우라가 아닌 영역에서 했어야 정당하고 씨가 먹힌다.

물론 대중음악에도 진지한 메시지와 예술적 미학을 감지하고 체득할 수 있는 ‘작품’들이 많다. 그러나, 적어도 이수만과 박진영의 상품들은 그들이 말했듯이 대중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을 우선하는 대량 생산화된 공산품 딱 거기에 머물고 만다.

박진영은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했던 내용 중에 진보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진보라고 했는데 '진보'를 어떻게 규정하는가?
"중심이 물질에서 인간으로 이동하는 게 진보라고 생각한다. 물질이나 제도, 사회에서 인간 본위로 옮겨가는 게 아닐까. 전체에서 개인으로, 전체 이익보다 분배의 효율성을 중시하는 것으로. 전체보다 인간의 행복, 전체를 위해 개개인이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행복 찾는 것이다."


그가 말하고 생각하는 진보는 단지 개인의 안위에 한정된 개인주의에 불과하다. 어차피 그에게서 진보의 사전적 의미를 찾으려 했던 것은 아니니까 사유의 ‘똘레랑스’ 인정의 측면에서 이해하자. 그런데, 동아일보의 그의 인터뷰 기사 중에서 ‘소리바다’ 무료다운로드에 대한 그의 생각을 보자.

현대자동차나 삼성전자의 핵심 기술을 누군가 파일로 변환시켜 전 세계 사람들이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가 생긴다면 한국 경제는 어떻게 될까.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음악이라는 산이 무너지고 있다. 그런데 이번엔 나 혼자의 힘으로 막기엔 역부족인 것 같다. 음악을 아끼는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는 아직도 성에 대하여 보수적인 국내 환경에서 ‘성 해방’을 부르짖고, 그 것을 만끽하는 자신의 태도는 분배의 효율성을 따르는 스스로의 행복 찾기이지만, 법적으로 문제없다고 판결난 소리바다를 통해 음악파일을 다운 받는 행위는 ‘스스로의 행복’ 찾기가 아니라고 보는가 싶다. 게다가 비약적인 예를 든다. 대기업 기술을 파일로 유포시키는 것은 엄연히 범법행위이다. 적어도 소비자들은 법적인 테두리내에서 소리바다를 이용하는 것이다.

가수 박진영이 연예가에 처음 나타났을 때, 그는 무척 신선하였고 치기가 넘쳤다. 그리고 TV 쇼프로에 나와서 웃고 떠드는 연예인들 중에서 나름대로 진지한 식견을 가진 이의 모습으로 비추었다. 지금은 잘 나가는 연예제작자까지 하는 마당에 그에게 다시 초반의 순수함으로 회귀해 달라고 부탁하지는 못하겠다. 허나, 궤변에 가까운 그의 부실하고도 이율배반적인 ‘성 해방’ 논리와 상업화 전략이 대중들에게 먹힐 것이라는 착각에서는 제발 벗어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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