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한 삶과 스러져간 한 생명

실습 첫날의 취재 후기

검토 완료

류종수(fromryu)등록 2003.03.20 08:48
마음을 다잡고 오늘 다시 실습을 나갔다. 어딘 가에서 날 불러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다는 이유로, 좀더 여유를 가지고 생각하고 책을 읽어보겠다는 변명으로 미루고 미루던 실습이었다.

오랜만에 취재에 나서려고 하니 아직은 약간 두렵기도 했다. 소심한 성격에 선뜻 수첩을 들고 낯선 사람들과 다시 부대껴야 한다는 것이 조금은 부담스러웠다.

그렇게 한국의 유력 인터넷 신문(?) 사무실에 다시 나간 오늘 아침, 취재부장님이 화재가 발생해 인명피해가 난 곳으로부터 제보가 들어왔다며 확인해보고 취재해 보란다.

전화를 하니 억울하고 다급한 목소리가 애처롭게 들려왔다. 그 길로 멀리 서초구 내곡동까지 사건의 현장으로 달려(?) 갔다. 정말이지 다시 일년만에 취재에 나서는 길이었다. 무슨 사연들을 적고 현장을 어떻게 스케치 해올까를 가는 내내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시커멓게 타버린 비닐하우스 촌을 보자 말문이 막혀 버렸다.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에 3사 방송사 기자들과 말지 기자까지 와 있었다. 그 작은 비닐하우스 촌에서도 철거를 둘러싼 탐욕스런 전쟁이 시작되고 있었다. 주민들의 주장처럼 땅주인이 고의로 불을 질렀다고 단정적으로 기사화 할 수는 없었지만 연달아 5번이나 화재가 발생하고 그래서 주민들이 방범초소까지 설치한 것을 미뤄 짐작하면 누군가에 의한 방화라고 볼 수밖에 없어 보였다.

여기다 거동이 불편하신 한 할머니까지 그 화재를 미쳐 피하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하니. 옷가지 하나 건질 수 없는 삶의 터전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보던 주민들은 그 할머니의 시신마저 경찰이 임의로 수습해간 사실을 접하고는 분노를 참지 못해 성남으로 뚫린 대로를 점거하려 할 정도였다.

나라 밖에도 내일이면 전쟁이 터질지 모른다고 하는데 이 삭막한 서울 하늘 아래에서도 삶을 둘러싼 애달프고 처절한 전쟁이 시작되고 있었다. 나 같은 백수 놈도 바람 막아줄 반 지하 셋방이 있는데 오늘 그 분들은 어디서 주무실까 걱정이다. 할머니의 명복을 빌며 남은 주민들이 따뜻한 보금자리를 다시 마련할 수 있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기사를 쓰면서 녹슨 머리를 얼마나 굴렸는지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멍하게 쓰려오는 두통을 느껴야 했다. 내일 또 누구를 만나 어떻게 그들과 소통해야 할까.... 매일 아침 눈을 뜨면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난 이렇게 되뇐다.

'잘 할 수 있다고, 즐겁게 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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